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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도시 점령 혹은 사랑을 쓰다 _ 011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아랍 소녀 013 / Ⅰ 017 / 유폐된 세 소녀 023 / Ⅱ 032 / 프랑스 군인의 딸… 042 / Ⅲ 057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 069 / Ⅳ 075 / 지우기… 087 2부 기마행진의 함성 _ 089 오랑에서 시작된 보스케 대위의 약탈… 091 / Ⅰ 109 / 동굴 속에 쓰러져 있는 여자, 아이, 황소… 120 / Ⅱ 150 / 마주나의 벌거벗은 신부 155 / Ⅲ 191 / 시스트럼 205 3부 매장된 목소리들 _ 207 1악장 낯선 두 남자 209 / 목소리 217 / 아우성… 228 / 사랑의 실어증 233 / 목소리 242 / 끌어안은 몸 263 2악장 무아지경 267 / 목소리 273 / 중얼거림… 282 / 약탈 286 / 목소리 294 / 끌어안은 몸 305 3악장 아브라함의 애가 313 / 목소리 320 / 속삭임… 326 / 코란 학교 331 / 과부의 목소리 344 / 끌어안은 몸 350 4악장 꿈속의 외침 355 / 과부의 목소리 363 / 밀담 368 / 구경하는 여자들 372 / 과부의 목소리 377 / 끌어안은 몸 381 5악장 네소스의 셔츠 388 / 혼잣말 397 차알-릿(피날레) 폴린… 401 / 기마행진 405 / 네이의 선율 409 해제: 적(敵)의 언어로 복원한 목소리의 울림 412 |
Assia Djebar,파티마-조흐라 이말라옌(Fatima-Zohra Imaly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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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고통 가운데, 무얼 이야기하고 무얼 가슴에 묻어야 할까?”
“나는 최악의 지배 집단이 우리 면전에서 한 세기가 넘도록 주인 행세를 하는 시대를 살았다.” (240쪽) “왜 여자들은 말하지 않는가? 행복의 지평선은 멀리 어렴풋이 보일 뿐이고, 사랑은 비명이고 계속되는 고통이라고. 피를 흘리고 나면 점액이 흐르고 침묵이 드리우며 모든 것이 핏기를 잃는다고. 왜 누구도 말하지 않고 모두가 이 사실을 숨기는가?” (203쪽) 알제리는 1830년 프랑스가 알제 시를 침략 점령하면서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고, 1954년부터 8년간의 전쟁 끝에 1962년 독립했다. 《사랑, 판타지아》에는 이러한 알제리 현대사의 질곡이 담겨 있는데, 1부에서는 1830년 6월의 알제 시 침략 전쟁이, 2부에서는 알제 시가 함락된 이후 알제리 전역에서 자행된 프랑스군의 약탈과 학살이 묘사된다. 그런데 제바르는 독특하게도 침략군의 교전 보고서, 전장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종군 작가나 군의관의 회고록 등 식민 지배자의 기록에 담긴 지배 욕망을 포착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는 기법을 택한다. 《사랑, 판타지아》의 형식에서 또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역사 서술 사이사이에 작가의 유년기 경험이 교차된다는 것이다. 제바르는 부친이 프랑스 학교 교사였던 덕분에 유년기에 프랑스 학교와 사설 코란 학교를 함께 경험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기는커녕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집 안에 마련된 하렘에 갇혀서 자유로운 외출마저 불가능한 이슬람 사회에서 제바르는 혁명적인 특권을 누린 예외적인 여성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누구보다 가부장적인 이슬람 관습에 대한 뿌리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첫 작품 《갈증》 때부터 반백 년 넘게 알제리 여성의 억압적인 삶을 고발하는 데 천착해왔다. 《사랑, 판타지아》에서 역사 서술들 사이사이에 교차되는 자전적 서술도 모두 여성으로서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작가의 주변 인물들인 어머니와 할머니 등의 여자 친지들, 또래 여자아이들 이야기다. 억압받는 알제리 여성들에 대한 자전적 서술은 1부와 2부에서는 역사적 서술과 이질적으로 교차되지만, 3부 ‘매장된 목소리들’에서는 알제리 독립전쟁을 몸으로 겪은 여성들의 증언과 교차되면서 역사적 서술과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오빠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서 빨치산이 된 소녀 셰리파는 전쟁 중에 눈앞에서 오빠를 잃고 프랑스군에게 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등의 독립투사로서의 고통스러운 기억뿐 아니라, 당시 여성 투사들이 감내해야 했던 이슬람 전통사회의 여성혐오주의까지 증언한다. 셰리파는 남자 동지들에게 잡부 취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성적인 탐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셰리파 말고도 남편과 아들들을 모두 독립전쟁에 내보낸 것도 모자라 독립군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가 프랑스군의 보복으로 집도 토지도 전부 잃었는데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독립된 뒤에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여인들의 은폐된 목소리들 또한 제바르의 펜을 통해 복원된다.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기에 공식 역사에서 제외된 여성들의 목소리가 작가 혹은 서술자의 목소리와 겹치는 순간, 한 명의 조그만 아랍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 《사랑, 판타지아》는 결국 모든 알제리 여성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은폐된 알제리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아라베스크 무늬… 제바르의 첫 책 《갈증》과 두 번째 책 《참을성 없는 사람들》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가부장적인 알제리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들이었다. 무엇보다 여성 작가가 적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쓴 소설들이었다. 그러니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알제리 사회에서 제바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것은 예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후 제바르는 역사와 문학의 만남, 사료와 허구적 텍스트의 만남을 모색하는 글쓰기를 시도하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제바르에게 프랑스어는 여성 억압적인 알제리 전통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에 대한 이 같은 양가적 감정 때문일까. 《사랑, 판타지아》는 문자적 텍스트라기보다는 “목소리의 도가니, 함성으로 가득 찬 청각적 텍스트”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고통과 절망의 표현인 여성들의 목소리와 가끔씩 터지는 기쁨의 외침이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든다. (…) 목소리의 분출이 중요한 까닭은, 알제리 여성들이 이슬람 문화와 식민 지배라는 이중의 억압을 겪으면서 침묵을 강요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이 작품은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한 명의 서술자가 선조적인 서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교차되는 복수(複數) 서술 기법을 택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독서에 혼선이 빚어지지만, 권위 있는 하나의 목소리가 서사의 통일성을 만들기보다는, 하나의 목소리가 또 다른 목소리를 계속 이끌어냄으로써 목소리들의 만남이 가능해진다.” (419~421쪽, ‘해제’에서) 《사랑, 판타지아》를 읽는 것은 여타의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때로는 역사서를 읽는 듯하고, 어느 순간에는 자서전을 읽는 듯하며, 또 어느 즈음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적인 시를 읽는 듯하다. 그러다 3부에 이르면 이것은 문자로 형상화된 음악(정확히는 안달루시아 음악인 ‘누바’ 또는 서양의 소나타)이 아닐까 싶어진다. 무엇보다 음악을 듣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명료하게 문자로 표현된 작품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아름답다’는 ‘느낌’만은 또렷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