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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프롤로그 _젊은 예술가의 초상
2장 : 1983년 _ 세상 속으로 3장 : 1984년 _ 작가의 길 4장 : 1985년 _ 사회적 · 역사적 상상 5장 : 1986년 _ 강원도의 힘 부록 : 도판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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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부터 꾸준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아온 것은 자신과 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것은 한국성에 대한 문제의식, 즉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과 이어진 것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의 수묵화와 산수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 첫 결과물들이 소나무 연작들이었다. 그것은 서양화의 매체인 종이와 연필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동양적 서사, 한국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창작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시도의 하나였다.
--- p.36 자기 절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은 작가에게 늘 잠복해있다. 보고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의식은 늘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석고를 비롯해 장기간의 학교 교육이 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물화,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보고 그리는 그림은 르네상스 때부터 서구미술의 기초였다. 그것은 자기 억제에서 출발한다. 숨을 고르게 쉬고 곱게 붓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화가에게 육체적인 절제이자 정신적인 통제이기도 하다. 오로지 한 시점에서 가만히 보는 것이 화가에게 요청되는 미덕인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즉각적인 감정을 풀어놓는 것, 보아도 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직관적 터치. 우리를 오래 붙들어온 그리스와 르네상스의 이성적 미술관은 그것을 힘들게 해왔다. 그 순간의 호흡이 중요하고, 오히려 그것이 보편성에로 다가서는 길이기도 한데 거기서 쉽게 못 벗어나게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19세기 말 이후 70여년을 지배해온 모더니즘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1960년대에 성립하였다. 이중섭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이유에는 그런 점도 있다 하겠다. --- p.43 그리스 미술에 바탕한 서양미술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지금도 이집트 미술이 갖는 조형적 요소와 이미지 특성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특유의 굳은 표정과 단순한 선에서 보듯 이집트미술은 직접적이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풍부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 미술은 생동감이 있고 실물감이 있고 그에 따른 육체미가 있다. 그런데 어딘지 허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리스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이집트미술은 원시적이고 미숙한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그처럼 형식면에서 떨어진다고 하여도 거기서 미술의 근원과 창의의 원천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집트미술이다. 나에게는 그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리스미술을 토대로 미술대학 과정을 이수하면서 관심은 자연스레 이집트 미술들로 옮겨갔다. 그 벽화의 그림들을 하나씩 모사해 보면서 새로운 평면적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것은 압축된 입체였으며, 사실적 이상적으로 표현된 그리스 조각보다 더욱 압축된 사실적인 선으로 다가 왔다. 그리스조형이 수학적으로 측량된 비례에 의거한 이성적 아름다움이라면 이집트조형은 원형의 것이 주는 사실적 아름다움으로 보이기도 했다. --- p.72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의식적 붓질 자체만으로 회화의 완성이 되는 그림들 중에 어떤 것들은 동양의 서예처럼 여백 있는 선묘 그림들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한스 아르퉁이나 잭슨 폴록의 그림들에서는 무의식상태에서의 선긋기, 칠하는 행위 자체가 그림의 주제, 개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1980년대 초 한동안 동양 수묵화에 익숙한 한국 미술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83년에 내가 드로잉 관련 전시 두 곳에 참여하게 된 것은 당시 한국미술계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 p.74 한국 근대회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건은 여성의 나체를 그린 것이다. 특히 대학미술에서 누드는 정규과목인 소묘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그리스 이래의 유럽미술의 전통이 일본의 미술교육을 통하여 식민지 한국에 전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누드가 그림의 소재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 그림 정도였을 것이다. 그것은 누드 자체의 표현은 아니었다. 앞선 일본만 하더라도 근세 일본화에 목욕탕 장면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처럼 미적 대상으로 누드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 석고소묘를 통해 기초소묘의 훈련을 받은 한국작가들은 옷 벗은 한국사람들을 그리게 되면 다소 당황하게 되었다. 이상적인 인체를 지향하는 서구형 비례의식에 익숙해진 눈에는 동족의 자연스런 인체에서 나오는 모든 비례가 다소 왜소하고 볼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형식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누드의 표현이 그러하다. --- p.77 도시는 사건이 없어도 언제나 답답함과 소외로 가득한 문제적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못 느끼거나 혹은 안 느끼는 척 할 뿐이었다. 인간의 문제는 곧 도시의 문제였다. 점점 그런 경향이 심화되어갔다. 도시는 인간을 다르게 만들어간다. 도시에서 인간은 달리 행동한다. 입는 것에서부터 행동거지 모두가 달라진다. 