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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책을 한 권 묶는다. 책을 내는 건 생계의 방책이니 부끄러움이 더하다. 먹고살자고 묻어버릴 글을 다시 꺼내어 먼지를 털었다. 그렇다. 먹고살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아니 우리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말, 먹고살자는 문장을 쓴다. 먹고사는 일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탄생의 본질이다. 먹고살기 위해 배신하고, 거짓말 하고, 누군가를 죽인다. 먹고산다는 명분 아래서 협잡과 사기와 외면의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먹고사는 일은 숙명적으로 우리를 설명하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이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러 먼지가 끼고, 벗겨지지 않은 낙인같은 때를 묻히고도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뜬다. 다들 먹고사는 일 앞에서 분노를 거두고 용서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달리 방법 없는 우리들의 한심함이 먹고산다는 문장을 구성하는 골격이다. 우리는 그 지난한 시절을 보내며 정신과 육체를 학대해왔다. 나는 냉면을 내리던 옛 제면 노동자의 무너진 어깨를 생각한다. 화상으로 가득한 요리사의 팔뚝을 떠올린다. 칼에 신경이 끊어진 어떤 도마 노동자의 손가락을 말한다. 그뿐이랴. 택시 운전사의 밥 때 놓친 위장과 야근하는 이들의 무거운 눈꺼풀과 학원 마치고 조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 봉지를 뜯는 어린 학생의 등을 생각한다. 세상사의 저 삽화들을 떠받치는 말, 먹고살자는 희망도 좌절도 아닌 무심한 말을 입에 굴려본다.
아비들은 밥을 벌다가 죽을 것이다. 굳은살을 미처 위로받지 못하고 차가운 땅에 묻힐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시 아비의 옷을 입고 노동을 팔러 새벽 지하철을 탈 것이다. 우리는 그 틈에서 먹고 싸고 인생을 보낸다. 이 덧없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소주를 마시고, 먹는다는 일을 생각한다. 달리 도리 없는 막막함을 안주 삼아서. 책 안에 있는 글은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를 다루거나,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어 만든 문장들이다. 유별나게 먹는 일의 현장음이 나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 그 광경이 눈에 삼삼하다. 노인이 국숫발을 삼키는 장면이 그 어떤 슬픈 소설보다 더 선명하게 슬펐다. 그것을 잊을 수 없어 이 책에 녹아 있다. 나의 분별없는 시니컬함은 실은 슬픔이라는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 울 수 없어서 나는 냉소했는지 모른다. 그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어쩌다 제목에 미식가가 들어가지만, 내 미각은 실은 미식의 반대편에 있다. 거칠게 먹어왔고, 싼 것을 씹었다. 영양과 가치보다 주머니가 내 입맛을 결정했다. 함께 나누는 이들의 입맛이 그랬다. 소 등심 대신 돼지고기를 구웠고, 조미료 듬뿍 든 찌개에 밥을 말아 안주했으며, 노천의 국숫집에서 목숨처럼 길고 긴 국숫발을 넘겼다. 그것이 내 몸을 이룬 음식이니, 미식이란 가당찮다. 그럼에도 미식이라고 할 한 줄기 변명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순전히 음식의 건실한 효용을 사랑했던 것이다. 가장 낮은 데서 먹되, 분별을 알려고 했다. 뻐기는 음식이 아니라 겸손한 상에 앉았다. 음식을 팔아 소박하게 생계 하는 사람들이 지은 상을 받았다. 그것이 미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미식의 철학적 사유와 고급한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저 밥상들이 나는 진짜 미식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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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맛
겨울 입구의 풍경들 13 계란유감 19 굴 좋아하세요 25 바다에서 나는 풀을 먹었다 31 우리는 가축을 세 번 죽인다 39 졸업식 짜장면 45 호갱님과 강요된 통만두 53 분홍색 '소시지'가 먹고싶다 61 여수의 41번 포차 67 토템으로 먹었던 설렁탕 73 아랫목 이불 속 아버지의 밥 77 가을의 맛 우리는 마트의 젖을 빤다 87 순대 써는 맛, 쌉쌀한 간의 맛 93 싸구려 돼지곱창과 호루몬야키 99 울고 싶은 감정노동자 109 돼지국밥과 노무현 115 김영란법이 서민식당 살릴까? 121 소금과 미원의 경우 127 여름의 맛 아아, 한덩어리 얼음과 새끼줄 135 국수와 곱빼기 141 밥값이 운다 147 만두와 연변 냉면 153 스마트 냉면광시대 159 선술집과 목로, 아직도 남아 있구나 167 치맥하셨나요 삼겹살을 구우셨다구요 177 요리사의 폐 183 차가운 것, 냉면의 얼굴들 191 봄의 맛 멍게라도 먹자면 203 먹는 일에도 염치가 있다 209 김치의 값 217 명란과 육합춘 223 벤댕이골목의 역사 229 목포의 맛 235 노동하는 밥, 시장의 밥 241 요리사를 써먹는 법 247 미슐랭이 빠트린 맛집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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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요리는 인문적이다. 재료의 선택과 조리법에 지리와 역사를 묻힐 줄 안다. 주방에만 갇혔으면 얻기 힘든 미덕이다.박찬일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의 글을 읽어야 한다.
-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먹는다는 것은 처절한 행위다. 근육과 내장 기관이 멈추지 않도록 우리는 배를 채워야만 한다. 주방장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서러움을 안고 버텨내는 것이다. 고달픔과 슬픔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 뿐이다. 작가는 그 또한 너무나잘 알고 있다. 그렇게 그는 이 처절한 생존행위를 이해하며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 취식에 사고를 더한 미학. 그것이 이 글이다. - 칼럼니스트 & 요리연구가 박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