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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 전통 조경과 식재의 의미
1. 한국 전통 조경의 특질 2. 전통 조경의 사상적 배경 3. 조경에서 식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4. 옛 기록 속의 조경 식재 II. 전통 조경 공간의 식재 역사 1 : 선사 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 1. 선사 시대 식재 유형 : 생존과 실용 2. 고조선 시대 식재 유형 : 하늘과 땅 사이의 통로 3. 삼국과 남북국 시대 식재 유형 4. 고려 시대 식재 유형 조선 시대의 식재 사실 개관 III. 전통 조경 공간의 식재 역사 2 : 조선 시대 궁궐의 조경과 식재 1. 조선 시대 왕궁의 원유 관리 기관 2. 경복궁 3. 창덕궁 4. 조선 시대 궁궐의 식재 종합 고찰 IV. 전통 조경 공간의 식재 역사 3 : 왕릉, 향교와 서원, 관아의 식재 1. 조선 시대 왕릉의 조경과 식재 2. 향교와 서원의 조경과 식재 3. 관아의 조경과 식재 V. 전통 조경 공간의 식재 역사 4 : 조선 시대 민간 조경의 식재 1. 상류 계층의 조원과 식재 2. 민가의 조경과 식재 3. 조선 시대의 주요 조경 식물 VI. 공간별 식재 유형 : 조선 시대 조경 공간을 중심으로 1. 전통 공간과 식재의 관계 2. 궁궐의 공간별 식재 유형 3. 사대부 주택의 공간별 식재 유형 4. 별서의 식재 유형 VII. 배식 형식 1. 전통 조경 공간에서 배식의 의미 2. 배식의 기능적 의미 3. 평면 배치로 보는 배식 유형 4. 입면 형태로 보는 배식 유형 5. 배식에서 권하는 것과 꺼리는 것 - 전통 조경의 적지적수 VIII. 전통 조경 식물 1. 어떤 것을 전통 조경 식물이라 할 수 있는가 2. 전통 조경 공간의 주요 수종 및 초화류 3. 수종의 이명 IX. 부록 1 : 중국과 일본의 조경과 식재 1. 중국의 전통 원림 2. 일본 정원의 식재 X. 부록 2 : 참고 자료와 찾아 보기 글을 마치며 |
李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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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이른바 ‘정원 가꾸기’를 보면,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식물과 맺어 온 관계가 철저히 짓밟히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개인의 정원이나 공공 공원, 심지어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제멋대로 다듬고 자르고 정돈하는 것을 대수로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
자연스럽게 자라 뻗어난 가지나 잎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고 어지러우니 잘라 버려야겠다는 사람의 오만, 입맛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형태를 갖추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의 자만에 근거한 이러한 행태는, 사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굳어진 이른바 ‘관리의 방법’이었다. 우리 전통 조경 공간의 수목 배치와 모습을 눈여겨보라. 어디 한구석 나무의 의지에 반하여 멋대로 잎을 따고 가지를 비틀어 잡아매거나 잘라내면서 억지로 모양을 잡아두었던가. 한편으론 무심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그저 제 생긴 대로, 제 사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야말로 어설픈 작위와 인공의 교태를 거부하는, 고차원의 자연과에 근거한 것이다. --- p.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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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과 도형 사료의 원전으로 확인하는 우리 배식의 원형
이선 교수는 지난 10여 년의 연구와 집필 기간 동안 1차 문헌 사료, 그리고 옛 그림 등의 도형 사료를 하나하나 모으고 직접 들여다보며 우리 식재와 배식의 원형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 오류나 근거 없는 주장이 만연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은 물론이고 왕릉 공간의 전모를 기록한 <능지> 등의 행정 기록, <임원경제지> 등의 농서, <양화소록> <화암수록> 등의 원예서, 옛 문인들의 수필과 시문,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실측 자료집 등 방대한 문헌 자료를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보 <동궐도>로부터 <옥호정도>, 작은 관아를 그린 <제아도>, 능묘의 재실을 그린 <재실도>에 이르기까지 풍속화, 기록화, 문인화 등 나무가 나온 옛 그림이라면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꼼꼼히 살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직접 오랜 기간 수집한 일제 시대의 사진 엽서 자료들이다. 