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지장, 덕장, 맹장, 용장-.
전쟁에 나서는 장군의 유형을 나눌 때 흔히 쓰는 말들이다. 그 중에서 어떤 평가가 제일 나은가를 따지는 일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착한 사람인가를 가리는 것처럼 부질없다. 일단 장군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그럴만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고, 각각의 개성적인 역할을 맡는 지휘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전쟁이 존재하고 그 전쟁에는 그보다 더 많은 장군들이 존재했었다. 패튼(Gen. George S. Patton, 1885~1945)도 그 중의 한명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튜니지아 전선에서 미군 제2기갑사단을 이끌고 독일의 전설적인 롬멜 부대와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그는 미군의 사기를 올린 용장이자 맹장이며 지독한 독설과 독단적인 행동으로 파란을 일으킨 괴장(?)이기도 했다.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PATTON, 1970)은 그런 패튼의 다양한 면모를 그리고 있다. 아프리카 전선의 미군 제2기갑사단. 거대한 성조기가 걸린 연단 위에 선 패튼 장군은 부대원들을 향해 자신의 신념과 지휘방침을 설명한다. “어떤 놈이건 간에 전쟁에서 죽고 난 뒤에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하는 놈은 필요 없다. 적을 죽이고 그놈에게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하게 해라. 제군들! 미국은 싸우고 싶지 않고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은 순전히 말똥 같은 소리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싸우기를 좋아한다. 진짜 미국인들은 싸움의 열기를 사랑한다. 자네들은 어렸을 때 구슬놀이 챔피온, 가장 빠른 육상 선수, 유명한 야구선수, 강인한 권투 선수들을 존경했다. 미국인들은 승자를 좋아하고 패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고도 웃는 놈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 그러기에 미국인들은 져본 일이 없고 전쟁에서도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진다는 생각 자체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거칠지만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이겨라. 이기는 것 외에 전쟁에서 할 일은 없다. 그는 호언대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롬멜의 기갑부대를 격파한다. 부하들에게는 엄격하다. 군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런 장군을 자랑스러워한다. 전쟁에서 용맹하고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면 군인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말은 거칠었고 행동은 독단적이었다.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을 지원하기 위해 시실리 섬 공략의 선두에 서는 제2병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탈리아에 배치되었을 때는 독단적인 작전으로 전투를 벌인다. 싸움에서는 연승하지만 몽고메리 장군은 무례하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에 빠진다. 주변에 적을 만든 것이다. 군대는 팀이라고 주장했던 그의 신조를 스스로 뒤엎는 행동이기도 했다. 워싱턴의 정치가들은 패튼이 용맹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경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야전 병원 부상자들을 위문하던 그는 전쟁공포증에 걸린 병사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겁쟁이는 필요 없다고 욕을 퍼부으며 구타까지 한다. 패튼의 군인정신으로는 당연한 질책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그는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영국으로 전속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상부로부터 문책을 당한다. 전장에서의 용맹과는 달리 정치적 처세는 계속 덜컹거릴 뿐이다. 곡절 끝에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게 된 패튼 장군은 부여된 작전을 성공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는 또 독단적인 작전을 편다. 독일 함락을 위해 자신의 부대를 끌고 진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패튼 부대가 고립된 연합군 부대 구출작전에 투입됨으로써 상황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이어 파리 해방의 선두에 서고, 발지 전투에서도 전공을 세우는 등 군인으로서의 경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화려해진다. 군인으로서 패튼 장군은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행동을 자주 드러내기는 했지만 어떤 전투에서도 그는 항상 선봉부대에 서고, 최전선에 나가 직접 진두지휘를 맡았다는 점은 당시의 지휘관 중에서는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그만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지시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선봉에 서는 그의 모습에서 병사들은 무한한 자신감을 얻고 지휘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 패튼 장군은 1945년 12월 9일, 독일 맨하임의 마카담로를 승용차로 달리던 중 군용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뒤 같은 달 21일 하이델베르크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61세였다. ■ 광야의 싸움꾼, 조지 S. 패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패튼은 아무런 걱정이 없이 자랐다. 하지만 미국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조부와 장교를 지내고 있던 삼촌들을 보면서 집안의 군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신도 군인으로 사는 것이 운명이라고 여겨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감했으나 독서 장애 증세와 수학 실력 미달로 학과 공부에는 쩔쩔매기도 했다. 하지만 넘치는 에너지와 정열로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기갑부대의 지휘를 맡으면서 뛰어난 용맹성을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패튼의 기갑부대가 투입되고 승승장구하던 독일 출신 장군이자 사막의 여우라 불리던 롬멜의 부대를 무너뜨린다. 전쟁에서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이기는 것만이 정답이라 여긴 패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승장구하며 미국의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부하들을 이끌기 위해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했다. 거칠지만 명쾌한 그의 연설에 많은 부하들은 고무되었다. 혁혁한 전과를 올린 그는 미군의 사기를 하늘 높이 끌어 올린 용장이자 맹장이며 지독한 독설과 독단으로 파란을 일으킨 괴장(?)이기도 했다. ■ 광야의 라이벌, 사막의 여우 롬멜 롬멜은 독일 육군 원수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야전지휘관이다. 히틀러 총통의 호위대장을 맡고 있었으나 프랑스 작전에서 제7기갑사단장으로서 아르덴느고원을 선봉으로 돌파하고 파죽지세로 프랑스의 중심부를 꿰뚫어 프랑스 몰락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하였지만, 뛰어난 야전사령관으로 패튼과는 라이벌 관계였다. 롬멜은 연합국의 모든 부대를 무너뜨리며 승승장구 했지만, 패튼의 기갑부대에 대패하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