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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프롤로그 추천사 제1장 가난이라는 출발점, 스스로 사다리를 놓다 1 울진 죽변항, 폭풍 전의 바다 2 아버지의 오폭사와 형의 전사 3 중학교 중퇴와 검정고시 합격 4 가난 때문에 등진 고향 5 스물여섯, 최연소 기관장 등극 6 대서양으로 돌린 뱃머리 7 배움은 교실 밖에도 있다: 일본 공장에서 익힌 기술 8 공동체 정신, 나보다 너를 9 멈추지 않는 도전의 항해 제2장 2만 5천 달러의 고철선, 대서양의 신화를 쓰다 1 한국 어선 250척, 바다의 심장 2 수리로 다시 쓴 외화의 의미 3 받지 않고 먼저 건넨 손 4 테네리페 조선소 인수와 사회적 책임 5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혁신 6 나눌수록 강해지는 기술 제3장 사람을 향한 진심, 파도를 이기는 힘이 되다 1 50쪽 의료 문답지의 탄생 2 명절마다 병원 찾은 부부 봉사 3 목숨을 걸고 배운 사람의 무게 4 라스팔마스 교민회 부회장 5 마드리드 한글학교 이사장 6 말이 아닌 삶의 리더십 7 받은 것보다 더 주는 정신 제4장 국경을 넘은 헌신, 민간 외교의 길을 열다 1 원양어업과 민간 외교의 접점 2 고기의 아버지라는 이름 3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4 루안다의 위령탑, 동지들의 이름 5 서울올림픽과 한강을 살린 이야기 6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의 금메달 7 지중해 어업 협정과 알바니아 진출 8 안익태 선생 유택 기증 9 국경 밖에서 남긴 역사 제5장 뭍으로 향한 확장, 그리고 피할 수 없었던 시련 1 호텔 인터불고 대구의 탄생 2 인터불고 건설과 경산CC 건립 3 인터불고 엑스코, 또 하나의 부름 4 원주 인터불고 호텔, 영서권 거점 5 세계 수산업 정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 규제 충격 6 스페인 금융위기, 흔들린 모항 7 차입금과 고정비, 유동성의 덫 제6장 파도의 기억, 무너지지 않는 가치를 배우다 1 국가의 외면, 파도의 변곡점 2 이종 산업 진출의 한계 3 같은 바다, 다른 항로 4 지방 투자와 덫이 된 애향심 5 구조조정 골든타임과 매각 6 기업하기 어려운 현실, 무너지지 않는 가치 7 믿고 맡긴다는 것, 위임과 견제의 경영 제7장 베푼 것은 흘러가고, 남겨진 것은 숲이 되었다 1 떠날 때와 달라지지 않은 고향 2 동영장학재단 설립, 그 40년 3 스스로 돌아가는 나눔 시스템 4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닿은 나눔 5 210억여 원과 19,925명 6 배움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풍요 7 호텔 매각 시련 속, 멈추지 않는 나눔 8 나눔으로 완성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에필로그 부록 1 권영호 회장의 특별 에세이 부록 2 권영호 회장 기록 원문 부록 3 권영호 회장 수훈록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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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는 한국수산개발공사가 프랑스에서 인수한 참치연승어선의 기관장 자리를 과감히 수락했다. 해외여행 자체가 기적에 가깝던 시절, 청년은 김포공항에서 일본과 스위스를 거쳐 파리에 도착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프랑스의 한 조선소로 향했다. (...) 당시 원양어업계에서 기관장이라는 자리는 영광의 보직이 아니었다. 낡은 배와 거친 바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 속에서 언제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노후한 기계들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기피의 자리였다. (...) 그 청년은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스물여섯, 최연소 기관장 등극」 중에서 총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조업을 시작했다.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건졌다. 다른 배들이 모두 빠져나간 그 바다에서, 홀로 남아 일했다. 그때 앙골라 정부에서 바다 쪽으로 스피커를 대고 다급하게 도움을 청해 왔다. “반군 때문에 식량이 다 떨어졌다. 시민과 군인이 굶고 있다. 잡은 고기를 모두 지원해 달라.” (...) 권영호는 달리 생각했다. 지금 저 땅에서 사람들이 굶고 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다. 그것이 전부였다. 기회를 보고 들어간 바다에서, 그는 기회보다 사람을 먼저 보았다. 그는 총탄을 뚫고 고기를 실어 날랐다. 잡은 것을 모두 넘겼다. 그 덕분에 그는 앙골라에서 ‘고기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다. ---「고기의 아버지라는 이름」 중에서 사람들은 저를 보고 재산을 잃었다고, 망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잃은 것은 자존심일 뿐, 재물을 잃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평생 생계를 보장하는 연금이 있고,저를 지탱해 주는 40년 전통의 장학재단이 있습니다. 학교에 기증한 75만여 평의 임야가 있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부르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유택이 있습니다. (...) 그리고 제가 투자하고 땀 흘려 만든 호텔, 골프장, 50여 척의 어선을 거느렸던 선박왕, 대서양의 장보고라는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만,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과 실패가 있었지만 이룩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인생은 태어날 때, 죽을 때는 평등합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갑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결과로 많은 지혜를 얻어서 사람답게,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보여왔던 것입니다. ---「권영호 회장 기록 원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