골동품점, 고미술상과 인터넷 경매까지 직접 발로 뛰며 모으는 데 든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지만, 그 속에서 파괴와 변형 이전 구한말의 우리 궁궐의 모습과 그 왜곡 과정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북한의 문화재, 파괴된 경모궁 등을 비롯해 처음 공개되는 사진 자료들도 여러 점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대사성 윤탁은 왜 성균관에 은행나무를 심었나 열매나 꽃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면 나무의 이름조차 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우리 세대의 풍경이 되어 버렸지만 오래된 나무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 은행나무는 공자의 행단에서 유래해 학문의 공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성균관으로부터 지방의 향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공간에는 반드시 은행나무가 심겼다. 회화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학자수였거니와 특히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의 삼공을 상징하기도 했다. 창덕궁을 들어서면 안내판 뒤에 녹음을 드리운 멋들어진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바로 그렇다. 향나무는 제사의 공간을 상징한다. 능묘나 제당에 향나무를 심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를 뒤집어 유추하면, 수백년 된 은행나무 노거수가 멋들어진 공간은 예전에 향교나 서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고, 능묘 공간을 복원할 때 어디에 어떤 수종을 심어야 좋을지를 짐작할 수도 있다. 고려의 왕과 귀족들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모란을 흐드러지게 심었지만, 조선 시대 모란은 궁이나 지체 높은 귀족들보다는 단지 부유한 양인이나 여인들의 꽃으로 의미가 바뀐다. 궁궐의 식재에도 오류가 많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들을 조명해 가다 보면 옛 문화재를 대표하는 서울의 궁궐에 여전히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잘못된 조경 지식들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시대에 일본풍으로 가지치기 당한 나무들은 수형 자체가 변형되었다. 전통적으로 은행나무는 가늘고 곧은 모양을 지닌 나무로 여겨져 왔지만, 궁궐의 은행나무들은 어린 시절 가지치기를 겪어 일본풍의 둥근 나무로 자리 잡았고, 이것이 근대기 이후 우리의 시각적 미감에 은행나무의 이미지로 자리 잡고 말았다.(169~178쪽) 지금의 청와대 뒷산, 옛 경복궁 후원에 인공 식재한 회화나무들이 마치 자연림인양 잊혀 가고,(150~154쪽) 노거수들은 노쇠해 가고 있으며, 소나무 군락은 자연적 천이 과정을 거쳐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직동의 노거수는 도로 정비 과정에서 사직단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가로수 식재도 여전하다. 자연스러움 속에 깃들어 있는 엄격한 법칙성과 세심한 조경 기법 저자는 단지 전통 배식 사실과 사례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그 구체적인 기법과 목적까지 세심하게 밝힌다. 250년 전 영조가 청계천을 준천할 때 버드나무를 심은 방식은 우리가 지금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는 '자연형 하천 호안 조성 방법'과 그 원리가 다르지 않았다.(475쪽) 정조는 화성에 사도세자의 능을 조성하면서 묘목의 '흩어심기(산식)'와 '씨 뿌리기(파종)'를 어떻게 겸해야 할지를 직접 지시했는데 이는 당시의 통치자가 임학, 농학에 지식이 깊었음을 알려 준다.(550쪽) 가로수를 줄지어 심기도 했다. 18세기에 세종로의 가로수는 버드나무였다. 녹음, 방풍 등 목적에 따라 수종의 선택과 배식, 관리 방법이 달랐으며, 조경을 할 때에는 평면적입면적으로 전체 공간의 모양과 인상을 세심히 고려해 한 그루 심기(단식), 마주심기(대식) 등을 적용했다. 집 안에 나무를 심을 때에도 그 수종과 방향 등에 꺼리는 것과 권하는 것이 있었다.(566~577쪽)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법칙이 없었을 것이라 넘겨짚곤 하는 옛 조경 공간에 실은 주도면밀한 계획과 관리가 있었다.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것, 이야말로 일본의 전정이나 유럽의 자수 정원을 넘어서는 조경 디자인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