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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그리움, 그 아득한 끝 2, 사랑, 그 아름다운 시작 3, 사랑을 위하여 4, 화두 같은 사랑 5, 깊은 사랑 6, 갈등, 그 깊은 늪 7, 미로에 서서 8, 혼돈, 그 지독한 중독 9, 빛과 그림자 10, 사랑, 그 끝없는 끝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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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부터 내 움직임 하나부터 눈도장을 찍고 가늠하는, 내 몸과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손거울 같은 여자가 있었다··· 2555일, 7년 동안 그랬다··· 20대 내 청춘은 그 여자가 샅샅이 주물렀다··· 나는 그때 무언가에 흠뻑 홀린 것처럼 그 여자가 툭툭 던지는 쌍꺼풀 예쁘게 진 눈빛을 비껴가지 못했다··· 살짝 웃을 때마다 내 눈빛 바늘로 살짝 찌른 듯 포옥 파이는 그 여자 볼우물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여자로부터 시작되어 그 여자에게로 매듭지어졌다··· 내가 듣는 것도 그 여자로부터 시작되어 그 여자에게로 매듭지어졌다···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도 그 여자로부터 시작되어 그 여자에게로 매듭지어졌다··· 그 여자 눈빛은 내 몸과 마음을 몽땅 다 비추는 유리거울이었다··· 그 유리거울이 잠시 내게서 벗어나 있다고 여겨질 때면 후유~ 자유를 찾았다는 그런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유리거울이 잠시도 나를 비추지 않으면 오히려 입안이 바짝바짝 타면서 안달이 나곤 했다··· 나는 그때 그 여자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 출소 이틀 앞. 간간이 장대비. 내가 앉은 커피숍 유리창을 세차게 매질하는 장대비. 나는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긴 머리칼을 새삼스레 손가락으로 빗었어. 너가 옥살이를 하는 5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머리칼. 너, 그 따스한 손길이 닿았던, 너, 그 숨결이 배인 이 머리칼을 어찌 한 치라도 자를 수 있겠어. 진갈색 커피가 담긴 잔속에서 나를 빤히 지켜보는 너, 그 동그란 눈동자. 그래, 어쩌면 너가 겪은 옥살이는 너를 내게 묶어준 끄나풀이었는지도 몰라. 너를 만날 그때만 하더라도 내 나이가 너무 어렸고, 너는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려 내 손조차 함부로 잡지 못하고 그렇게 가슴만 태웠으니깐. 그래, 그랬어. 너가 옥살이를 함으로써 나는 사랑을 위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 커피숍에서 천천히 꼬리를 흔들다가 이내 장대비를 타고 파다닥거리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슈베르트가 음표에 새긴 숭어떼.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어. 너가 아니었다면 내가 대학생이 된다는 건 환상이었는지도 몰라. 너가 내 곁에 있었다면 학창시절은 훨씬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났겠지만 너가 나만을 지켜주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어. 너 주변에는 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운동권 여자후배들과 너가 이끄는 문학써클에도 늘씬한 여자들이 늘 들끓었으니깐.-‘사랑을 위하여’에서 ............................................ 박, 미, 리. 미안해. 아니, 정말 잘못했어. 참말로.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몸. 그 여자가 하자는 그대로 점점 길들여지는 내 몸.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지금 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니? 지금 나란 존재. 그래, 어쩌면 나는 이 상이 쓴 소설 ‘날개’ 속에 나오는 나, 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몰라. 그 여자는 소설 속에 나오는 나, 그 아내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 나는 그 여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즐기는 그 몸짓거리가 감기약이라고 믿고 계속 먹으며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 약이 감기약이 아니라 수면제라는 것을 알아챈 그날, 공원에 나가 남은 알약을 모두 먹고 일주야를 잠에 떨어졌다가 집에 돌아오는 나, 처럼, 나도 일주야를 그 여자 거기를 파고들며 마구 바둥거렸어. 