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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이 책은 왜 나왔는가
1장 / 철학을 ‘언어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와 “하늘의 운행은 강건하다” “칸트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학이제일” 여태껏 방법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중국 학문은 자연과학의 기초가 부족하다 철학 명저는 많아도 얇고 읽을 만하다 왕하오와 철학의 두 가지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현장은 망신당할까봐 감히 『노자』를 번역하지 않았다 점혈법 2장 / 왜 ‘도’가 제1범주인가 인류의 생존과 지속이 출발점이자 기초다 고릴라-침팬지-인간 이성이 주체와 객체를 분리했다 피아제의 동작과 듀이의 도구 미는 ‘도’의 자유로운 운용이다 현대 심리학은 여전히 갓난아이 단계에 있다 3장 / 능히 포용하고 학습하고 흡수하고 소화할 수 있다 논리적 가능성과 현실적 가능성 문자가 언어를 제어하게 된 원인 ‘지혜’는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개체를 홀시하는 것은 일종의 전쟁 사유다 차이이蔡儀는 핵심을 움켜쥘 수 있었다 필요한 여사 4장 / 이성의 신비와 종교 경험 종교와 감성의 신비 경험 개체 창조성의 원천 우주-자연은 내가 유일하게 신봉하는 신이다 발견은 모두 발명이다 5장 / 무사 전통의 정감 - 이성 구조 전통을 연구하는 데 관념과 텍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았다 무술 의례에 담긴 ‘정 본체’의 단서 ‘예’의 신성성과 신비성 ‘천도’는 ‘인도’ 가운데 있다 6장 / ‘본체’ ‘본체론’ ‘철학’ 등의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펑유란은 왜 ‘서체중용’에 찬성했나 심리형식과 ‘추상계승법’ ‘철학이 중국에 있다’와 ‘중국의 철학’ 후성은 결국 학자였다 중국은 어떤 철학을 받아들였나 7장 / ‘정 본체’의 외적 확장과 내적 확장 ‘정 본체’의 외적 확장은 정치철학이다 ‘양덕론’은 정치철학의 기초다 계몽은 제도로 실현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문명의 충돌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할지라도 살아가야 한다 시간과 ‘시간성’ “한가함이라는 근심이 가장 괴롭다”와 “어느 때가 되어야 아득바득함을 망각할 수 있으려나” 인류가 없다면 선악과 미추가 어떻게 있겠는가 8장 / 나의 일생은 단순하고 평범했다 네 가지의 ‘조용함’ 나와 후펑 사건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평생의 유감 미국 학생 집에서 늘 과학잡지를 구독한다 인간이 배양한 정감 심리인 ‘정 본체’ 부록 1. ‘양덕론’을 출발점으로 보편가치와 중국 모델을 이야기하다 2. 퉁스쥔과의 대화 3. 리쩌허우 인터뷰 목록(2006~2011) 4. 다시 리쩌허우를 말하다 - ‘철학 연구’가 아닌 ‘철학 창작’ _류쉬위안 - ‘시행착오’를 통해 활로를 찾다 _샤오궁친 - 중국은 어떻게 가능한가? _류짜이푸 재판 후기 주註 옮긴이의 말 ‘하나의 세계’에서의 ‘시적인 거주’는 어떻게 가능한가? 찾아보기 |
李澤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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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언어의 서양철학에서 경험의 동양철학으로의 거대한 전회 팔순의 리쩌허우가 밝히는 ‘철학’의 미래 전망 저는 언어보다 더 근본적인 ‘생生’, 생명·생활·생존의 중국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고시대부터 비롯된 이 전통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천지의 커다란 덕을 생生이라고 한다” “생生하고 생生하는 것을 역易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이것은 인간만이 지닌 자유 역량이자 인간의 언어가 발생하고 발전하게 된 진정한 기초이자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에요. 일하는 것이야말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_1장 「철학을 ‘언어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도구 본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생산-생활-생명입니다. 두 개의 본체에서 두 번째는 ‘심리 본체’ 즉 정감-이성 구조이지요. 이 두 본체는 바로 제가 거듭 말했던 외재적 인문과 내재적 인성, 외재적 예(의義)와 내재적 악樂(인仁)이에요. 이런 견해는 중국 고대의 갖가지 문헌이나 각 학파의 학설과 개념을 근거와 출발점으로 삼은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화민족이라는 오래된 존재 실체의 실천활동을 근거와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죠. 중국의 5000년 생존 경험, 더 거슬러 올라가면 8000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규모와 기나긴 시간을 저는 13억의 ‘거대한 시공時空 실체’라고 부릅니다. 이것의 생존 지혜야말로 오늘날 철학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고, 이것이야말로 제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자 기초입니다. 그 안에 포함된 생존 지혜, 이것이야말로 중국 철학이 세계에 등장하는 데 진정한 실력이자 기초지요. 제가 여러 번 말했던 중국 전통의 ‘신神’이지요. ‘형形’이 아닌 ‘신’입니다. _2장 「왜 ‘도’가 제1범주인가」 2013년에 나온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글항아리)에 이어 리쩌허우의 만년 담화집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가 출간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리쩌허우의 사상을 총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산만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농밀하면서도 친근히 와 닿는다. 