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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별 하나
별 하나·12 시간의 불사조·13 과거의 현존·14 하루를 산다면·15 하나 되는 날·16 죽음의 그림자·17 춤추는 백련·18 아픈 세상·20 늦여름 매미·21 바람이 불지 않아·22 날리는 세월·24 마지막 눈·26 또 다른 시절·28 늘 언제나·30 광란의 3월·32 2부 홀로 가는 구름 홀로 가는 구름·34 생명·35 파도타기·36 정다운 이름을 찾아서·38 윤회·40 오래된 정·41 어느 마지막 순간·42 얄궂은 소풍·44 아득히 먼·46 연안부두에서·48 떠나기 전·50 돌의 슬픔·52 구겨진 얼굴·54 거꾸로 된 세상·56 시절 탓·58 3부 울다 남은 웃음 침묵의 노래·60 혼자 있는 일·61 울다 남은 웃음·62 태산·64 인생·65 저당잡힌 길·66 시집가는 날·68 사랑·70 당신의 음성·71 배신·72 마중·74 두 갈래길·76 길 찾는 말·78 기억 저 너머·80 그 말·82 4부 꽃이었으면 한 마리 새가 되어·86 꽃이었으면·87 백련사 가는 길·88 하얀 귀·90 폐허 위에 서서·92 초겨울 소묘·94 쪽달의 미소·96 지금 나·98 가을 어느 날·100 위대했던 여름·102 불통不通·104 절반의 세상·106 까치집·107 군자란을 보며·108 그런 때·110 해설 | 이찬규_등불을 들고 가는 시인·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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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엄마 가지 마 울다울다 잠이 깼다 땀에 흥건히 젖었다 베란다로 나온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저 멀리 눈물방울 같은 별 하나 ---「별 하나」중에서 아는 것 가진 것 하나 없는데 무엇을 보내야 하나 무엇을 활공하는 독수리의 멈춘 듯이 보이는 순간의 의미만이 있는 지금을 껴안고 있을 뿐 시간의 불사조는 우리 앞을 날아간다 가볍게 노래하며 즐겁게 발걸음마다에 새겨진 죽음을 거부하면서 바람은 죽음을 스치며 묵직한 휴식의 밤은 계속되리 ---「시간의 불사조」중에서 이제 가을이다 어느 날 나는 죽음을 보았다 네가 죽음을 택하였을 때 네가 선택한 그 장소는 진지한 곳이 되었다 거기서 너는 영원히 지낼 것이다 너의 형체가 조금씩 변화할 때마다 더 이상은 분별할 수 없는 어떤 원소로 흙 속에 섞여 향기로 떠돌리라 그것은 내게 정령으로 돌아와 마음속에 남는 불멸의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현실에서의 너의 부재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한 현존이 되었다 떨어진 나뭇잎은 영원히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다시 돋은 잎은 지난날의 모습을 현존으로 만들 듯 ---「과거의 현존」중에서 떨어지는 눈물 은하수에 이른다면 은하수로 흘러흘러 너에게 간다면 너에게 이르러 별이 된다면 나 또 산산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 파르르 먼지 하나 너에게 간다면 가서 쌓인 먼지 보석이 된다면 네 가슴에 숨어 천년을 산다면 너의 품에 안겨 하루를 잔다면 ---「하루를 산다면」중에서 회오리 지나가고 먹구름도 지나가고 산은 남는다 제비꽃 피는 봄 지나가고 도토리 떨어지는 가을 지나가고 나는 남는다 푸른 산은 내게 푸른 그늘 드리운다 나 거기서 잠든다 ---「하나 되는 날」중에서 백천사 마당 옆으로 개울물 흐르고 뒷산 중턱에 머물던 비안개 방울 수양버들 가지 흔들면서 내려와 내 얼굴에 떨어지네 빗방울에 얹혀 슬며시 다가오네 여름 내내 떼어 보낸 너 몸속에 찍힌 지장指章 드러내려 하는가 비탈진 개울가 수양버들 장막 뒤에 숨어있는 그 사람 ---「죽음의 그림자」중에서 무의도 안쪽 하나개해수욕장 가는 길에 모래 둔덕이 있고 그 너머 늪 언저리에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연못에 연방蓮房 하나씩 이고 있는 연잎들 위로 백련白蓮 두 송이 철 늦게 피어올랐다 초면인 그들과 나란히 앉아 썰물 지는 것을 함께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까닭 없이 휑하니 썰물 진다 어디론가 실컷 쏘다니던 갯바람이 불현듯 찾아와 장난치듯 백련 어깨를 툭 치니 움찔 놀란 듯 잠시 두리번거리다 갯바람 허리를 붙잡고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춘다 호룡곡산 등성이에 숨어 이걸 보고 있던 달이 “그럼 그렇지 무의도에선 백련도 춤추지 않고선 못 배기지” 하더니 슬그머니 구름 뒤로 얼굴을 감춘다 ---「춤추는 백련」중에서 푸르디푸른 하늘 누가 죽였나 내가 자는 동안 내가 우는 동안 달빛 그림자 밟고 왔는데 나를 인도하던 달은 또 어디로 숨었는지 홀로 가야 하는 나에게 차가운 바람은 오락가락 사방 어둠 내리는데 아득하게 흘러간 황매화 지던 시절 아프다 세상이 ---「아픈 세상」중에서 매미 한 마리 저 혼자 긴 가락으로 운다 매미 모두 싣고 떠난다는 전갈 받았을 텐데 여름 내내 바라만 보던 사랑 가을이 온 줄 몰랐나 저리 목을 빼고 부르는데 어느새 떠나버렸나 황량한 외침만 메아리 되고 단풍나무 부여안고 울부짖는 못 다 피운 불꽃 ---「늦여름 매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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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들고 가는 시인
