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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밀알인 박원선
윤상일 저
지상사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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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글머리에
배움의 뜰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1장 시련을 딛고

2009년 4월의 어느 날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
강영우 박사와 인연
존경에서 청하는 악수
역사의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낸 소년
-학원 김익달 선사와의 인연 시작
고달픈 피난살이
전쟁에 어머니와 영영 이별
고등학교 입학시험
학원 장학생이 되다
서울대생 박원선
-작은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서울대 등록금 없어
경찰서장에게 빌린 등록금
서울대 교복의 힘
대학생 박원선과 김익달
-우리나라 최초, 학원사 대백과사전
술자리에 당당하게 합류
70년을 한결같이
학보병 박원선
-한국전쟁 후 일시적으로 생긴 병역 제도
당시 군인은 문맹이 많았다
무학자를 공민학교로

2장 교사가 되다

국립서울맹학교 교사 박원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만든 선생님
교사로서 첫 부임지
제자 강영우
최초로 수학여행을 떠나다
맹인이 최초로 대학 입학시험 치르다
맹인 제자가 연세대학교 합격
교사 박원선
-모든 학생들의 아버지
상담 선생님
김익달 선사의 뜻을 실천
제16기 장학생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교수가 되다
가족이 된 강수돌
서울대학교 학생회장
학원장학생 부부
한 사람이라도 더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성장
방법을 찾아서
대학 낙방 후
의형제 같은 친구
결혼, 드라마 같은 이야기
지역 유지가 되다

3장 밀알회와 밀알장학재단

밀알회
-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사·헌신·희생을 추구하는 네트워크
함께라면 무엇인들
장학사업을 세계로
장학 기금을 위한 모금 도예전
-밀알회에게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장학재단을 위하여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도예전은 성료
다시 서울맹학교 교단에 선 박원선
-맹학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전국에서 난방이 가장 빨리
다시 전보 발령을 받았다
하동 소년 소녀 가장 돕기 운동
-주경지 여사와 함께
80년대 서울 구경
빽빽한 일정에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밀알회와 학원장학회
-선친이 처음 학원장학회를 설립한 취지
한 지붕 두 가족
밀알장학재단 설립
-세상에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밀알의 싹을 틔움
장학재단 설립기금조성위원회 발족
학원의 나눔 정신
제1기 밀알장학생 7명 선발

4장 하나로 통합하여 더 크게

학원장학재단과 밀알장학재단
-이제부터 또 다른 시작
기본 재산을 늘리다
밀알정신 계승을 위하여
통합 수순이 시작
학원장학재단과 밀알장학재단의 통합
-통합 그리고 새로운 탄생
통합은 힘든 길
인재 양성 과업을 계승
최덕교 선생과의 인연
-또 다른 거목
〈학원〉 편집장
못 드린 선물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
작고 후 유산까지 기부
박원선과 학원밀알장학재단 그리고 밀알회
-한평생을 한결가티
장학 기금 확충
내조의 힘
평생이 희생정신

5장 세상에서 받은 도움을 다시 세상으로

혼자보다는 함께
-함께는 나라를 살리는 길
언행일치
선후배 화합의 장
한국의 압축성장
소중한 인재들, 함께하는 밀알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실질적 방법
제주 토박이 강세범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
밀알회 월례회
-정보와 지식이 흐르는 네트워크
90대 원로 선배도 함께
학원장학회 후원하는 밀알회
친목 도모뿐만 아니라 역량 강화
화려한 특강
김익달 선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한국 문화사에 큰 발자취
예순아홉 해 발자취
세미나, 전시회 대성황
이름 석 자 김익달
영원한 밀알인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저윤상일

 
1956년 경북 예천 출생이다. 1973년 서울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77년 대학 졸업과 함께 제1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1979년 9기로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내 최고 로펌이라는 Kim&Chang에서 변호사로 출발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을 거쳐 마산지방검찰청 거창지청,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1986년 서울에서 다시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91년 서울종합법무법인을 설립하고 1998년 대표변호사로 취임했다. 1996년 서울 대청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과 강남교육청 학교운영위원
1956년 경북 예천 출생이다. 1973년 서울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77년 대학 졸업과 함께 제1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1979년 9기로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국내 최고 로펌이라는 Kim&Chang에서 변호사로 출발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을 거쳐 마산지방검찰청 거창지청,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1986년 서울에서 다시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91년 서울종합법무법인을 설립하고 1998년 대표변호사로 취임했다.

