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안내사항
안녕하세요, 저희 책방을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소중한 책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책방입니다. 직접 책방의 수많은 중고책을 직접 찾고, 검수하고, 안전하게 포장하여 배송해 드리고 있다 보니 조금의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방문해 주신 고객님들께 몇 가지 소중한 안내 말씀을 전합니다.
- 복수 구매 시 부분 취소 안내
중고책 특성상 실시간 재고 변동 등으로 인해, 2권 이상 주문해 주셨을 때 일부 도서의 품절 등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부분 취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미리 안내해 드린 후 신속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 문의 사항 안내 (문의글 이용 요청)
책을 찾고 포장하는 작업 중에는 전화 연결이 어렵습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실 경우 쇼핑몰 문의글(게시판)로 남겨주시면, 1일 이내(주말,공휴일 제외)에 친절하고 정확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 대량주문 (추가배송비)
10권 이상 주문해주시는 고객님들은 책에 따라 추가배송비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추가 배송비가 나오는 경우는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권의 책이 고객님께 무사히 닿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
|
|
추천의 글 1, 2 4
저자 서문 Preface 8 알로이시오 신부 Father Aloysius Schwartz 15 1930년대, 미국 워싱턴 Washington D.C., in the 1930s 31 벨기에 루뱅으로 가다 Go to Louvain, Belgium 43 한국을 향해 Towards Korea 59 마리아 수녀회의 탄생과 구호 사업 Foundation of the Sisters of Mary and the Charity Program 87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다 Become a father to children 97 가난 속으로 뛰어들다 Jump into the poverty 123 필리핀으로 Towards the Philippines 157 일을 너머 저쪽 Towards other side, take off from work 169 에필로그 Epilogue 191 부록Appendix 199 |
|
세월이 흘러 메리놀 신학교의 철학과를 졸업할 즈음, 그는 ‘사제가 되고 싶고, 가난한 나라의 선교사가 되고 싶고, 현지 교구의 사제가 되고 싶다’는 성소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 40쪽 ‘1930년대, 미국 워싱턴’ 그는 루뱅에 있는 동안 ‘바뇌의 성모님’ 발현지를 찾아가 성모님과의 특별한 영적 만남을 가졌다. 그가 일생 동안 열두 번도 넘게 그곳을 찾은 이유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스스로를 밝히신 성모님의 메시지를 사제 생활의 이정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제로서의 삶을 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께 봉헌하였다. 훗날 자신의 시신이 묻힐 무덤 경당을 바뇌 성지의 성모 발현 기념 경당과 닮게 지어 달라고 유언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받는 성모님의 아들이길 염원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하여 실제 모습대로 복제된 경당이 현재 한국과 필리핀 두 곳에 세워져 있다. ― 50쪽 ‘벨기에 루뱅으로 가다’ 송도성당의 사목 관할 구역은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가 대부분이어서 무허가 판자촌과 천막집들이 아주 많았다. 신자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후원금 전달을 위해 현장을 다니다 보면,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 이들을 위한 보육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우선, 후원금으로 몇 채의 주택을 사들이고 6~7명의 아이들이 한 가족을 이룬 ‘마리아 보모회’라는 이름의 보육 시설을 준비하였다. ― 88~89쪽 ‘마리아 수녀회의 탄생과 구호 사업’ 아무 준비도 없이 영화숙에서 데려온 수많은 아이들은 개교를 앞둔 ‘암남동 공민학교’ 건물에 임시 수용하여 ‘마리아 수녀회’ 수녀들이 돌보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수녀들은 몽둥이보다 사랑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믿고 그 무거운 짐을 기꺼이 떠안았다. 그러자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의 눈빛에서 인간 본래의 선한 모습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들 한가운데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내어 가족이 되어 준 새 아빠, 알로이시오 신부가 서 있었다. 심장을 맞댄 그 뜨거운 포옹으로……. ― 108, 110쪽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구호 사업은 늘 계획보다 앞질러 달려야 하는 비상 조치가 되었고, 그가 휴식하는 시간은 누군가의 생명이 죽어 가는 시간이라는 절박한 심정을 그의 가슴속에 심어 놓았다. 그는 “자매들이여, 세상은 지금 불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글로써 당시에 느낀 자신의 심경을 일기장에 표현해 두었다. ― 112쪽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다’ 당시 한국의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알로이시오 신부의 사업을 통해 집행되는 자금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게 컸다. 일부 사람들은 자선회 금고로 많은 돈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는,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사업 계획서를 들고 알로이시오 신부를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교회의 지도층 인사와 고위 성직자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사는 쓰러져 가는 판잣집을 보고는 대부분 스스로 의욕을 접었는데, 그래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는 초라한 그 판잣집이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에 안성맞춤인 무대 배경이 되어 주었다. 