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신구의 충돌
역사의 재현 상징주의로의 전환 음악의 비밀 분리주의의 거장들 거울에 비친 진실 [세기말의 빈] 2. 스캔들 실패한 프로젝트 황금의 시기 악의 기운이 가득한 보석들 [디오니소스와 에로스] 3. 분리주의 분리주의 정신 분리주의 프로그램 예술을 위한 사원 혁명적인 인테리어 미학적 공간 [빈 분리파] 4. 미술 공방 성스러운 봄 스토클레 저택 분리주의의 신성화 꿈속에서 나락으로 [아르누보] 5. 화가의 화법 지옥 여행 에로스의 승리 모체의 아이러니 모체의 상징 물을 딸들 황금빛 입맞춤 [종합예술작품] 6. 알레고리 풍경화가 스케치의 거장 [문학과 연극] 7. 만개한 스타일 신세대 예술가 마지막 변화 마지막 상아탑 완전한 에로스 [예술적 길동무] 구스타프 클림트 연대표 찾아보기 |
|
예담출판사에서 『빈센트 반 고흐』에 이어, 인문ㆍ예술 분야의 명문 출판사인 이탈리아 준티 출판사가 야심차게 기획한 '예술가와 작품' 시리즈의 대표작 『구스타프 클림트』가 출간됐다. 이 책은 세기말 유럽의 열정적인 예술계와, 일생 동안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는 신념으로 현대인을 매혹시키는 황금빛 에로티시즘의 아성을 구축한 구스타프 클림트를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무엇보다 클림트의 예술세계를 풍성하게 수놓는 대표작, 미완성작, 스케치, 풍부한 사진 자료에 이르기까지 300여 점의 질 좋은 도판들이 '내 손안의 작은 클림트 갤러리'로 독자들을 생생하게 안내한다.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클림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키스」를 그린 화가'로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와 있다. 짙은 관능과 현란한 색채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면서 '구스타프 클림트'라는 낯선 화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그러한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국내에서도 클림트를 소개한 책들이 꾸준히 출간됐다. 그러나 클림트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오스트리아 빈의 시대적 상황과 분리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화가 클림트를 온전히 알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팜므 파타, 에로티시즘(관능), 황금빛 스타일, 사물의 장식화 등 클림트 화풍의 어느 한 가지 특징만으로는 그의 다면적인 예술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클림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세기말 유럽의 예술계를 유기적으로 조명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근대화로 격변하는 유럽 사회와 빈의 열정적인 예술계를 주도한 진정한 화가 클림트의 역동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 그와 예술적 신념을 공유했던 거장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예술적 경향 1. 역사주의자에서 분리주의자로의 변모 오스트리아 빈 근교 바움가르텐에서 미술적 천재성을 타고난 클림트는 청년 시절 빈의 아카데미에 성행하던 역사주의 화풍 속에서 화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했다. 그로 인해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한스 마카르트의 역사주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점점 더 열광적으로 변해가던 빈의 시대적 영향을 받은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에 감각적인 소재와 스타일을 사용함으로써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사이에 있는, 이른바 빈 분리파로 화풍을 전환하고, 「팔라스 아테나」「벌거벗은 진실」등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 위대한 스캔들 클림트는 명성이 높아지면서 정부로부터 중요한 작업들을 의뢰 받았는데, 빈 대학 대강당의 천장을 장식할 「철학」「의학」「법학」을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의 실존적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학문의 무력함을 표현한 이 대작들을 발표하면서, 그는 성공 가도에 진입할 기회를 얻는 동시에 남은 생애 내내 자신을 쫓아다닐 스캔들도 감당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감지했음에도 클림트는 의식적으로 그 길을 선택했으며, 그림을 통해 당시 예술과 문학이 새로이 추구했던 '여성'이라는 도발적인 주제에 도전했다. 예술가 클림트는 자신의 주제에 맞는 회화 양식을 찾으려고 고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을 온통 뒤흔드는 강렬한 황금빛을 창조해 낸 것이다. 3. 황금의 시기 클림트는 평생 유디트를 두 점 그렸는데, 1901년 「유디트 Ⅰ」을 그리기 시작하여 1909년 「유디트 Ⅱ」를 완성하기까지 약 10년간 황금빛에 집착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황금의 시기'라고 부르는데, 또한 화가로서 클림트 개인의 '황금의 시기'이기도 하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Ⅰ」「키스」등은 이 시기에 그려진 대작들이다. 클림트는 이제 초상화의 대상을 여성으로만 국한하고 자신의 고유한 팜므 파탈의 전형을 형성해 나갔다. 4. 빈 공방과 종합예술작품 빈 공방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심미주의를 추구하여 모든 예술을 감싸 안으려는 분리주의자들의 유토피아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대표적인 단체였다. '예술의 완전한 통합'을 향한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의 꿈은 요제프 호프만이 신축한 스토클레 저택에서 실현됐다. 클림트는 스토클레 저택의 식당 벽면에 '생명의 나무'를 상징적 모티프로 한 「스토클레 벽화」를 모자이크 기법으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의 신성화 작업은 제1차 세계데전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고 말았으며,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 등 표현주의 화가들이 세밀한 장식을 지양하고 시대적 불안 심리를 거칠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5. 알레고리 화법 클림트의 화법을 이야기하면서 알레고리 장식 기법을 빼놓을 수 없다. 「조각」, 「유니우스(6월)」, 「비극」등에서 「베토벤 프리즈」까지, 그는 작품의 주제를 일정한 색조로 농축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베토벤 프리즈」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에게 바쳐진 제14회 분리주의 전시회장의 벽면에 장식됐다. 클림트는 '갑옷 입은 무사'를 통해 예술의 승리와 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현했다. 그는 초상화와 풍경화에만 매달렸는데, 이 두 분야는 그의 자율적인 도전 정신과 과감한 창작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분야였다. 클림트는 초상화를 통해 심리학적으로 모호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기호들을 탐구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의 알레고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구성 요소는 자연과 예술의 힘이 공존하는 여성적 에로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