1996년 서울 대청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과 강남교육청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 부회장,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감사, 재단법인 밀알장학재단 감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99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상임이사, 2008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99년 영국 런던대학의 킹스칼리지에서 Visiting Research Fellow, 2000년 캠브리지대학교에서 Visiting Scholar로 활동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지방동시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 2004년 한국소비자학회 이사,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대한변협신문 편집인, 〈인권과 정의〉 편집인,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학원밀알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2년부터 학교법인 재능학원 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92년 국내 최초로 법조계를 적나라하게 해부한 장편소설 《하얀나라 까만나라》를 발표하여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외에 장편소설 《강변호사 이야기》(1995년), 《아직 오지 않은 날》(2002년), 《고삐리 선생 습격사건》(2005년), 《보이지 않는 제국》(2008년), 《보이지 않는 제국2》(2010년) 등을 발표했다.

특히 《아직 오지 않은 날》은 고교 국어교사들이 고교생 필독서로 선정할 만큼 우리의 교육 현실을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며, 《보이지 않는 제국》은 국제금융재벌의 실체를 흥미진진하게 다룬 것으로 한국의 ‘존 그리샴’이라는 저자의 별명을 재확인해 준 작품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53*224*20mm
ISBN13
9788965020158

책 속으로

미국에 이민을 와서 낯선 환경에서 때로는 인종차별까지 받으며 고생하는 교민들에게 강영우 박사는 교민들의 자부심이며 롤모델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국 한인교회 목사들은 강영우 박사 이야기를 설교에 자주 인용하여 교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고 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한인교회에는 평소보다 두세 배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인 목사가 강단에 올라 강영우 박사의 생애에 대해 설교한 후, 말미에 오늘은 정말 특별한 분이 오셨다며 “강영우 박사의 은사님이신 박원선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 자리에 있던 교민들은 모두 열렬히 박수를 치며 박원선을 환영했다. 박원선은 교민들의 눈빛에서 그들의 박수와 환영이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사실 박원선은 국립 서울맹학교가 교사로서는 첫 부임지였지만 특수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그에 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어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던 것이다. 그저 강영우를 보며 자신이 앤 설리번 같은 교육자가 아니어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어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 p.33

졸업시험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박원선은 일주일 공부하고 졸업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정산국민학교 6학년 150명 중 7등을 차지하여 담임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서울의 명문 수송국민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하던 실력이니 피난살이에 한 2년 공부와 담쌓았다고 녹슬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1953년 1월 청양군청에서 실시한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청양군 전체 1등을 차지하여 학교와 면사무소에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1953년 3월, 17살이 된 박원선은 전교 1등의 성적으로 정산중학교에 들어가 학비를 면제받았고 반장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고달프긴 매한가지였다.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큰어머니의 장짐은 여전히 박원선이 지게로 지고 다녀야 했으니 새벽부터 교복 입은 채로 장짐을 지고 인근 장에 가서 좌판을 펴놓고 다시 정산으로 돌아와 학교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장짐 지게를 지고 무려 30리 길을 왔다갔다했으니 웬만한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행이었다.
--- p.38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고등학생들과 대학교 신입생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대학교 2학년 이상은 성인으로 대우하여 함께 무교동 스탠드바에서 맥주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삼각동의 ‘거상’이라는 고급 한정식집에 가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박원선은 제3기 학원장학생이지만, 중학교 3학년을 건너뛰고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원장학생 제2기와 같이 1958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따라서 박원선은 자연히 김익달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당당하게 합류할 수 있었고 술이 취하면 김익달 선사와 어깨동무를 하고 신문로 선사님 댁에 가서 잠을 잔 것도 여러번이었다. 입주 가정교사를 하는 박원선이 술에 취한 채 밤늦게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김익달 선사님은 아침 일찍 2층으로 새 와이셔츠를 가지고 와서 “옷 갈아입고 얼른 가라”고 했다.
--- p.53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고 그냥 포기하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박원선은 마지막으로 다시 연세대학교를 찾아갔다. 기독교 이념인 사랑과 평등,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된 연세대학교마저 맹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원서 접수를 거절한다면 장애인은 어떻게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제발 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며 담당 교수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박원선의 교사로서의 진심을 안 담당 교수는 눈시울을 붉히며, 입시 담당 교수회의를 열어 다시 논의하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입학원서를 접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고맙고 기쁜 마음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입학시험을 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는 점자로 된 시험문제도 없었고 점자로 작성할 수 있는 답안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강영우만을 위해 새로이 점자로 된 문제지를 만들 수도 없었다. 박원선은 담당 교수들과 입시를 치르는 방식을 협의했다.
--- p.69

