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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동안 청주 원도심의 골목길을 걸으며 삶과 예술을 기록한 박경수 화가의 그림에세이
우암산 아래 달동네 수암골과 인연을 맺고 19년 동안 벽화를 그리고 보수해 온 저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 속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고 지나간 이웃들의 진솔한 삶을 선과 색으로 붙잡아 캔버스 위에 채워 넣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주인 없는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수암골의 복덕방 ‘삼충상회’, 이빨 빠진 모습으로 천진난만하게 웃던 [웃는 아이 삼 남매] 벽화, 가파른 산비탈 탓에 변소 위에 만들 수밖에 없었던 장독대, 삶의 무게만큼 억척스럽게 얽혀있던 지붕 위 전깃줄을 묵묵히 응시한다. 또한 재개발 공사 가림막에 갇혀 더는 그릴 수 없게 된 사직동의 파란 대문 집,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남주동의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으며 그 공간에 축적된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의 연대기를 그림으로 기록한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을 ‘우리 시대, 혹은 그 전 세대들의 진솔한 삶의 기록’이라 말하는 박경수 화가. 그의 다정한 수채화와 투명한 문장을 따라 걷다 보면, 독자들은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골목길 모퉁이마다 불 밝히던 가로등의 온기를,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당당하게 피어나던 패랭이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록되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삶의 가장 다정한 증거들 재개발과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유년과 평생의 시간이 담긴 골목은 소리없이 허물어집니다. 박경수 화가의 “사라지는 속도를 차마 따라가지 못한 채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는 고백이나, 석면 제거 공사로 지붕이 모두 철거되었다는 사직동 파란 대문 집의 일화에서는 깊은 서글픔이 배어 나옵니다. 하지만 화가는 묵묵히 붓을 들어 그곳에 ‘사람이 살았었음’을 증명해 냅니다. 그 끈기 있는 붓놀림은 사라지는 풍경을 향한 안타까움이자 그 공간을 치열하게 버텨온 사람들을 향한 애틋한 위로입니다. 이 책의 그림들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단순히 풍경을 예쁘게 스케치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서사를 온전히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좁은 산동네라 변소 위에 장독대를 놓아야 했던 척박한 삶, 무거운 전선을 짊어지고 엉킨 실타래처럼 버티고 서 있는 전봇대에서 인간관계를 읽어내는 시선, 아내를 위해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계단을 만든 남편의 사랑을 포착하는 마음. 화가의 눈을 거치면 골목의 낡은 사물들은 고단하지만 숭고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인생 그 자체가 됩니다. 그의 그림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물 하나하나에 이웃들의 삶을 투영하는 화가의 다정한 시선 덕분입니다. 벽돌 구멍 사이에서 붉은 볏을 내밀던 11월의 맨드라미, 메마른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돌담길 패랭이꽃을 보며 “아무리 힘들어도 한 세상 비비다 보면 어찌어찌 살게 된다”고 읊조리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꽉 찬 위로를 받았습니다. 회색 가림막으로 덮인 삭막한 재개발 구역 안에서도, 지붕 위 스티로폼 상자에서 자라나던 초록 식물들처럼 인간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희망을 피워낸다는 것을 글과 그림이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