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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ganization of Korean Historians,韓國歷史硏究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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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대장경을 판각한 것은, 한국불교의 호국적 성격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최씨정권이 백성들을 규합하여 자기들 중심으로 항쟁을 지속해 가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것은 1237년 무렵 대규모 투항민이 발생한 것을 참작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을 부처의 힘을 빌어 극복하고자 했던 고려인의 신앙심이 발현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은 대장경 조판에 참여한 사람드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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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만 우롱하는 금주령
지금 이땅에 금주령이 내려진다면 1930년대 미국의 마피아 대부 알카포네처럼 밀주로 떼돈을 벌 수 있을까. 또 술과 관련되 그 많은 사업들과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어찌 될까. 미국은 경제공황 때문에 금주령을 내렸다지만, 우리는 어떤 핑계를 댈 수 있을까. 설마 1960,70년대 잘살기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새마을 운동 때의 밀가루 막거리에 치기 어린 향수를 느껴가며, 한때 남아돈다는 쌀 때문에 집집마다 담아놓은 농주와 겨우 복원한 민속주를 금주령이란 미명아래 없앨 수 있을까 말이다. 더구나 막대한 재정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오히려 술 때문에 모전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또 모를까. 위스키의 본고장인 영국에서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양주 수입국,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1인당 술 소비량, 음주운전 적발과 그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은 나라, 고려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실정이다.... 한편 국가에서는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금주령은 홍수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로 곡식이 부족하거나, 나라에 대상이 있어 자숙해야 할 때 내려졌다. 또한 절이나 승려가 술 때문에 폐단을 일으킬 때에도 금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소주를 사치품목으로 여겨 금지한 일도 있었다. --- p.160, 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