그렇게 엉켜 돌아가는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 생물체로 서용선에게 다가왔고, 그로 하여금 역사화와 같은 위상을 도시의 그림에 부여하게 했다. 그가 보기에 도시는 곧 현재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도시화(都市畵)는 곧 역사화의 한 종류이자 이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도시의 그림들 사이로 역사적 주제의 그림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않았던 소재들이 떠오를 때마다 애매한 형태라도 우선 그 소재부터 그려두기를 반복했다. 도시의 소재는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지만 역사의 소재는 순식간에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그때를 붙들어야 했다. 그에게 역사는 곧 과거의 도시문제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 p.121 도시는 마치 모형처럼 보인다. 도시의 성격은 무엇인가. 약속된 기호에 움직이는 것이 도시가 아닐까. 사람들의 패션에서부터 거리의 신호기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통제하는 기호들이 도시의 성격을 규정한다. 약속이 깨어지면 도시도 깨어지는 것이다. 사회화 집단화 자본화되어가는 도시의 속성과 표정을 추상화하여 드러내는 기호로서 나는 몇 가지 표식을 발견하고 그림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찰관, 그리고 경광등을 단 순찰차는 도시의 여러 통제장치의 대표적 상징이다. 하나의 표식은 하나의 추상화된 그림이다. 그 표식이라는 그림을 끌어들여 도시의 속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사람조차도 이런 경우는 하나의 표식이 된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그릴 수도 있지만 우선 사람이라는 표식으로서 그 사회의 속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에 더 중점을 둔 것이다. 비록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으로써 도시의 표정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림의 언어의 하나로써 활용하고 싶은 것이다. 다소 불편한 느낌을 주더라도, 아니 억지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라도, 기호들이 도시공간을 점령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 p.145 역사의 경우에도 단순한 모사보다는 역사적 풍경화를 그리자는 것이었다. 도시를 그릴 때 도시의 사회상을 그리듯. --- p.161 인체 누드는 서너 번에 걸쳐 두 시간씩 모두 7~8시간은 해야 완성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대학입시를 위한 습작은 3시간짜리가 대부분이었다. 호흡 짧은 그림이 될 수밖에 없는 수업방식이었다. 그나마 인체 없이 석고상으로만 습작하는 처지는 더욱 딱한 것이었다. 끝까지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는 반토막짜리 습작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었다. 석고상은 왜 반신상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모두 전신상이라는 것이었다. 비용의 문제였다. 한국 작가들이 표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소묘의 호흡이 짧아서, 충분히 하나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실험미술이니 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실정이었다. 압축 경제 성장이라 말하지만 압축 미술이라고 할까. 부실 시공이라 할까 사상누각이라 할까.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해보는 경험이 없이 작가가 되니, 기량이 취약하고 작품에 감동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만했다. 입학 실기 시험은 일본 동경대학이 10시간을 보는 반면 한국의 서울대학은 3시간에 불과했다. 사실성의 성취에 시간이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의 반신상과 달리 일본의 경우는 전신상, 심지어 기마상을 그대로 뜬 원석고를 시험장에 내놓았다. 한마디로 전통의 문제였고 경제력의 차이였다. --- p.165 그림은 결국 보는 것이 관건이다. 얼마나 정확히 보느냐에 달렸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어떤 대상이건 자기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자기 의식으로 끝까지 보고 그릴 필요가 있다고. 그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보다 보면 안 보이는 것을 보게도 된다. 볼 수 없는 과거의 일도 마음의 눈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p.165 지하철은 도시의 상징으로서 이후 자주 그려나가게 되었다. 지하철은 아마도 도시사회의 가장 큰 특징적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닐까. 대량으로 사람을 땅속으로 이동시키는 그 시스템은 자본의 속성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도시가 밀집하면 할수록 지하철은 확대된다. 도시의 주요한 기호 중 하나가 신호등인데, 신호등과 같은 사인(sign)으로 말하자면 지하철처럼 많은 곳도 없다. 대중을 한데 모아 다량 수송하기 때문에 많고도 복잡한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지하철의 사인이 가리키는 지점은 순수한 공간으로서의 장소가 아니라 도시의 기능으로 구축된 장소성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지하철에는 그래서 상징요소가 매우 풍부하다. --- p.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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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하는 1980년대
거센 바람과 파도에 이름 모를 배 몇 척이 출렁인다. 저곳은 어디인가, 저들은 누구인가. 그림에 만약 임진왜란이란 제목이 없다면 그것이 1592년 명량의 해상인지 아니면 2014년의 진도 앞 바다인지 분간할 길 없다. 그림이란 종종 이처럼 보편적이다. 마치 바다와 풍랑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이듯이. 이 책 표지의 그림은 작가 서용선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4년에 거의 실물 크기의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것이다. 당시 서용선은 서울대 미대 대학원의 서양화과를 졸업한 시간강사였다. 작가의 길로 막 들어서 몇몇 단체전에는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림은 한점도 팔아보지 못한 때였다. 그 시대는 그의 은사 교수들도 작품을 팔기 어려운 때였다. 