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
옮긴이의 글
1장.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곤경 2장. 대중 지향성에 대한 평형추로서의 종교 3장. 종교 문제에 대한 서구의 입장 4장. 개인의 자기이해 5장. 삶에 대한 철학적 및 심리학적 접근 6장. 자기지식 7장. 자기지식의 의미 칼 구스타프 융 연보 |
Carl Gustav Jung
|
만일 내가 자갈밭의 돌들을 일일이 하나씩 주워 무게를 달고 그 평균 무게가 145g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수치는 그 자갈들의 본질에 대해서 나에게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이 발견을 근거로 누군가가 첫 번째 시도에서 145g짜리 자갈을 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실망하고 말 것이다. 정말이지,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맨다 해도 정확히 145g 나가는 자갈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 본문 중에서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이 심리에 미치는 효과를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통계적으로 세상을 그리는 관행은 개인을 익명의 단위로 바꿔놓고 있으며, 이 익명의 단위들이 모여 대중이 된다. 과학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개인 대신에 조직의 이름들을 제시하며, 그 정점에서 국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치적 현실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도덕적 책임이 불가피하게 국가의 정책으로 대체된다. 개인의 도덕적·정신적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공공복지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앞세우려는 분위기가 지배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개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 결정권을 점점 더 많이 박탈당하게 된다. --- 본문 중에서 심리적으로 대중을 지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하나가 바로 과학적 합리주의이다. 이 과학적 합리주의가 개인들로부터 그들의 토대와 존엄을 앗아버린다.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서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고 통계국의 추상적인 숫자로 전락하고 만다. 개인은 중요성이 거의 없는, 상호 교체 가능한 하나의 단위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 본문 중에서 0을 아무리 많이 더한다 해도 절대로 하나의 단위를 만들 수 없는 것과 똑같이, 하나의 공동체의 가치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수준에 좌우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동체로부터는 그 환경의 암시적 영향력을 능가하는 것은 어떤 것도 기대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개인들의 내면에서 진정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한 변화들은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개인적 접촉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세상의 일들을 처음 벌이고 끌어가는 것이 인간들인데, 그런 인간들이 개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은 몹시 놀라운 일이다. 그런 현상에 대해 우리는 판단의 기묘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 자신에게조차도 수수께끼라는 뜻이다. --- 본문 중에서 불행히도 0이 백만 개 모인다 해도 1이 되지 못한다. 종국적으로 모든 것은 개인의 자질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극히 근시안적인 습관은 무엇이든 큰 숫자와 집단적인 조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 본문 중에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모든 대중운동은 큰 숫자로 대표되는 경사면을 아주 쉽게 미끄러진다. 다수가 모인 곳에는 안전이 있다. 다수가 믿는 것은 당연히 진실임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분명 추구할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선한 것임에 틀림없다. 다수의 외침 속에는 개인의 소망성취를 강제로 빼앗을 권력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최고로 달콤한 것은 어린 시절의 왕국으로, 부모의 보살핌이 있는 낙원으로, 태평하고 책임감이 필요 없는 세계로 아무런 고통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사고와 보살핌은 위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 모든 질문에는 반드시 대답이 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즉시 조달된다. --- 본문 중에서 반종교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대가 기독교 시대의 특별한 성취를 대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관심을 터무니없을 만큼 적게 끌고 있다. 그 성취란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특징을 이루는 말, 즉 하느님의 말씀의 지배권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글자 그대로 우리의 신이 되었으며, 심지어 우리가 그냥 풍문으로 들어 기독교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조차도 말씀은 그대로 신이다. 그리하여 원래 어느 위대한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인간들의 통합과 단결을 선언했던 말이 우리 시대에 와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맞서는 의심과 불신의 원천이 되었다. 맹신은 우리의 최악의 적들 중 하나이다. --- 본문 중에서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의식이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라고 믿는다. 그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무해한 존재라고 여기며 또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죄악에다가 어리석음까지 더한다. 사람은 예전이 가공할 만한 일이 일어났고 또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가공할 만한 짓을 저지르는 자는 언제나 ‘타인들’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의 일일 때, 그 행위들은 재빨리 망각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 본문 중에서 행복과 만족, 영혼의 평안, 삶의 의미, 이런 것들은 오직 개인에 의해서만 경험된다. 국가에 의해서는 결코 경험될 수 없는 것들이다. 국가는 한편으로 보면 독립적인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하고 또 한편으로 보면 지속적으로 개인을 마비시키고 억압하겠다고 협박한다. --- 본문 중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이상을 논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그 사람 자신이 이상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 그의 말과 행동은 실제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존재는 성취되지 않은 가정으로 남는다. --- 본문 중에서 서력이 시작할 때처럼, 오늘날 또 다시 우리는 도덕적 퇴보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도덕성이 우리의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매우 많은 것들이 위태로운 지경이고, 또 매우 많은 것들이 현대인의 심리적 본질에 달려 있다. --- 본문 중에서 |
|
82세 노심리학자가 갈등을 빚는 인류를 향해 던진 메시지!
“개인들이여, 만물의 척도로 세상의 중심에 다시 우뚝 서라!” 칼 융이 ‘현재와 미래’(Gegenwart und Zukunft)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발표한 것은 1957년이었다. 반세기도 훨씬 더 전에 발표되었지만 그 메시지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책의 메시지는 오늘날에 더 절실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대중에만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익명의 뒤로 숨는 행태가 팽배한 세상이니 개인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칼 융은 개인의 성장 없이는 사회의 성장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첨예하게 갈리어 냉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진영 할 것 없이 대중선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현실에 대해 칼 융은 사람들이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말하자면 내면에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인간들 사이의 투쟁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도 융의 이론의 핵심인 그림자가 제시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또 다른 인격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대개 그림자를 억누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그림자를 반대편 사람의 내면에서만 본다는 것이다. 이런 투사가 인간 세계에 온갖 분열을 낳는다는 것이 융의 주장이다. 이 책이 나오고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분석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것 같다. 일본의 우경화 등 국제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빚어지는 갈등 역시 융의 그림자 이론으로 설명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처럼 대립하게 만드는 심리적 힘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칼 융은 대중지향성을 꼽는다. 오늘날의 민주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만물의 척도로 세상의 중심으로까지 칭송되었던 인간 개개인이 이런 식으로 사회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큰 숫자에 휘둘리는 인간 심리와 통계적 진리를 강조하는 ‘합리적인’ 지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각 개인들에게 대중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펼쳐달라는 호소가 아주 간절하다. 칼 융은 이 호소에 귀를 닫는 지식인들에게 역사에 죄를 짓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경고한다. 익명이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판을 치는 21세기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