그 여자도 발악하는 아내, 처럼 내 그것을 핥고 물고 마구 비틀었어. 그래. -잡답의 삶, 그것의 무의미함, 너(원 표기는, 아내) 와의 도착된 관계,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외치는 소리. 그 소리가 지금 내 귓속을 쟁쟁하게 울리고 있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그래. 바로 이 순간, 나도 -일시에 모든 것이 끓어오르는 것 같, 아. 나도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워. 나도 그 나, 처럼 외쳤어. 그기야 다시 죽어라. 죽자, 죽자, 한 번만 더 죽자꾸나.” -‘빛과 그림자’에서 ......................................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 힘없고 상처 입은 사람들 찢긴 몸과 마음을 기워주는 실과 바늘이 되어야 해. 그래, 조금만 기다려. 내가 지금 너를 찾아 이렇게 애타는 가슴을 소주로 다독이며 달려가고 있어. “어이, 젊은이. 아무리 젊다 해도 술을 그렇게 마시면 쓰나?” “······” “자, 이거라도 좀 먹으면서 술을 마시게.” 눈썹과 뺨까지 가린 갈색 털모자를 쓴 50대 들머리께로 보이는 중늙은이가 다리가 달린 오징어 반 토막을 내 바지 위에 올려놓았어. “아니,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기차 칸 한 끝에 자리 잡고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연민이 듬뿍 담긴 눈길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그 모습이 마치 작가 최명익이 쓴 소설 ‘장삼이사’ 에 나오는 나, 같아. 장삼이사? 그래, 도망을 갔다가 잡혀오는 창녀와 신사를 둘러싸고 기차 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지. 바로 그 모습을 내 앞에 앉아 있는 중늙은이처럼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소설 속에 나오는 나, 였어. 그래, 몸집이 크고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붙들려 오면서도 회색 외투를 퇴폐적으로 어깨에만 걸친 채 줄곧 담배만 피우던 그 여자. 당꼬바지를 입은 승객이 여자를 바라보며 -만주루 북지루 댕겨보믄 돈벌인 색시 당자가 제일인가 보든, 이라고 내뱉는 말에 어깨를 흠칫하던 그 여자.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고 내가 그 여자와 마주앉게 되었을 때 어떤 젊은이에게 여자를 인계하고 하차하는 신사. 그 젊은이가 뺨을 후려치자 입 가장자리를 떨며 울음을 참고 있는 듯 하지만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던 그 여자. 결국 눈에 눈물을 어리우며 화장실에 갔다가 어느새 직업적인 추파를 던질 듯한 요염한 모습으로 화장을 고치고 돌아오는 그 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을 인계받은 그 젊은이에게 -옥주년도 잡혔어요?, 라며 농을 던지는 그 여자. 그 여자 모습을 바라보며 갑자기 껄껄 웃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하는 나. “어디까지 가는가?”-‘사랑, 그 끝없는 끝’에서 작가 한 마디/ 20세기가 21세기에게··· 탈고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탈고를 하는 동안에도 글쓴이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꾸만 미루었다. 탈고를 마쳐도 선뜻 인세를 제대로 주면서 책을 내줄 만한 마땅한 출판사가 없다는 것도 탈고를 미룬 또 하나 핑계이기도 했다. 〈7년간의 사랑〉에서 〈7년의 사랑〉을 거쳐 〈사랑, 2555?〉로 제목이 바뀐 이 소설은 20세기가 21세기에게 애타게 외치는 목소리다. 글쓴이는 그 쉰 목소리로 21세기란 새로운 역사 앞에 이렇게 적는다. “수배자가 넘쳐나던 시대, 감옥이 비좁았던 시대, 옥살이를 한 번이라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 그 죽음 같은 세월과 그들이 지닌 깊은 슬픔을 발효시킬 줄 알아야 한다. 반역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때 그 아픔 속에 자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품어야 한다.”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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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되어 있는 이지훈이 끝없이 떠올리는 추억으로 스토리는 시작된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은밀히 학생운동을 펼치던 동양식품 프레스공 이지훈은 1980년 2월 마침내 대학을 졸업한다. 졸업한 뒤 여러 사보에 시를 발표하던 지훈은 그해 유월, 능력을 인정받아 동양식품 홍보실로 발령받는다. 