화랑이라고 해야 인사동에 두어 군데 있을 뿐, 그림을 사는 사람도 그림을 구경할 곳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컬러 텔레비전이 방영되고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 불과 몇 년 안쪽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입에 담기 위태로울 정도로 불온한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후 30년 사이에 모든 것은 일변하여 경제와 정치와 문화는 호황을 구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넘치는 과잉 생산과 소비의 세상에서 그림은 어느덧 값비싼 물건이 되고 미술은 고급하면서도 대중적인, 일견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예술이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0년 전의 서용선과 그 시대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서용선은 이제 30년 전을 돌아보며 이 책을 낸다. 수장고 속에 잠자고 있던 스케치북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나이든 종이 그림을 한 장 한 장 들추어가며 동생의 힘을 빌어 조명을 비추어 사진을 찍고 컴퓨터의 웹하드에 올려 종이에 인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이 책이 탄생했다. 30년을 넘는 세월 중 불과 일부 기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과 같은 드로잉 오백 점이 가득 들어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그려낸 작품들을 빠짐없이 한데 모았다. 그의 나이 서른 두 살에서 서른 다섯까지의 시기다. 작가 경력 30년을 훌쩍 넘긴 중견 화가의 초창기 드로잉의 총결산이다. 캔버스의 원화는 따로 있고, 여기에 모인 것들은 어디까지나 드로잉 작품들이다. 생각을 끌어내는 밑그림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완성작일수도 있는 드로잉을 위주로 한 작품집이다. 드로잉의 속성이 그러하듯 캔버스 그림으로 완성되어 재탄생할 날을 기다리는 것도 있고, 아직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모르게 언제일지 알길 없는 때를 기다리며 있는 그림들도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더 이상의 손길이 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완성작으로서의 드로잉도 허다하다. 드로잉이 그 자체로서 갖는 작품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에 화단의 주목을 끌기에 족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일기장이자 작품의 연대기로서, 30여년에 걸친 작가 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의미에서 내어놓는 일종의 예술적· 사회적 보고서라 할 수 있겠다. 작가 인생 30여 년의 중간 결산 보고서 하나하나의 그림에는 큰 목소리나 요란한 몸짓을 드러냄 없이 당시의 사회를 살아가던 한 젊은 예술가의 렌즈에 비친 사회와 군중과 자아의 초상이 찬찬하고도 진솔하게 배어있다. 그 자체로 한 시절 한국의 자화상을 소리 없이 그려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말없는 그림을 보완하여 글이 첨부되었다. 그림 사이사이에 곁들여진 이백 자 원고지 400매 가량의 글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작가노트 내지 작가일기라고 부를 만한 글이 서용선의 회상이란 타이틀로 시종 이어진다. 그 시절 청년 작가의 일상의 기록과 더불어, 작품의 구상과 그 배경에 대해 서술한 작가의 육성이다. 이것은 작가의 개인사인 동시에 사회사이며, 더불어 미술사의 한 부분을 이룰 밑바탕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드로잉이라 할 만하며, 흥미로움과 함께 사료적 가치 또한 평가받을 만 하다고 하겠다. 작가의 직접 육성으로 들려주는 회상과 더불어, 제 3자적 시점에서 작가와 그의 작품,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적 환경을 조명하는 서술이 글의 한 축을 이룬다.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인 박윤석이 서용선과의 오랜 면담을 통하여 그의 세계와 그를 둘러싼 세계―즉 사회상과 시대상을 교직하여 한 시대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다. 동양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는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 책은 따라서 작가 개인의 내밀한 기록이면서 그 시대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한 표정이며 그 시대의 역사를 구성하는 한 이면에 대한 글과 그림의 교차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글이라는 기호와 그림이라는 이미지로 구성한 회고록이고 회고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 회상의 대상은 작가의 젊은 날이다. 고통스럽고 미숙하지만 푸르른 시절. 그것은 또한 작가의 오늘을 있게 한 근원으로서 이 사회의 한 시절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드로잉이 대접받지 못하던 시기의 드로잉 지금처럼 그림이 대접받지 못하던 시기의 그림 지금처럼 화가가 대접받지 못하던 시기의 화가 지금처럼 그림을 사고 팔지 않던 시기의 그림 그리기 그 시대와 사회의 그 모든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회상한다. 이 책은 그래서 예술의 길에 들어선 한 젊은이의 개인적 일기장이자 그가 몸담은 사회의 연대기이며, 이제는 그만 한 세대 전으로 넘어가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출간 의미 작품, 특히 드로잉만으로 구성하는 조형작가의 연대기라고 하는 이 같은 장르는 구미의 미술계에는 보편화되어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경우다. 이 점은 한국 미술계와 미술서적에 있어 진일보라고 부를 수 있는 측면일 것이다. 단순한 화집이 아니고, 그림을 소재로 한 에세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평전과는 또 다른, 유례없이 독특한 구성의 책이라 할 것이다. 작가의 나날을 시기별로 구획하여 전 작품을 망라하고 작품과 그 배경,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글과 그림의 교직으로 연대기적으로 그려내는 이 독특한 양식은 앞으로의 한국 미술에 있어 작가와 향수자 모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면서 하나로 맞물려 들어가는 시도는 두 매체의 속성상 비록 지난한 것이긴 하지만, 글과 그림의 어느 하나로서만 온전히 이루어내기는 힘든 세상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개인과 사회, 예술과 인생, 당대와 역사를 탐색하는 여러 방식 중 새로운 방식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란다. 관성적 타성을 경계하며 장기간에 걸친 자기 쇄신과 시험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서용선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생애에 관한 예술적 사회학적 연대기를 글이라는 기호와의 공조로 기획해내었다는 사실은 그의 실험정신에 있어 또 하나의 이정표로 기록될 수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