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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가정환경 제2장 실연의 상처 제3장 외국에서의 우정 제4장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제5장 1929년: 관계의 파탄 제6장 멀어진 우정 제7장 어느 작가의 오후 제8장 음주 문제 제9장 상처받기 쉬운 몸 제10장 후세대의 전리품 제11장 초인과 배우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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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작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경쟁해선 안된다고 선언해놓고도 그들의 상황을 문학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경주에 비유한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니스트는 “거트루드가 토끼와 거북의 경주를 재현하길 원했고”(사실 그와 같은 생각은 그녀가 아니라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나에게는 거북 역할을 자네에게는 토끼 역할을 맡겼지만 겸손한 사람답게 자넨 거북이 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몇 년 후 스콧은 ≪밤은 부드러워≫의 교정쇄를 검토하면서 맥스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에 토끼와 거북의 은유를 그대로 인용했다. 피츠제럴드는 소설을 수정하느라 몹시 힘들긴 하지만 자신의 작업 방식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 결국 그는 퍼킨스에게 자신은 굼벵이라고 고백했다. “일전에 헤밍웨이와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상황은 모두 생략하기로 하고, 나는 거북이고 자기는 토끼라고 하더군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손대는 일마다 질질 끌면서 씨름을 하는 데 비해 헤밍웨이는 무슨 일을 하든 수월하게 척척 해치우니 말입니다.”
---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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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과연 부자들을 ‘각별한 인종’으로 생각했을까? 어니스트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콧을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을까? 일찍이 그는 피츠제럴드가 작가로서 어려움을 겪는 여러 가지 이유를 지적한 바 있었다. 헤밍웨이는 젤다가 그의 작품활동을 질투해 그의 활력을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스콧이 술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싸구려 작품을 써냈기 때문에, 비평가들의 지나친 칭찬에 우쭐해져서는 걸작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사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실패자라는 생각을 은근히 즐겼기 때문에, 소년의 치기를 버리지 못하고 성장을 거부했기 때문에 등등과 같은 이유를 꼽았다. 나아가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부자들에게 가지고 있던 ‘낭만적인 경외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그의 추락을 가져온 또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 p.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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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은 편지에서 기본적으로 음주와 창작활동에 관해 세 가지 점을 언급한 셈이다. 첫째, 장편소설을 쓸 때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술이 이성적 사고의 중추인 왼쪽 뇌의 기능을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단편소설은 술을 마시면서도 쓸 수 있다. 이 경우에 술은 방해물이 아니라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가지 이유를 종합함으로써 음주가 그의 작품활동(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단편을 쓸 때)에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해 여름 애슈빌에서 로라 거스리에게 “술은 감정을 자극한다. 나는 술을 마실 때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런 감정을 글로 옮긴다……정신이 말짱할 때 쓴 작품들은 어리석어 보인다……그럴 때 쓴 작품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 감정으로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신념은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1940년 프랜시스 크롤에게 “나에게 술은 자극제이며 원기를 왕성하게 만드는 약물과도 같다”고 말했다.
--- pp.343~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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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피츠제럴드 vs.‘남성적인’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는 1896년 9월 미네소타 세인트폴,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보다 3년 뒤인 1899년 7월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둘 다 미국 중서부의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태어났다. 작가가 경험한 삶은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예를 들어 청년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실연의 상처는 이후 두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헤밍웨이의 경우 적십자사 간호사였던 연상의 여인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와의 파국을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가항력으로 인해 이루어질 듯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랑으로 그려냈다면, 피츠제럴드는 명문가의 영애였던 기네브라 킹과의 아픈 기억을 부잣집 딸과 희망 없는 사랑에 빠져 결국 스스로 파멸하고 마는 가난한 청년의 이야기로 형상화했다. 아그네스로부터 버림받은 기억과 어머니에게서 받은 비난은 헤밍웨이를 평생 따라다녔던 상처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버린 기네브라를 이상화하면서 평생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상처를 꺼내 부여안았다. 두 사람의 성격과 생활방식 역시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헤밍웨이가 권투에 대한 관심과 그의 취미였던 사냥이나 낚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면, 피츠제럴드는 젊은 시절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격이 판이한 만큼이나 작품 경향과 문체도 달랐다. ‘파파’라는 호칭이 따라다녔던 헤밍웨이의 문체가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큼 남성적이고 씩씩했다면, ‘재즈 시대의 대변인’으로 통했던 피츠제럴드는 약간은 연약해 보이면서 여성스러운 외모만큼 섬세함과 세련미를 자랑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20년대의 파리에서였다. 그 무렵 피츠제럴드는 이미 유명인사에 속했다. 당시 그는 세 권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를 막 출간한 상태였다. 이에 비해 헤밍웨이는 얄팍한 소품집 두 권을 제외하고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책을 한 권도 내놓지 못한 신출내기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헤밍웨이를 발굴해 자신의 전속 출판사인 스크리브너스와 유명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게 소개했고, 그가 명실상부한 작가로 발돋움하도록 글 쓰는 일까지 내팽개친 채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헤밍웨이의 첫 번째 대표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성공을 거둔 데에도 그의 공이 컸다. 음주 문제의 경우 피츠제럴드는 20대 후반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후 치기어린 행동을 일삼으면서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알코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가 결국 패배하고 만다. 헤밍웨이는 술을 즐기다가 나중에 알코올 중독이 되었지만 음주벽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한쪽은 주고, 한쪽은 받는 관계로 출발했던 두 사람의 우정은, 동료 작가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던 시기는 잠시뿐 가학과 피학의 관계로 치닫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만다. 시작과 달리 뒤에 가서 주는 쪽은 헤밍웨이였고, 받는 쪽은 피츠제럴드였다. 여기에는 두 사람의 너무도 다른 성격과 삶의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 이것이 결국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둘 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위대한 작가다. 헤밍웨이는 지배욕이 강했던 데 비해 피츠제럴드는 남들한테 지배를 당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스콧은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인 강철처럼 단단한 심장을 지녔던 헤밍웨이를 사랑했으며, 헤밍웨이는 매력적이지만 스스로를 비하했던 나약한 모습의 스콧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했다. 둘 사이의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깊고 복잡했다. 그저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이 남겨 놓은 작품들을 읽으며 짐작하고, 감탄하고, 동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