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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민족언론과 참 언론인을 기다리며
- 조용준 민족일보조용수기념사업회 이사장 01 4· 19 혁명 이후 민족언론의 현황과 과제 - 고승우 6 ·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장 02 조용수의 삶과 그가 남긴 과제 -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 기자 03 민족일보 사건의 성격과 언론학적 함의 -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 언론학 04 4 · 19 직후 민족일보와 혁신세력의 관계 - 김지형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부록 전민족일보 기자가 쓴 『민족일보』의 활동과 수난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45년만에 공개된, 사형 선고받고 일본으로 보낸 첫 편지 곽동의 위원장 증언 녹취록 일부 ㅣ 조용수 사장의 옥중서한 · '통일뉴스' 혁명의 열정 · 청년의 패기,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이주환 『노동사회』편집국장 최백근 저 사회당 조직부장,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과 함께 재심 명예회복 길 터야 정창현 '민족21'대표 자료 - 민족일보 창간사 - 조용수 사장의 취임사 - 재심판결문 - 조용수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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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민족일보가 창간됐다 폐간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사법살인의 희생양이 되어 사형된 지 5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민족일보 사건]은 한국언론사 가운데 가장 가혹한 언론 통제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 나라 언론사에서 많은 언론인이 필화를 겪었지만 신문이 폐간되고 그 신문의 발행인이 처형당한 예는 민족일보 사건뿐이다. 민족일보는 4.19혁명이 일어난 다음해인 1961년 2월에 창간됐으며,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비애를 호소하는 신문을 사시로 내걸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가 발생하면서 92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고, 30대의 젊은 조용수 사장도 같은 해 체포돼 사형을 당했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한 뒤 조용수 사장은 법원 재심 결과 무죄와 국가 배상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책은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의 사형을 둘러싼 진실을 조명하고 민족일보 이후 현재까지 이 신문의 흐름을 이어온 언론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는 '민족일보 사건의 성격과 언론학적 함의'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민족일보는 중립화 통일론과 남북교류론 등으로 반국가단체의 목적사항을 선전 선동했다고 검찰이 공소장을 제출했으나 민족일보가 제기한 중립화 통일론 자체가 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친북노선이 아닌 반공 반김일성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또한 민족일보 사건은 언론학적으로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며 민족일보는 1960년 4.19혁명을 통해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사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자유 토론이 전개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수정주의적인 통일론을 펼친 대안언론으로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민족일보 사건이 재심 무죄 판결으로 그 진실과 법리논쟁, 국가배상이 사실상 마무리 됐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향후 과제에 대해 제시했다. 원 기자는 조용수는 대표적인 언론민주화운동, 통일운동가이면서 권위주의 정권의 사법살인에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보상법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아 추모공원 안장대상이 되지 않고 이명박 정부들어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줄줄이 해체되면서 조용수 사장의 묘소를 민주공원에 옮길 곳이 없다며 조용수의 민주화공원 안장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꼽았다. 김지형 한양대 동아시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재심 무죄판결 이전까지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이영근에 대한 연구와 혁신계와 민족일보의 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그는 [민족일보]의 성격을 민족지로 볼 것인지 혁신계 대변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음을 민족주의자인 이종률 초대 편집국장의 영입과 퇴사과정을 통해 조명해 [민족일보]가 혁신계 대변지로 변화됐음을 밝혔다. 고승우 6.15언론본부 정책위원장은 [민족일보] 폐간 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는 제대로 된 [민족언론]이 탄생할 수 없었고, 결국 1987년 6월항쟁에 힘입어 [한겨레신문]이 등장했고, 6.15공동선언의 열린 공간에서 [통일뉴스]와 [민족21]이 나왔다고 봤다.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서 민족언론이 위축됐다며 미디어악법에 의해 탄생시킨 종합편성채널이 연말에 뜨게 된다는데 민족언론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민족언론의 재정적 자립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