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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1장 도쿄에서 온 메일 2장 폭풍우 속에 남겨진 후예들 3장 핏줄의 부름 4장 고균학숙 5장 조선 선비의 문집 6장 오가사와라의 달밤 7장 혼인보 슈에이 8장 대를 이은 집념 9장 간절한 원망 10장 피의 만찬장 11장 혁명의 아침 12장 반격 13장 결단의 시간 14장 혼란에 빠진 청국 진영 15장 악마의 심장 16장 신들메를 졸라매고 17장 새 정부 18장 후원자들 19장 묘당회의 20장 군사력을 키우자 21장 기생 월랑 22장 일본과 중국 23장 식산 사업 24장 새로운 경연 25장 대치 유홍기 26장 왕실 27장 흥하는 집과 망하는 집 28장 적들 29장 성과 30장 청렴서약 31장 일본공장 견학 32장 비원의 포함 33장 감격의 군함 취역식 34장 이웃의 승냥이들 35장 민 씨 겨레붙이들 36장 우리의 군대 37장 잘살아보세 38장 변경개척 39장 조선제국이 출범하다 40장 유학생 귀국보고 41장 일신일신 우일신 42장 청일전쟁 발발 43장 북방의 먹구름 44장 조계 활용방안 45장 급한 풍운 46장 러일전쟁 개시 47장 조선의 응전 48장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49장 종전 50장 위기의 조선제국 51장 담대한 담판 52장 고종의 조사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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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만 들리는 천만 리 외따로 떨어진 고도에 뜻을 잃은 한 사나이가 와 있었다. 대역부도의 죄인으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처자식도 모두 흩뿌려졌다. 부모형제는 연좌되어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의 운명을 알 도리도 없었다.
마른 풀로 지붕을 인 누옥(陋屋)에서 단정히 책상 앞에 정좌하고 혼을 담아 한 자 한 자 글자를 써내려간다. 그 글자에서는 궁형(宮刑)을 당한 치욕을 견뎌내며 대나무 조각에 붓으로 한 자 한 자 원념(怨念)을 써내려간 천여 년 전의 사관 사마천(司馬遷)의 귀기(鬼氣)가 느껴진다. (1권, 89~90쪽) 다음 장부터 서술되는 이야기는 백 년간 초당에 묻혀 있던 옛 기록에 빠져든 내 친구가 쓴 소설이다. 고균이 꿈꾼 새 나라가 어떻게 건설되었고, 그가 인민을 어떻게 보살피고 험난한 제국주의 시대의 격랑을 어떻게 견디어내며 국체를 온전히 보존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물려주었던가 하는 승리의 기록 《해빈록(海濱錄)》이다. 실패한 인간이 유배지에서 꿇어앉아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미래의 성공한 제국 조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고균이 그의 문집 속에서 환생하여 새 나라를 건설해나가는 나날을 지켜보게 되었다. (1권, 143~144쪽) 고균의 목표 중 하나인 조선의 중립국화도 대치의 사상에서 싹튼 이상이었다. 사실 이것은 어려울 것도 없는 결론이었다. 지금 조선의 형편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자력으로 자주독립할 수 없다. 그러면 열강 중 어느 하나의 속방이 되어야 하느냐? 그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러면 결론은 무엇인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 아무한테도 속박 받지 않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하겠다. 그러니 우리는 중립국을 표방하여 우리의 독립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1권, 304쪽) 철도와 도로의 기공식으로 분망한 나날이 지나갔다. 고종은 입헌군주체제 아래서 군림할 뿐인 왕으로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 그래도 그는 근래 나라의 진로를 보니 자신이 그렇게 노심초사해가며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하나씩 성취되어 가는 데 대해 한편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일들을 젊은 개화파가 하나씩 성공해가는 데 대해 일종의 허망감, 질시, 모멸감 등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2권, 121~122쪽) 1902년. 아시아와 세계의 정세는 여전히 유동적이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 앞에 약소국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했다. 조선제국은 출범 이후 착실하게 국력을 배양해나갔다. 혁명 전의 전근대적인 관행들을 하나하나 철저히 개혁해나갔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조선으로서는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유일한 살 길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자각에서 십여 년간 국력을 기울여 사람을 키워나갔다. 구미 열강에서 공부하고 온 유학생이 거의 천 명에 육박하게 되면서 그들이 관계, 재계, 교육계, 문화계 등 각계의 지도세력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2권, 244쪽) 황제의 속마음이 우러나는 피 끓는 조사를 듣는 제 대신과 광화문 앞 넓은 마당에 상복 입고 무리 지어 엎드린 백성들은 소리 높여 울부짖고 곡하며 고균의 넋을 떠나보냈다. 그때 삼천리강산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인민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때는 1913년. 혁명을 이끌고 평생을 바쳐 조국의 발전에 골몰하던 고균은 예순셋 되는 그 해 봄에 그토록 그가 사랑하던 조국과 인민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집권 후 두 번째로 일본에 다녀온 직후였다. (2권, 323쪽)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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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한국 근대사에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가정해보고 싶게 만드는 사건이 많다. 세계사의 대세에 동참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외세에 침탈당하다가 마침내 일본의 식민지가 돼버린 과정은 그런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884년의 갑신정변이다. 오늘날의 남북분단도 그 뿌리를 캐다보면 단일 민족국가로 자주?자강할 토대를 만들지 못한 근대사의 실패에 가 닿는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갑신정변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은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지 않고 혁명으로서 성공했다면, 그리하여 그 주도세력이 이후 이삼십 년간 그들의 뜻대로 나라를 개혁해나갔다면 한국 근대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다. 갑신정변은 민비(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민 씨 세력의 요청으로 청나라 군대가 개입함으로써 무력으로 진압됐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청나라가 베트남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청불전쟁에서 열세에 몰려 여유가 없는 탓에 조선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그 틈을 타서 갑신정변 주도세력은 문벌 폐지, 조세 개혁, 관리의 토색질 징치 등 개혁조치를 순발력 있게 취하여 민심을 얻는다. 아울러 김옥균이 일본에서 얻어온 삼백만 엔의 장기차관 자금으로 서양군함 구입에 나서는 등 국방력을 강화해나간다. 이어 대규모 해외유학생 파견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민간 거상들의 협조를 얻어 방직공장을 짓는 등 산업육성에 나선다. 또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자력방어에 충분할 정도의 군사력을 갖춰나가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영세중립화를 선언하여 조선에 대한 열강 간 견제를 유도한다. 갑신정변으로 집권한 개혁정부의 이런 노력의 결과로 자주?자강할 힘을 기른 조선은 1894~5년 청일전쟁과 1904~5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노골화한 일본의 조선 병탄 야욕에 현명하게 대응해나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세중립화 선언을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청국, 러시아 등 6대 열강은 물론 일본과도 중립화 조약을 체결한다. 이어 입헌군주국 조선제국의 영의정 김옥균은 직접 일본을 방문해 명치 천황과 만나 조선 중립과 조?일간 평화공존에 대한 천황의 다짐을 얻어낸다. 이로써 일본 국내 극우파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김옥균은 실제로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일본에 망명했다가 1894년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 그곳에서 조선인 자객에 의해 살해됐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가 갑신정변에 성공한 뒤 1913년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조선의 개혁개방과 부국강병에 매진한 것으로 그려졌다. 130년 전 김옥균과 그의 개화파 동지들이 품었던 혁명의 꿈을 가상적으로, 그러나 실감나게 되살린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