특히 멀찍이 떨어져 있던 화장실은 너무도 엉성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심심치 않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어 웃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 124쪽 ‘가난 속으로 뛰어들다’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으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일은, 살아 있는 생명을 조배하는 일이었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더 이끌기 위해, 알로이시오 신부는 늘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 146쪽 ‘가난 속으로 뛰어들다’ 필리핀의 관계자들은 한국에 와서 ‘서울 소년 소녀의 집’을 답사했는데,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던 것처럼, 시작 때부터 구체적 후속 조치들을 논의해 왔다. 한국 교회 내에서 외면당하던 알로이시오 신부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감지했고, 마치 사방이 막힌 미로 속에서 비상구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필리핀으로의 사업 진출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게 되었고, 하느님은 인류 전체를 향해 알로이시오 신부의 등을 가만히 떠밀었다. ― 158쪽 ‘필리핀으로’ 대한민국 5·16 민족상(1976년), 뉴욕 포담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1977년), 라몬 막사이사이상(1983년), 마더 데레사상(1988년), 그리고 두 번의 노벨상 후보 등의 영광 뒤에는 누구보다 굳건한 그만의 신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예수님의 삶과 철저히 결합된 복음 정신이었다. ― 171쪽 ‘일을 너머 저쪽’ 미국의 저명한 신경 전문의 코렌콜드 박사는 이 불치병이 앞으로 3년 안에 삶을 정리해야 하는 사형선고 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충격 앞에서도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 ALS’라는 병명의 글자가 자신의 사인으로 사용하던 세상 이름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 174~5쪽 ‘일을 너머 저쪽’ 알로이시오 신부의 마지막 여정은 하느님께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놓는 성스러운 것이 되었고, ‘시작은 내가 하지만 완성은 주님이 하신다’는 믿음을 통해, 불완전한 인간은 완성 자체이신 하느님께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완성에 다다르게 된다는 진리를 몸소 살아 내었다. ― 179쪽 ‘일을 너머 저쪽’ 그는 조용히 떠났다. 가난 자체의 문제도 여전하지만, 빈부 갈등의 사회 문제를 두고 알로이시오 신부는 일찍이 자선회라는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부를 재분배하였다. 또한 세상의 재화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부유함을 허락받은 사람들과 가난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의 구원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세상의 끝과 끝이 만나는 ‘사랑의 무지개 다리’를 놓은 그는 하늘나라로 갔다. ---본문 중에서 |
|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 우리나라 문인화로 다시 태어나다! 아프리카 톤즈의 성자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알로이시오 슈월츠Aloysius Schwartz 신부(미국 워싱톤 D.C.에서 출생, 1930~1992)는, 1957년, 한국 전쟁의 여파로 처참하리만큼 가난해진 이 땅에 와, 버림받은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사랑을 펼쳤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이러한 활동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특히 부산 송도를 중심으로 한 빈민 구제 활동으로 인해, 송도는 한국 사회의 ‘복지 발원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국민훈장 동백장(1975), 라몬 막사이사이상(1983), 마더 데레사상을 수상했고, 노벨 평화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으며(후보 지명: 1984년 매리랜드주 하원의원 스테니호이어 씨, 1992년 미국캘리포니아출신 하원의원 로버트도어난과 매릴랜드 주지사 윌리엄쉐터 씨), 바티칸으로부터는 존경받는 사제에게 주는 고위성직자 ‘몬시뇰’로 임명됐다(1990). 현재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불리며, 시복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톨릭출판사)는 이러한 알로이시오 신부의 일생을 ‘글쟁이 화가’로 알려진 하삼두 화백이 1년여에 걸쳐 우리말과 영문, 그리고 한국 문인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덕분에 유난히도 코가 큰 미국인 알로이시오 신부와 그의 삶이 아름다운 한국 문인화로 형상화되어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삼두 화백의 아내는, 알로이시오 신부가 세운 자선 사업체에서 일하면서 그 수도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꿈꾸었기에 알로이시오 신부를 오랜 세월 지켜볼 수 있었다. 하삼두 화백도 후에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반 특활 지도로 봉사하였다. 저자는 서문에서 알로이시오 신부와의 인연을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 수녀회에서 설립한 ‘구호병원’에서 일했던 아내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에 동화되어 있었고 결혼 이후에도 늘 그곳을 잊지 않고 살았다. 올해로 신부님이 떠나신 지 22년, 귀향의 심정으로 다시 찾은 마리아 수녀회는 어느덧 창설 50주년이 되어 있었고, 내게 그 옛날에 빚진 품앗이를 할 기회가 된 이 그림책 작업은 결코 우연이 아닌 그런 태동 사연을 안고 시작된 것이다. -저자 서문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자란 소년 이태석은 가슴속에 숭고한 꿈을 키우게 되었고, 후에 아프리카에서 그의 정신적 스승 알로이시오 신부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된다(미국인 사제로부터 받은 사랑을, 자신도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한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걸었던 발자국이 이제는 길이 되어,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알로이시오 신부에게서 받은 영향을 ‘아름다운 향기’라고 표현했다. 크게 작게 나에게 영향을 끼친 내 주위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겨 주던 소 신부님과 그곳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도 ……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였다. - 이태석 신부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중에서 소년 이태석은 알로이시오 신부가 송도 성당에서 사목하던 당시 그 성당을 다니고 있었고, 이 신부의 어머니는 알로이시오 신부가 추진한 ‘자수 사업’에서 손수건 수놓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사목했던 부산 송도 성당은, 후에 아프리카 수단에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원주민을 위해 헌신한 이태석 신부가 다녔던 성당이다. 