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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 ‘밝은 미래’를 향한 실마리는 반드시 풀린다
‘부리浮利’를 좇지 않는 경영이념 - 스미토모 토모요시 ‘고객만족경영’의 실천 - 미츠이 타카토시 ‘사업 다각화’와 ‘구조조정’ - 고노이케 젠에몬 ‘다각화 리스크’의 연구 - 요도야 다츠고로 ‘프로모션’의 경영전략 - 기노쿠니야 분자에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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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에도 장사꾼 5인의 경영기법과 위대한 상인정신
일본의 경제 시스템이 확립된 에도 시대는 활발한 상업 활동과 새로운 상품 유통의 물결이 일며 ‘겐로쿠 버블’이라는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무가 재정의 파탄으로 버블이 붕괴되면서 30년의 긴 불황으로 이어졌다. 현대의 경제 상황 역시 경기회복의 낌새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심각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개혁과 구조조정 등 온갖 대책을 강구해보지만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에도 시대 장사꾼 5인에게 불황은 오히려 절호의 사업 기회였다. 그들은 난해한 경영기법이나 특별한 묘책 없이도 호황을 누렸다. 이 책은 에도의 다섯 상인들이 ‘장사’의 기본을 충실히 이행하며 불황을 극복한 성공경영의 비결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현재 미츠코시 백화점의 창시자 미츠이 타카토시는 고객 서비스가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 오는 날 자신의 포목점 상호가 새겨진 고급 우산을 손님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주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로 고객에게는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준 동시에, 고객들이 포목점 상호가 새겨진 우산을 들고 다니며 홍보를 한 효과를 얻었다. 현대에는 이처럼 서비스를 통해 고객만족도를 높이는 경영기법을 ‘CS경영(고객만족경영)’이라 부르고 있다. 성공하려면 한곳에 집중하라_ 400년 뚝심 경영 스미토모 토모요시 스미토모 가家는 독보적인 구리 정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업계 일인자 자리를 굳혀왔지만, 환전상의 배달사고로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4대 토모요시는 회사의 경쟁력인 구리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경영자원을 구리 광산 채굴에 집중함으로써 경영위기에서 벗어났다. 회사의 강점을 파악,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고 ‘구리’를 특화하여 외길 경영을 택했던 것이다. 그후 광산 채굴 사업은 1973년까지 무려 283년 동안 이어오면서 일본 경제를 지탱했다. 그 바탕에는 스미토모의 창업정신인 ‘부리(浮利, 뜬 이익)를 좇지 않는다’는 경영이념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스미토모 그룹의 경영이념으로 4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세계 최초로 정찰제를 실시하다_ 고객만족경영 미츠이 타카토시 포목업계 신참내기 미츠이는 가격파괴 전략으로 서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원단을 대량으로 집중 구매해 원가를 낮추고, 당시 다이묘 방문판매와 외상거래에서 벗어나 점두판매와 정찰제를 실시하여 자금 회전율을 높임으로써 저가 전략에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가 전략은 경쟁사가 충분히 모방할 수 있었다. 미츠이는 고객이 필요한 만큼 잘라서 파는 자풀이 서비스, 품목별 담당 직원을 두어 고객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컨설팅 서비스, 당일에 옷까지 지어주는 납품 서비스 등 ‘고객만족경영’을 실천하며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미츠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구매 성향과 구입 상품 등의 판매 데이터를 모아 상품 계획 입안에 활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POS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이문이 남지 않는 장사는 과감히 버려라_ 리스크 최소화의 달인 고노이케 젠에몬 오사카의 거상 고노이케는 일본 최초로 청주를 개발해 대히트를 쳤다. 에도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육로 수송비 부담이 커지자 수송비 절감을 위해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해운업은 쌀 수송과 환전의 사업 기회로 이어져 창고업과 금융업으로 확대되었다. 사업의 다각화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지만, 2대 젠에몬은 각 사업의 시장점유율과 시장성을 냉철하게 평가했다. 싸구려 술에 시장을 뺏기고 있던 양조업과 신규업자의 성장으로 시장 감소의 우려가 있던 해운업에서 과감히 철수한 것이다. 그 뒤 다이묘 대출업에 집중 투자하며 사업을 키워나갔다. 고노이케는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집중?분산하면서 사업 다각화의 리스크를 적절히 피해나갔다. 후에 대출업은 메이지유신 무렵의 거친 경제 상황을 이겨내고 근대 은행(사쿠라 은행)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시장 규모를 더 키워라_ 오카사의 디벨로퍼 요도야 고안 목재상 요도야 조안은 도쿠가와로부터 쌀시장의 독점권을 얻은 뒤, 오사카 각지에 다양한 상품 시장을 세워 명실공히 오사카를 ‘천하의 부엌’으로 만든 거상이다. 2대 고안은 이를 물려받아 쌀시장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활용해 오사카에 건어물과 청과시장 등 거대한 식료품 시장을 세워 더욱 규모를 키웠다. 오사카의 경제 부흥은 고스란히 요도야의 매출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사를 무너뜨리고 점유율을 늘려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시장 전체의 규모를 키워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매출을 쉽게 올릴 수 있다. 요도야는 다이묘 대출업에도 진출하여 대를 이어 번성했으나, 겐로쿠 버블이 붕괴되자 다이묘의 불량채권이 늘어나면서 막부로부터 재산 몰수와 추방을 당하게 된다. 상품을 알리려면 입소문을 이용하라_ 마케팅의 귀재 기노쿠니야 분자에몬 목재상 분자에몬은 귤 장사로 먼저 이름을 날린 에도 호상이다. 에도의 ‘풀무축제’에 쓰일 귤이 공급에 차질을 빚자 ‘분자에몬이 기슈에서 귤을 가져온다’는 소문을 퍼트려 에도의 민심을 안정시킨 뒤, 거친 바다를 뚫고 최상급의 귤을 운송했다. 그러나 분자에몬은 오히려 귤을 시세보다 싸게 팔아 자신을 톡톡히 홍보했다. 귤 장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신출내기 목재상이 대규모 공사 수주를 따기에는 참여장벽이 높았다. 당시 모든 공사는 인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유곽에서 무채에 황금을 섞어 하급 관리에게 대접하는가 하면 1000냥을 모조리 길바닥에 뿌리는 등 요란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금으로서도 대단히 공격적인 프로모션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쇼군 측근들까지 그를 만나고 싶어했고,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사찰 조영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다. 가히 마케팅의 천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