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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이름의 스승
'옛다'하고 던져주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팔고문은 쓸모가 없다 인정에 구애하지 않고 공평무사하다 천금으로도 살인권은 살 수 없다 태자에게 유생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다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재물을 멀리하다 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이끌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금이나 옥보다 소중하다 성인이 아들에게 『시경』과 『예기』를 익히도록 하였다 관직을 구하는 이에게 소를 구해주다 조카에게 친구교재에 신중하도록 타이르라 청렴 결백한 가풍을 자손에게 물려주다 2.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쪽에서 만든 푸른 물감은 쪽보다 더 푸르다 앞장서서 산을 오르다 심혈을 기울여 아들에게 사기(史記)를 쓰게 하다 부자가 모두 청렴하다 사물을 대하면 이치를 깨닫는다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근심하라 자식을 대가로 키우다 장군의 가문에서 인물이 나오다 영웅의 생사는 큰 뜻을 품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3. 딸에게 들려주는 노래 일대 재녀의 육성 사위를 솜씨 있게 고르다 재상 부인도 부엌에 들어가야 한다 딸에게 검소함과 소박함을 가르치다 딸에게 시어머니를 공경하도록 교육하다 사위를 택해 딸을 시집보낸다 자식이 반드시 사내아이여야 하나 4. 아버지의 선물 증자가 돼지를 잡아가며 아들을 교육시키다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다 대쪽을 들고가서 용서를 빌다 현장에서 자손들을 교육시키다 세 항아리의 먹물을 길다 방탕한 자식이 제자리를 찾다 아들이 나쁜 말을 파는 것을 막다 아들에게 엄한 스승을 존경하라 가르치다 자식에게 정직을 가르치다 사람은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심혈을 기울여 정영을 교육하다 많으면 꺽기 어렵다 겸양의 미덕을 대대로 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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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는 중국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으로 자는 낙천이고 만년의 호는 향산거사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와 글을 암송하느라 혀에 궤양이 생기고 침식도 잊은 채 책상에 엎드려 공부하고 글을 써서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박힐 정도였다.
사사로운 일들은 잊은 채 학문에 몰두하느라 37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는데 부인 양씨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다. 백거이는 40세가 되어갈 즈음, 딸을 얻었다. 남존여비의 봉건적 관념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불혹의 나이에 겨우 딸 하나를 얻은데 대해 사람들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업신여겼다. 그러나 백거이는 그러한 생각에 동조하지 않고 매우 격분하여 부인에게 말했다. "자고로 영웅호걸이 모두 남자였던 것은 아니오, 아버지 대신 종군했던 목란도 여자 영웅 아니었소? 내 비록 칼을 쓰고 말을 달리지는 못하지만 시부에 통달했소. 내 딸이 아비 대신 종군할 필요는 없지만 나를 도와 글을 지을 수는 있소." 확신에 찬 이말은 백거이의 넓은 도량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4년이 후른 후, 양씨는 두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딸이었다. 백거이는 여전히 특별한 사랑을 기울이며 라아(羅兒)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가할 때는 딸을 어르며 말을 가르쳤다.그는 또 둘째 딸을 위해 『라자』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내게는 딸이 있는데 이름은 라자(羅子), 이제 겨우 두 살이 되었네. 허나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날 때마다 흰 머리칼이 자라나네. 사랑스러운 딸아이의 재롱부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늙고 병든 몸이 떠올라 수심에 젖네. 백발이 흰눈처럼 머리를 뒤덮을 때에야 딸아이의 다 자란 모습을 보려나. 라자는 20세가 되어 담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2년 후 그녀는 딸을 낳았다. 백거이는 66세가 되어서 외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는 딸과 사위가 딸을 낳은데 대해 상심할까봐 외손주가 태어난 지 만 한 달이 되는 날 축하시를 지었다. '품에 안은 자식이 반드시 사내아이여야 하는가?'이를 통해 시인은 전통적인 남존여비 사상을 부정했다. --- pp.171-1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