“나는 거의 볼 뻔했다, / 백색의 뇌우 속에서, 나 없이 진행되는 그 무엇을.” - 앙드레 뒤 부셰 -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남녘에는 벌써 매화가 피었다고 해요. 저는 오늘 선생님의 세 번째 시집의 해설 제목을 생각했어요. 「등불을 들고 가는 시인」이에요. 예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시각장애인 이야기가 생각났거든요. 한밤중에 등불을 들고 가는 시각장애인 말이에요. 행인이 그에게 등불은 왜 들고 다니냐고 하자,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지요. “당신이 나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시인이 그 시각장애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폴 엘뤼아르(Paul Eluard)가 명명한 그 시인 말이에요. 그래서 제목은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시에 대한 해설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지금은 막막한 심정입니다. 시에 대한 해설은 시인이 들고 가는 등불의 빛으로 마냥 쫓겨나는 어둠 같은 것이잖아요. 저는 선생님의 등불이 어떤 해설로 인해 멈춰지지도 말며, 붙잡혀지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여 저 먼 곳의 별 하나가 눈물방울이 되는 길을 알려주는. 별 하나 어린아이처럼 엄마 가지 마 울다 울다 잠이 깼다 땀에 흥건히 젖었다 베란다로 나온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저 멀리 눈물방울 같은 별 하나 선생님의 첫 번째 시집은 『바다의 비망록』(2015)이었어요. 그다음 시집은 『시간과의 동행』(2020), 이제 곧 세 번째 시집이 그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탄생은 마지막이라는 시간 설정을 예감하듯 저버립니다. 『시간과의 동행』, 첫 쪽에 ‘시인의 말’이 실려 있었습니다. “5년 후 두 번째 시집, 또 생각됩니다. 이건 정말 마지막 시집이라고, 촛불처럼 시나브로 타들어가는 생에 있어서 어려운 길을 걷지 말자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접어두고 그저 두 번째 시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시간과 같이 걸어가고 계십니다. 시간이 가는 만큼, 선생님은 가자고 하십니다. 그러한 동행은 선생님의 시마다 푸르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미소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동행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면, ‘시간과의 동행’은 어디에 이를까요. 그냥 죽음이라고 할까요. 그냥 그 동행의 매 순간이 죽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삶은 모퉁이, 모퉁이마다 “그저” 조금 더 찬란하고, 고마운 것일까요. 시는 새벽과 노을 사이에서 ‘당신’이라는 삶을 호명합니다. 낡은 옷과 신발을 버리기 전에 저 모퉁이를 더 돌아야하나 저 모퉁이 돌면 하늘이 열릴까 아직은 매일 찾아오는 새벽을 믿게하는 당신이 고맙다 노을이 있어 찬란한 지금이 고맙다 - 「시간과의 동행」 중에서 선생님과 만났던 몇 번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동숭동 어느 주꾸미 집 같은 장소들이 떠오릅니다. 막걸리를 곁들이곤 했는데, 지금도 슬쩍 침이 고이잖아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선생님은 당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시에 대해서 단 한 차례도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따금 이건 좋은 시라고 하며 남의 것을 읽어 주시곤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시 제목을 천천히 대고, 시인의 이름을 호명하고, 시를 읽어 주셨어요. 저는 그때 선생님이 참 좋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타인에게 자신을 시인이라고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모든 힘은 동일자의 동일자에 대한 무능력이다. 여기서 ‘무능력’은 모든 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대신에 ‘~ 하지 않을 수 있는 힘’(힘의 단계에서 행위의 단계로dynamis me energein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조르조 아감벤, 『불과 글』 , 윤병언 옮김, 책세상, 2016, 68~69쪽.) -이찬규 (문학평론가 · 숭실대 불문과 교수) 시인의 말 반갑다 시야 조물주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너를 만나게 하려고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에 오게 했구나 진창에 있던 어린 싹이 훌쩍 자라 연꽃 활짝 필 때를 기다리면서 베인 자리에 고춧가루 뿌려진 듯 얼얼한 가슴 곰삭을 때를 기다리면서 겨울바람에 갈대 다 꺾이고 또 부러지는 숱한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햇간장 익어갈 때 흰 곰팡이꽃 피듯 나날이 나날이 흰머리 피어날 때를 무던히도 기다리면서 6월의 모란 쇠잔한 빛을 내면서 두어 개의 꽃잎 겨우 달고 있을 즈음과 같은 나와 손잡고 가게 하려구 떠다니는 으스스한 가을바람 소리 더 이상 홀로 듣지 않게 하려구 너를 나에게 보냈구나 시야 반갑다 2023년 봄이 오는 동춘에서 김원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