이태석 신부는 이 성당에서 처음으로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보았고, 그런 악기들을 연주하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자수 사업’에서 손수건 수놓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이태석 신부는 알로이시오 신부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아프리카 수단에서 그대로 실천하게 된 것이다. -84~85쪽, 한국을 향해 반세기 동안 알로이시오 신부의 뜻을 이어온 마리아수녀회의 50년 숙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지속적으로 돌보도록 알로이시오 신부는 1964년 8월 15일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올해가 바로 마리아수녀회 창설 50주년이 되는 해로 그의 정신이 ‘마리아수녀회’를 통해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온 것이다. 이 마리아수녀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알고 또 잊지 말아야 할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을 보다 잘 알릴 방법이 없을까 하며 안타까이 그 방법을 찾았다. 결국 알로이시오 신부의 정신 세계와 그의 삶을 잘 알고 그에 대한 영성적 해석력이 요구되는 이 작업을 위해, ‘글쟁이 화가’로 부산 지역에서 잘 알려진 하삼두 선생에게 이 작업을 의뢰했다. 이를 위해 마리아수녀회에서는 일 년여 기간 동안 이를 공동체의 기도 지향으로 삼았다. 하삼두 선생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일대기와 수도 공동체에 있는 갖가지 자료를 종합하고, 이를 재구성하여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을 글과 ‘한국적 문인화’로 묘사했다. 또한 글은 한국어와 더불어 영문으로도 번역하여 함께 병기하였는데, 이는 필리핀, 멕시코, 브라질 등 세계로 확장된 알로이시오 공동체를 이어 줄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알로이시오 신부의 정신을 더욱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구성된 까닭에 이 책은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희생과 인내, 믿음과 지혜 등의 덕목을 배우며 가치 있는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으며 동시에 자연스럽게 영어도 익힐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그림과 한글과 영문 텍스트라는 3가지의 디자인 소스를 적절히 활용하여, 책장을 펼쳤을 때 시각적 완성미와 심리적 흐름을 고려하여 편집되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규격과 분량으로, ‘적절성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려 애썼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살아 있는 유산 마리아수녀회 창설 50주년 기념행사 반세기 동안 ‘소년의 집’ 아이들에게, ‘수녀’가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최상의 교육을 하여 준비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온 마리아수녀회에서는, 오는 10월 1일, 창설 50주년 기념 미사와 예술제, 감사 음악제를 열 예정이다. 이 행사도 소년의 집 출신 오케스트라 단원 50여 명을 비롯해 초대 손님, 재학생, 직원, 수녀 등 800여 명이 참석하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다. 사랑과 나눔, 그리고 실천의 연속이었던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알로이시오 신부와 소년의 집에서 공놀이를 하던 꼬마 김병지는 훗날 국가대표 축구 팀의 골키퍼가 되어, 우리나라를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주역이 되었다. 또한 소년의 집에서 알로이시오 신부가 전해 주는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자란 아이들은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당당하게 카네기홀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고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나눠 준 사랑이 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그 누군가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고 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남긴 사랑으로 행복한 순환을 계속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집’ 졸업생 2만여 명이 사회 각처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대기업인 삼성에만도 이곳 출신 중 400명 가까이 되는 이들이 중견 사원으로 일하고 있을 정도다.(세계일보 2014.03.26.자). 이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필리핀에는 1만3천여 명의 재학생들이 있고, 졸업생은 5만6천6백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에는 사회에서 기반을 잡은 이들도 꽤 있으며, 고위 관리 중에도 이곳 출신이 있을 정도다. 이 학교는 최상의 교육으로 유명하며 필리핀 현지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학교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문인화의 전통으로 다시 태어난 미국인 사제 ‘글쟁이 화가’ 하삼두 선생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조선 초기 강희안을 비롯해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에 이르기까지 ‘선비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되는 ‘문인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문인화는 문인이 그린 그림으로 처음부터 ‘시서화 일체’라는 특징을 지녔다. 하삼두 선생이 문인화가임은 미술대학 재학 중 ‘시작업’ 동인으로 문학 활동(동아문학상 시 부문 차석 및 당선)을 해온 문인이자 동양화를 전공한 저자의 이력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사실 문인화가 하삼두는 매일 글과 그림이 담긴 문인화를 그린다. 그는 어떤 실적을 위해 허둥대지 않고 날마다 보고하듯 작업을 한다. 웃자람을 거부한 그의 자기탐구는 화가이기 이전에 자기의 삶을 말없이 살아내는 이다. 문학과 그림, 삶과 종교를 이분화하지 않고, 삶의 여정을 통해 깨달은 섭리를 기록해가며, 필요한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열어 보이는 작가적 태도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과 잘 어울려 책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