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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시인, 김현승의 시 세계
“수단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나의 고독은 순수한 고독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진정한 고독이다.” ― 김현승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김현승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세계관과 서구적 생활환경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는 종교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 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탐구에 대해 고뇌하여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김현승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결국 자신이 추구하던 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구를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하였으며 마침내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였다. 대표 시 몇 가지를 통해 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자. 초기 시 중 ‘가을’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김현승이 바라보는 ‘가을’은 단순히 소멸의 시간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고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간으로 변형되어 있다. 즉 그의 자연은 흔히 동화와 순응이라는 의미로의 동양적 자연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을 통해 변형시킨 자연이다. 「푸라타나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가로수)을 소재로 하여 감정 이입의 기법으로 정서를 표출하였다. 이 시에서 사람을 꿈을 가진 존재로 보고 화자는 푸라타나스(플라타너스)에게 너도 꿈을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푸라타나스는 벌써 그의 머리를 파아란 하늘에 두고 있다고 한다. 푸라타나스 역시 사람처럼 푸른 꿈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결국 시인은 푸라타나스를 단순한 식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 같은 생의 반려자로 형상화하였다. 4연에서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라는 것은 인간이 유한적 존재,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자,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인간의 한계 의식 또는 운명 의식을 드러낸다. 나무와 사람은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지만, 꿈과 덕성을 지닌 존재로 예찬하고 현실의 삶 속에서 서로의 고독한 영혼을 달래며 함께 살아가자고 노래하고 있다. 김현승은 8.15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4.19를 거치는 동안 발생한 사회 부조리와 혼란 속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지키기 위해 양심으로 맞서는 의지를 보여준다. 「가을의 기도」에서 그의 기도는 신앙 의식에서 비롯한 모국어와 사랑, 그리고 고독이다. 시인은 절대의존의 신 앞에서 신과 인간이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반성의 기도를 하면서 계속 기도하도록 해달라는 고백과 요청을 하고 있다. 이는 신에 대한 시인 자신의 굳은 의지의 발산인 것이다. 도덕적인 경건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영혼의 요청으로 신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김현승의 신에 대한 절대성은 1960년 중반 이후 많은 사회 변화를 겪으며, 그 속에서 신의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의를 낳는다. 그는 모든 것을 신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회의하게 되고 드디어 단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신과의 단절은 김현승 자신을 ‘고독의 시인’으로 만든다. 60년대 중반기 이후에 나온 시집 『견고한 고독』(1968년 刊)과 『절대고독』(1970년 刊)에서 보이는 ‘고독’이 그것이며 그것은 김현승 시의 중심을 이룬다. 김현승은 신이란 인간들의 두뇌의 소산이며 추상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점점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신은 인간들이 인간 생활을 통일하기 위한 절대 진리, 절대의 법칙을 지탱하기 위해 초월적인 절대자의 존재가 필요하였기에 만들어낸 것이고, 따라서 절대자의 진리가 지속되던 시대에서 신은 절대자로 숭배되었지만 그 절대의 진리와 법칙이 산산조각이 난 현대 사회에서 신은 인간들의 두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또한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에 느끼는 고독이었다. 그의 고독은 구원에 이르는 고독이 아니라 구원을 잃어버리는,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그래서 김현승은 “수단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나의 고독은 순수한 고독 자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진정한 고독이다.”라고 말하였다. 김현승 시인의 고독은 신을 잃어버려 구원을 포기한 고독으로 순수 그 자체의 고독인 것이다. 즉 그의 고독은 인간 본질의 외로움이나 허무의식이 아니라 문학에서는 시 예술 정신이며 윤리 면에서는 참된 양심이 되고자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이는 시집 『절대고독』의 서문에서 “고독을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 예술의 활동이며 윤리적 차원에서는 참되고 굳세고자 함이 된다.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사회적 임무까지도 깨달아 알게 되므로”라고 말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고독은 신과 인간, 양심과 현실에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절망이 아니다. 그는 시 「절대고독」에서 신의 무한성이나 영원성이 실재하지 않음을 비로소 깨달았음을 고백하였고, 그 무한이나 영원을 결국 나 자신의 생명에서 끝나버림을 노래하였다. 1,2연은 영원 부재의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이제야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깨고” 볼 수 있듯 오랜 사유의 결실이며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야 영원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고독의 실체를 알았다는 시인의 깨달음인 것이다. 이후 김현승이 아들을 잃고 쓴 「눈물」을 거쳐, 그의 시 세계는 말년에 가서 그가 한평생 고뇌하였던 인간 본연의 ‘순수한 고독’을 극복하고 다시 신에게로 회귀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