물론 리쩌허우 사상의 원숙함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문제의식이 바로 지금 ‘나’와 ‘우리’의 생존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에서 나 그리고 우리의 ‘시적인 거주’는 어떻게 가능한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시각각으로 곧 사라지고 순식간에 다가오는 생명과 삶을 어찌 감히 아끼지 않을 수 있나요?”(리쩌허우) “어느 때가 되어야 아득바득함을 망각할 수 있으려나.” “한가함이라는 근심이 가장 괴롭다.” 리쩌허우는 소식과 신기질의 말을 통해 모순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묘사했다. 인간은 늘 생계를 염두에 두고 살며 온갖 관계의 그물망 속에 놓여 있기에 내 삶이 진정 나의 것이 아님을 한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고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나게 되면 인생에 목적이 없어지고 더 고통스럽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고 마음을 기댈 데가 없는 무료함에서 나오는 허무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종국의 문제를 보다 쉽게 떠올리게 된다. 리쩌허우는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상, 이 모순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자 인간의 존재 상태라고 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 즉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 사는 게 어떠한가의 문제가 자신의 철학의 첫 번째 문제이자 진정한 철학 문제라고 말한다. 실용이성, 낙감문화, 무사巫史 전통,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충, 유가와 법가의 호용, 두 종류의 도덕, 역사와 윤리의 이율배반, 문화-심리 구조, 서체중용, 누적-침전설, 제1범주로서의 도度, 정 본체……. 리쩌허우가 중국과 서양의 철학적 자원을 바탕으로 일구어낸 일련의 독자적 사상들 가운데 ‘정 본체’야말로 앞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다. 그는 인간의 고독과 무료함이 전례가 없는 정도에 이른 오늘날, 모든 가치와 의의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 사조에 반대하며 ‘정 본체’를 제기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난제가 없었다면, 정 본체는 나올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제기한 정 본체란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애착과 깨달음이다. “베와 비단 같은 글文, 콩과 좁쌀 같은 맛味. 덕을 아는 자 드무니, 그 귀함을 누가 알리오.” 리쩌허우는 주희가 말한 ‘글’과 ‘맛’이 순전히 ‘욕망’만도 아니고 순전히 ‘이理’만도 아닌, 일상의 삶을 아끼는 ‘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의 삶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두 개의 세계가 없어요. 오로지 하나의 세계뿐이죠. 하나의 세계에서는 초월할 방법이 없어요. 신이 없고 다른 세계가 없는데, 어디로 초월을 하나요?” 리쩌허우가 말하는 중국의 전통은 ‘하나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신이 있고 초월할 다른 곳이 있는 ‘두 개의 세계’에서 비롯된 서양 전통과의 근본적 변별점이기도 하다. 하나의 세계, 생존의 경험, 역사, 생명, 인간, 정감……, 이것은 리쩌허우가 강조하는 중국의 전통인 동시에 리쩌허우 자신의 철학적 토대이기도 하다. 요컨대 신이 없는 하나의 세계에서 인간은 역사의 누적-침전을 통한 생존의 경험을 토대로, 생명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인간 스스로 인간(능력과 정감)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물론자임을 강조하는 리쩌허우의 철학은 “신·이성·의식·언어·자아 등이 아닌 인류의 생존과 지속에서 출발했고 또 이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인류 총체의 생존과 지속이야말로 그가 말한 최고의 선, 지선至善이다. 확정성을 추구하는 서양 전통에서는 신이 죽자 이성이 동요하고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휩쓸렸지만 영원한 변화와 과정을 말하는 중국 전통에는 확정성의 추구가 없기에 허무주의도 없다. 영원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아끼고 애착하고 슬퍼하고 깨달을 따름이다. 리쩌허우는 ‘정 본체’가, 온갖 급격한 변화와 선택 속에서 대두된 종교에 대한 현대인의 심리적 요구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리라 전망한다. ‘정 본체’ 철학은 ‘인간과 우주의 협동 공존’에 대한 깨달음과 느낌(이성의 신비라는 우주 정감)을 바탕으로 하며, 이는 인간세상의 범속함을 넘어선 종교적 정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리쩌허우의 철학은 도구 본체를 중시하는 ‘밥 먹는 철학’(2장·6장 참고)일뿐만 아니라 이성의 신비에 대한 경외를 중시하는 ‘시적인 거주’의 철학이기도 하다. “빈천을 근심하지 않고 부귀에 급급하지 않으며” “물이 흘러가도 마음은 쫓기지 않고 구름 머무니 마음도 더불어 느긋해진다.” 리쩌허우는 도연명과 두보의 말을 통해 정감적인 인생의 태도이자 삶의 경지를 표현했다. 이것이야말로 시적인 거주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