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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 제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직후 서문 1장 종전과 해외영토에의 영향 1. 식민지 민족주의의 증대 1) 2차 대전기 인도차이나 민족주의 2) 일본의 무력 쿠데타(coup de force japonais) 이후 2. 국제무대에서의 반식민주의의 승리 1) 루스벨트의 미국 2) 국제연합(UN : United Nations) 3)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 2장 식민지 문제에 직면한 프랑스 1. 프랑스 식민주의 이념의 강화 1) 논거들 2) 프랑스 식민주의의 ‘사회학’ 3) 호의적인 여론 2. 새로운 식민 정책을 향하여 1) 종전 후의 식민지 논의 2) 헌법적 대응 : 프랑스 연합(Union francaise)의 불가능성 3. 식민지 의식의 위기 1) 식민주의 이념의 반대자들 2) 프랑스인들의 무관심 1부 결론 2부 ‘머나먼’ 인도차이나전쟁 서문 3장 여론의 변화 1. 전쟁의 첫 번째 국면 : 식민지 재정복 활동 1) 여론의 동향 2) 도지사 보고서(rapports des prefets) 분석 2. 전쟁의 두 번째 국면 : 냉전의 중심 인도차이나 1) 여론의 동향 2) 도지사 보고서 분석 4장 인도차이나 분쟁 속의 식민주의 이념 1. 정치계의 입장 1) 불일치, 망설임과 모순 2) 공산주의자들의 반대 2. 지식인의 행동 1) 공산주의 지식인과 그들의 ‘동반자(compagnons de route)’ 2) 사르트르와 『레탕모데른(Les Temps modernes)』 3) 좌파 기독교 지식인 4) 클로드 부르데, 『콩바(Combat)』, 『롭세르바퇴르(L’Observateur)』 5) 우파 지식인 3. 프랑스 내 인도차이나 사회에 대한 인식 1) 프랑스의 인도차이나인 2)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대표단 3) 프랑스의 대응 4. 미국의 군사적 원조와 프랑스 여론 5장 평화를 위한 선전활동 1. 앙리 마르탱 사건 1) ‘평화를 위한 투쟁’과 앙리 마르탱 석방운동 2) 문화적 행위를 통한 반전운동 : [툴롱의 비극] 3) 사건의 의미와 역할 2. ‘더러운 전쟁’ 스캔들 1) ‘장군들 사건’ 2) ‘피아스트르 암거래’ 3. 파업과 저항 2부 결론 3부 제네바, 식민주의 이념의 종말? 서문 6장 “프랑스 공화국은 디엔비엔푸에서 운명을 다했다” 1. 디엔비엔푸 전투에 대한 여론 1) 전투 참여 이전 2) 베트민의 공격과 패배 이후 2. 전쟁의 국제화와 프랑스 여론 1) 중국의 개입에 직면하여 2) 미국의 개입에 직면하여 3. 패배에 대한 재판 1) 정치인의 책임 2) 공산주의자의 책임 7장 프랑스와 군대 1. 프랑스인의 군대 인식 2. 전쟁과 여론에 직면한 군대 8장 제네바 평화 협정과 전쟁의 종결 1.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와 제네바 ‘도박’ 2. 제네바의 평화와 프랑스 여론 3부 결론 맺음말 약어(단체,기관) 및 용어 참고문헌 찾아보기(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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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전쟁’으로서의 인도차이나전쟁?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식민지 전쟁’이자 ‘식민지 해방 전쟁’인 인도차이나전쟁은 프랑스 제국이 무너지는 첫 번째 분쟁으로 볼 수 있다. 제국의 보석이라 불렸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Indochine francaise)’는 프랑스 식민제국의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프랑스는 이곳에서 8년여에 걸쳐 참혹한 사건들로 점철된 혹독하고 절망적인 전쟁을 수행했다. 프랑스 제4공화국의 짧은 기간 동안 인도차이나전쟁만큼 프랑스를 괴롭혔던 문제는 드물었다. 1946년부터 질병처럼 급속하게 번지기 시작한 이 전쟁은 전후 회복기에 들어선 프랑스의 군대와 재정, 그리고 정치 전반을 잠식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이 ‘추악한’ 식민지 전쟁을 수행했는가? 왜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고, 수많은 예산을 낭비하며, 수많은 양심에 고통을 주었는가? 무엇 때문에 이 머나먼 땅에 프랑스 주권을 보존하기 위해 그토록 집착했던가? 오늘날 인도차이나 식민지 해방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반면에 식민지 해방의 필요성이 왜 좀 더 일찍, 좀 더 용이하게 인정되지 않았는지를 자문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인도차이나전쟁인가? 인도차이나전쟁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념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주제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은 인도차이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그들 생각의 저변에 ‘거북스러움’, ‘후회’, ‘기대를 저버린 희망’, ‘무기력함’ 등의 감정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음을 인지했다. 오랜 세월 이 문제는 열정을 야기했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인도차이나전쟁을 종결시킨 제네바 협상이 체결된 후 70여 년 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이 시기에 관해 침착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에 대한 기억은 자존심이나 오만, 죄의식이나 회한 등의 감정에서 벗어나 차분한 상태에서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멀어져 있는 것이다. 집단 심성의 역사 본 저서는 식민지 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집단 심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도차이나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응과 입장, ‘보통 사람들’, ‘다수의 일반인들’의 집단적 태도와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인들의 여론, 특별히 식민지 문제를 둘러싼 ‘식민주의 이념(idee coloniale)’의 역사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프랑스인들의 의식 속에 인도차이나 문제, 더 나아가 식민지 문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쟁 중에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여론조사와 신문, 정기간행물, 『관보(官報)(Journal officiel)』, 내부보고서(bulletins interieurs), 정당보고서(organes des partis) 그리고 도지사 보고서(rapports des prefets)를 폭넓게 활용한다. 프랑스인의 식민주의 이념 결론적으로,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해외영토에서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위대함과 프랑스인의 영화를 보증하는 수단으로써의 해외영토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에 깊이 관여하기를 원치는 않았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꼈던 것이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다시 말해 인도차이나에 대한 식민주의 이념 또한 다수에 의해 여전히 수용되고, 내면화되었지만, 프랑스인들이 그것에 충실했다는 것은 확신보다는 ‘익숙해짐’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동은 프랑스가 동남아시아의 옛 식민지에 대해 보여준 무관심을 통해 상당 부분 설명된다. 적어도 인도차이나전쟁을 통해서 볼 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됐던 프랑스인들의 식민주의 이념은 프랑스인들의 의식 속에 실제로 각인되기보다는 매우 피상적이고 확신 없이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