하루아침에 사보팀장이 된 지훈은 홍보실에 일하는 박미리란 열일곱 먹은 아리따운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5년이라는 실형을 살아가는 이지훈이 여러 가지 갈등으로 몸부림치는 가운데 스토리는 계속 이어진다. 이지훈은 일곱 살이란 나이 차이와 성숙한 여성, 그 기준에 대해 갈등하면서도 마침내 박미리를 사랑하게 되고··· 속초가 고향인 박미리는 동양식품 박진호 회장 조카로 고교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홍보실에서 일하다 시인이기도 한 스무네 살 먹은 이지훈을 사랑하게 된다. 이들 사랑이 마악 싹 트려는 순간, 광주학살로 일어선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좌익 학생운동권 소탕령’ 에 의해 이지훈은 구속되고 만다. 이지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인 천 번째 편지와 끝없이 이지훈을 그리워하는 미리가 공굴리는 혼잣말이 이어지면서 스토리가 더욱 깊어진다. 미리는 5년이라는 형을 살고 있는 지훈에게 면회를 다니며 마침내 고교를 졸업하고, 이지훈이 졸업한 대한대학교에 입학한다. 미리는 지훈과 약속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지훈이 활동했던 학생운동권 서클에 들어가면서, 지훈을 둘러싼 선배들이 벌이는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해 학생운동과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에 물음표를 던진다. 어느 날, 박진호 회장은 미리를 불러 미리 이름으로 된 등기서류를 건네려 한다. 미리는 어린 날을 되짚으며 숙부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행방과 관련된 어떤 의문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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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555a』는 시인 이소리가 첫 장편소설 〈미륵딸〉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는 장편소설이다. 이 장편소설은 80년대를 살아가는 운동권 남녀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갈등과 삶에 대한 좌절을 ‘사랑’ 이란 사리를 통해 이겨나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자 지난 20세기가 21세기에게 툭 던지는 화두다.
이 상, 최인훈, 박완서, 황석영, 조정래, 김수영, 신동엽, 천상병, 고 은, 신경림 등 100여 명 남짓한 작고, 현역문인들은 이 소설 한 권을 읽음으로서 20세기 우리 명작 대부분을 한꺼번에 간추릴 수 있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소설 틈틈이 나오는 예술인,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에 대한 비유도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또 하나 새로운 재미다. 이러한 소설작법은 예전 소설이 갖고 있는 일정한 틀을 벗어나 21세기 소설문학에 새로운 물꼬를 틔운다. 특히 시인이기도 한 작가가 쓰는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와 사랑을 이끌어 나가는 여성이 지닌 깊은 속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사랑, 2555a』는 이소리 문학, 그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여는 작품이다. 모두 10부로 나뉘어진 이 장편소설은 80년대 운동권에 몸담았던 대학생들이 겪었던 가투나 노동자들 투쟁만을 그린 그런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조건 없는 사랑 속에 끊임없이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재벌들이 펼치는 교묘한 술수 속에서도 사랑이란 무기 하나로 파도치는 시대를 살아온 운동권 남녀가 겪은 고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남성을 바라보는 여성, 그 자잘한 감성과 성관계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이끌어 나가는, 여성이 지닌 본능과 심리를 꼼꼼하게 다루었다. 이 소설은 기존 운동권 소설이 지닌 특징인 투쟁 이야기는 가볍게 건너뛰면서, 그 투쟁 뒤에 빚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과 좌절, 수배생활, 사랑과 희망에 대한 애타는 갈망을 그려내는 데 뿌리를 두었다. 이 소설 기법도 독특하다. 주인공 이지훈과 박미리, 박진호 회장, 오애희, 박 현 등 등장인물이 모두 나, 란 주체로 나오다가 나, 를 떠남으로서 비로소 나, 를 버리고 객체 개념인 이름을 찾는다. 나, 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나, 를 떠남으로서 비로소 객체로 살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