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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부상 백화주
2. 산성의 약속 3. 원한과 정 4. 의형제 5. 서글픈 세모 6. 불타는 서경 7. 그 원혼을! 8. 나설 때 9. 서경탈환 10. 개선 이후 11. 화주 유정 12. 여의산의 함성 13. 급박한 전운 14. 장군 탄생 15. 말이 없는 송악 16. 개경 수복 17. 승리가 가져온 것 18. 통곡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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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간에라도 가는 척하고 바깥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달도 별도 없는 밤이었지만 눈빛을 받은 때문인지 밤의 공간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파수병이 둘, 모닥불을 지펴 놓고 문을 지키고 있었으나 추위 때문인지 웅숭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방 안으로 돌아온 백화주는 낭중 윤상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잠깐 다녀오지요." "어딜?" 윤상의 짧은 목소리가 기겁을 하고 놀랐으나 백화주는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측간으로 가는 척 봉당을 내려선 그는 벌써 연기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측간 아래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멈춰 선 그는 서까래 끝에 손을 댔는가 싶었는데 벌써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고, 다음 순간에는 헛간의 지붕 위에서 다시 담장을 딛고는 별채의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산고양이처럼 민첩한 동작이었다. 아니, 그대로 바람이었다. 그것도 소리 없는 솔솔이바람이었다. --- p.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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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장편소설『비극은 없다』로 문단의 화제를 불러모은 그는 그 이후 계속 장편만 고집하면서, 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드라마틱한 구도 속에 그려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나설 때와 물러설 때』는 현대물이 아니라 역사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작가가 이 자굼을 본격적으로 구상한 것은 무려 5~6년 전. 무신정권, 최충헌의 난, 그리고 급기야는 수차례에 걸친 원의 침략과 식민지배 등, 고통과 오욕으로 얼룩진 고려사에서, 그래도 민족적 긍지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홍건적을 당당히 물리치고 이 땅을 지켜낸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그래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민족을 수호하고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장대한 서사를 한편 써보고 싶었다고. 작가의 이러한 뜻이 담긴 인물이 '백현아'라는 보부상. 물론 백현아는 백 퍼센트 가공인물이다. 이성계나 이지란 같은 인물들이 오랑캐를 물리치고 영웅이 되어 조선을 개국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휘하에 백현아와 같은 무명의 장수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작가는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나설 때와 물러설 때'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가려 실행할 줄 아는 남아로서의 참용기를 그리고 있다. 한낱 보부상이던 백현아가 난세에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오랑캐를 물리친 것은 시대가 자신의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함을 알았기 때문이요, 또 수많은 군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권력과 명예를 한몸에 누리다가 아무 미련없이 훨훨 떠나버린 것도 전쟁이 끝난 지금, 자신이 할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용기는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백파의 문체는 노작가의 그것답게 노련하기 그지없다. 한자를 적절히 섞어 옛스러우면서도 간결한 그의 표현은, 굳이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문장 자체의 읽는 맛 때문에 소설을 넘기게끔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더도 말고, 소설 맨 첫부분에서 백현아가 뱀을 잡는 장면, 그리고 퉁두란티무르 일행을 피해서 도망가는 장면을 읽어본다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머릿속에 그 영상이 생생히 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