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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의 방식
형제들 : 두 부류 언덕 위의 집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죽은 이를 위한 노래 폭행 강도 뿔뿔이 흩어지다 귀향 반란 산 자의 죽음 2. 피의 역사 전환점 악명을 떨치다 마지막 인사 3. 눈물의 골짜기 가족의 종말 새 가족과 옛 망령들 비밀과 유골 고향에서 온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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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 포틀랜드 시내를 걷고 있던 프랭크는 길에서 개리를 만났다. 싸운 후로 처음 얼굴을 대면한 것이었다. 개리는 프랭크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이, 형, 그땐 미안했어. 내가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프랭크가 대답했다. "그건 맞아. 그런 일이 없었어야지. 그리고 나도 널 때려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아버지를 친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정신이 확 돌아버리는 거야." "그래, 형이 한 건 잘한 일이었어." 개리의 말에, 프랭크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남아 있는 건 싫었다. --- p.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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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형제도를 부활시킨 사형수 이야기
1976년 7월, 미국 유타주의 한 주유소 종업원이 누군가에 의해 사해당한다. 다음날 이번에는 이웃 마을의 모텔 주인이 총으로 살해당한다. 그 다음날 체포된 범인의 이름은 개리 길모어. 그는 1977년 1월 사형집행까지 약 반년에 걸쳐서 미국의 사법제도를 혼란상태에 빠뜨렸고, 범죄사에 이름을 남긴 사형수가 되었다.
개리를 유명하게 한 건, 바로 자신의 처벌에 자신이 관여했다는 점이다. 1976년 가을, 개리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한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다.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도의 부활을 위한 조치를 취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게다가 비록 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합법적인 살인행위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개리 길모어로 인해서 바뀌었다. 1976년 11월 1일, 개리는 항소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냥 사형날짜를 기다리겠노라고 고집했다. 사형을 시키지 않겠다는 데도 굳이 사형을 받겠다고 고집한 셈이다. 사형제도 반대론자와 옹호론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고 즉각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를 처벌하기 위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형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바이고, 나의 의지이니까. 당신들은 나의 마지막 살인을 도와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처럼 전세계가 떠들썩했다. 도도하고 오만한 태도는 자기가 빠져 나갈 길, 즉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 길을 이미 다 마련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과 1977년에 걸쳐 전세계의 주요 뉴스거리였고 노만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고 그 책은 그 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곧 TV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미국의 사형제도는 많은 논란 속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