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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다시 길 위에 서는 이유
1부 상처 입은 땅에서 삶을 만나다 1화 자유를 잃어 본 도시 트빌리시 2화 돌에 새긴 역사 조지아 연대기 3화 성벽이 기억하는 것 시그나기 4화 카즈베기로 가는 길 군사도로 5화 빙하를 향해 게르게티 빙하 6화 빗속을 걸어 차우히를 바라보다 주타 7화 시간이 멈춰 버린 계곡 트루소 밸리 8화 콜키스의 땅에서 신화를 만나다 쿠타이시 9화 신화의 강을 거슬러 메스티아 10화 사라지는 빙하 앞에서 슈하라 빙하 11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 우슈굴리 12화 먼저 아는 자와 뒤늦게 깨닫는 인간 프로메테우스 동굴 13화 오래된 도시에서 만난 내일 우플리스치케 14화 영웅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고리 2부 문명의 폐허에서 인간을 만나다 1화 다시 낯선 길 위에서 이스탄불 2화 책에서 읽던 바다 앞에서 보스포루스, 베벡 3화 신앙과 신화가 겹치는 곳 아야소피아, 바실리카 시스턴 4화 커피도 여행을 한다 그랜드 바자르 5화 오래된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 트로이 6화 폐허에서 시간을 만나다 에페소스 7화 물이 돌에 시간을 새기다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 에필로그 길이 내게 남긴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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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가까이에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다른 얼굴을 가진다. 가까이에서는 혼잡하게 길을 막는 공사장과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 벽이 벗겨진 오래된 건물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그 불완전함까지 강과 언덕과 집들 사이에 섞여 도시의 한 부분이 된다.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가까이에서는 흠집이 먼저 보이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조금 멀리서 함께 바라보면 그 흠집 역시 그의 삶을 이루는 일부가 된다. 완전해서 아름다운 삶은 드물다. 오래 견딘 것들은 대부분 어딘가 닳고 깨지고 상처를 품는다. 도시도 사람도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얼굴에 새긴다.
--- p.24 나는 그곳에서 돌아섰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생각에 붙잡혀 무리해서라도 더 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 걷다 보니 돌아서는 것도 걷기의 일부라는 것을 배운다. 목적지에 발을 딛는 것만이 완주는 아니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 무사히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데까지가 산행이다. 젊을 때의 용기가 한 걸음을 더 내딛는 데 있었다면,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용기는 때로 그 한 걸음을 멈추는 데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 p.62 지금은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드는 풍경이지만 그것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실제 삶을 지키기 위한 공간이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유산이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이 험한 산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있다. 우슈굴리는 오래된 풍경을 전시해 놓은 마을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 p.110 튀르키예에는 ‘커피 한 잔의 기억은 40년을 간다’는 뜻의 오래된 속담이 있다. 한 잔을 함께 나눈 사람과 인연을 오래 기억한다는 의미다. 터키시 커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Turkish Coffee Culture and Tradition, 2013)에 오른 것도 커피를 끓이는 기술만을 인정해서가 아니다. 한 잔을 둘러싼 환대와 우정, 대화와 의례까지 함께 이어져 온 문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혀끝의 맛만이 아니었다. --- p.197 어쩌면 나는 트로이를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 온 트로이와 작별하러 왔는지도 모른다. 책 속의 도시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실제 도시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 차이를 직접 보는 데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고 이 먼 곳까지 왔다. --- p.211 인간은 길을 만들고 항구를 건설한다. 그러나 강은 계속 흐르고 흙은 계속 쌓인다.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도시가 먼저이고 자연이 배경처럼 보이지만 더 긴 시간으로 바라보면 순서가 바뀐다. 도시가 자연의 한순간이다. 바다가 있던 곳에 들판이 있고 배가 드나들던 길 위로 관광객이 걷고 있었다. 에페소스에서는 변화한다는 말이 철학적 관념이 아니라 눈앞의 풍경이었다. --- p.217 몇 개의 비석 앞에 서니 역사의 모습이 달라졌다. 역사는 왕과 장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를 만들고 길을 닦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아이를 키우고 신에게 기도했던 수많은 사람의 삶이 쌓여 역사가 된다. 그들의 이름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몇몇 이름과 문장은 돌 위에 남았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알 수 없는 돌덩이였다. 휴대전화 화면에 문장이 나타나자 이름이 생기고 고향이 생기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나타났다. 글자를 읽자 돌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 p.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