박원선의 걱정은 기우였다. 박상복은 원래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도 좋고 성실해서 공인노무사로서 성공하여 지역의 유지로 대접받고 있었고 세 식구가 살기에 넉넉한 아파트도 장만하였고 부인은 치악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 박재순은 아홉 살의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장학생 원서도 제출하지 못하고 울면서 돌아갔던 인제중학교 3학년의 어린 박상복이 이제 40대의 가장이고 원주의 공인노무사로서 지역 유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박원선은 이렇게 어눌하지만 순수한 소년 박상복을 알게 해준 동기 신혜자나 친형제처럼 잘 지내주고 도와준 16기 장학생 강수돌, 무의촌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주말마다 시간 내어 기어이 박상복을 찾아 준 김진범,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자신을 믿고 마음을 보태준 아내 주경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유대 경전인 탈무드에는 ‘누구든지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온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박원선은 원서 마감일이 지나 장학생 지원서를 들고 찾아온 박상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서 우리 사회에서 당당한 일원으로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박원선이 구한 것은 박상복 하나가 아닌 것이다.

--- p.93

출판사 리뷰

강영우 박사는 중도 실명
한국인 미국 역사상 최고위직

강영우 박사가 자서전에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도록 도와주었던 박원선 선생님이고 그래서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라고 썼는데 교민사회에서는 이 사실이 너무나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국립서울맹학교 교사인 박원선 선생은 자신이 가르치던 강영우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대학마다 찾아다니며 맹인도 입학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만이라도 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고 한다. 강영우는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후 미국의 명문대학교인 피츠버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리노이대학교 교수, 일리노이주 특수교육국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임명되기도 했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 100년 역사상 최고위직이었다. 그 후 강영우 박사는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루즈벨트재단 고문으로서 장애인의 복지와 권익 향상에 헌신하여 국제로터리 인권상을 받기도 하였다.

교사 박원선의 역할은
모든 학생들의 아버지

1986년 6월 17일 서초구 방배동 낡은 아파트로 퇴근하는 박원선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오늘은 학교에서 보너스가 나오는 날이지만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빈 월급봉투뿐이기 때문이다. 막내딸 혜정이가 언제나처럼 아빠를 반긴다. 큰딸 영신과 강수돌 학생은 아직 귀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식점 일을 하는 아내 주경지가 귀가한 것은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박원선은 멋쩍은 듯 빈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었다. “수고하셨네요. 봉투 속은 안 봐도 되겠지요…?” 아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빈 월급봉투를 소중한 권리문서라도 되는 것처럼 안방 서랍 안쪽에 넣어두었다. 이미 그 서랍에는 빈 봉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보, 미안해. 당신도 많이 힘들텐데….” 박원선은 월급날이면 늘 하던 말을 또 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교사 월급이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갖다 주지 못한지 벌써 20여 년이었다. 음식점을 하는 아내는 늘 빈 월급봉투만 가져오는 남편을 타박하지 않았고 갈 데 없다고 데리고 들어온 학생들도 군말 없이 식구로 받아들여 주었다.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되는 일이라며 미안해하는 남편 마음을 배려해 주었다. - 소설 같은 이야기 갖지만, 실화입니다. 박원선 선생님은 월급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책 사주고 어떤 학생에게는 1년 치 등록금까지 미리 내주고 집에 데려온 학생에게는 학원 다닐 때 내는 학원비 대주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기죽지 말고 대학 생활 알차고 멋지게 하라고 용돈까지 넉넉히 주는 데 사용했다.

혼자보다는 함께
나라를 살리는 길

해외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들의 경제개발모델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사회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그 비결의 핵심을 한국의 집단지성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인은 평소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지만 어떤 스위치가 켜지면 집단 모드로 전환되는데 그 속도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며 이를 순간적 집단전환 능력이라고 했고 어떤 학자는 이를 한국형 집단지성 시스템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한국인 하나하나는 평소에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위기가 오거나 어떤 신호가 오면 집단으로 전환하여 우리가 된다는 것이다. 학원장학회나 이에 뿌리를 둔 밀알장학회의 장학생들은 비록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모두 이 나라의 동량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이었다. 학원장학회를 설립한 김익달 사장님이나 그 정신을 이어받은 박원선 선생님 역시 한 사람의 뛰어난 천재보다 여러 사람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같은 꿈을 꿀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원선 선생님이 장학생들에게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장학금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하계 수련회, 동계 수련회를 통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학생들과 밀알 회원들을 모아 장학생들 상호 간은 물론이고 선후배 간의 친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여 “혼자보다는 함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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