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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으로 지은 이야기
파리로 간 한복쟁이, 이영희
이영희
디자인하우스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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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예술사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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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시
4

옷이 아니라 마음을 팝니다 10
언제나 처음인 마음 22
디자인은 섬유에서 시작한다 38
이질적인 것이 만드는 조화가 아름답다 56
담양 대바구니, 파리 패션쇼에 오르다 70
아름다운 것은 모일수록 더 아름답다 84
횟대에 치마저고리 한 벌 걸려 했더니 98
오해를 부른 둘쑥날쑥 기억력 112
평생토록 후회하는 한 가지 124
일하는 여성을 응원합니다 136
잠 못 드는 밤이면 150
한복에 무슨 디자인이 있어요? 168
한복쟁이와 디자이너 182
눈은 변한다 198
디자인만큼 연출이 중요하다 210
밀랍 인형 옷을 지으며 선생님을 추억하다 224
운명은 있는 것일까 238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다 252
한복으로 얻는 귀한 벗 264
옷처럼 음악처럼 272

BEST10
이영희가 디자인한 한복 유행 288

저자 소개 1

1936년 대구 출생으로, 성신여대 대학원(염직공예)를 수료했다. 1976년 ‘이영희 한국의상’을 오픈하며 늦깍이로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 명품화를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만난 한국 기자가 건넨 “여기엔 웬일이세요?”라는 말에 자극받아 세계 패션의 중심인 파리에서 ‘한복’이 당당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92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참가했다. 94년 역시 한국 최초로 파리에 부티크를 열어 ‘파리에서 가장 예쁜 가게’에 여러 차레 뽑혔다. 96년 파리 륏상부르크 궁 오랑제리 전시실에서
1936년 대구 출생으로, 성신여대 대학원(염직공예)를 수료했다. 1976년 ‘이영희 한국의상’을 오픈하며 늦깍이로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 명품화를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만난 한국 기자가 건넨 “여기엔 웬일이세요?”라는 말에 자극받아 세계 패션의 중심인 파리에서 ‘한복’이 당당히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92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참가했다. 94년 역시 한국 최초로 파리에 부티크를 열어 ‘파리에서 가장 예쁜 가게’에 여러 차레 뽑혔다. 96년 파리 륏상부르크 궁 오랑제리 전시실에서 ‘한복:바람의 옷’ 전시회를, 2000년 6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 메인 홀에서 패션 공연 ‘Wind of History’를 열었다. 2001년 평양 초청 패션쇼 ‘이영희 민속의상전’을 열면서 전통 복식문화의 남북 화합과 교류를 이끌어 냈다. 2004년 9월 뉴욕 맨하탄에 ‘LEE YOUNG HEE KOREA MUSEUM’을 오픈했다. 2005년 11월 ‘PUSAN APEC 정상회의’에서 21개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하면서 각국 정상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2007년 5월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열두 벌의 옷이 영구 소장되었다. 2008년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에 ‘세계 60인 아티스트’중 하나로 선정됐다. 현재 (주)매종 드 이영희 대표이자 사단법인 미래문화(뉴욕 이영희 한국박물관) 대표,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의상학과 교수르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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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632g | 170*220*25mm
ISBN13
9788970416762

출판사 리뷰

한복쟁이와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은 스스로를 한복쟁이라 말씀하셨죠. 남들에게 어떤 직함으로 불리고 싶으세요? 한복 디자이너? 아티스트? 스스로의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이 질문은 그녀가 40년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역시 한복 디자이너겠지요”다. 이 질문과 대답은 스스로가 가장 많이 한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출발점인 ‘한복’을 잊지 않았고, 한복에서 출발한 디자인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 해 왔다. 지금도 그녀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은 “한복을 알면 세상 디자인 중에 못할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 말은 한복이라는 전통 옷에 대한 배타적인 우월감이 아니라, ‘디자인의 보고’로서 한복의 가치를 일찍 알아본 그녀의 혜안에 가까운 말이다.

마흔에서 여든까지, 쇼 중독자

정식 디자이너 교육을 받은 적 없이, 3남매의 어머니로 마흔에 디자이너 일을 시작한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복이라는 ‘가장 오래된 옷’으로 시작해 파리 패션계를 놀래킬만큼 늘 ‘새로운 옷’을 들고 세계 패션의 현장에 40년 동안 꾸준히 이름을 알렸다. 디자이너에게 시간의 힘, 현장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임을 그녀는 스스로 체득했던 것이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올해로 디자인을 시작한 지 40년. 그간 그녀는 ‘쇼 중독자’라는 말을 들을 만큼 꼬박꼬박, 그리고 치열하게 패션쇼를 열었다.
쇼라는 것은 엄청난 공력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이 소요되는 일이기에 디자이너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디자이너를 지치게도 하는 장이어서 유명한 디자이너도 이 나이쯤 되면 쇼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그 질문에 이영희 디자이너의 답은 명료하고 패기있다. “ 패션쇼는 자기 정신세계를 남에게 보여주는 장이에요. 그렇게 해보지 않으면 내 옷이 잘 지어졌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알 수 없죠. 쇼를 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로서 죽은 거에요”
늘 어느 부분 새로 시작하는 이영희 디자이너는 남에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40년을 디자이너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영희 디자이너가 왜 아직도 현역인지, 어떻게 아직도 새로운 옷을 화수분처럼 만들어내는지 그 비밀은 바로 이런 옷에 대한 ‘중독’이라 부를 만한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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