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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 그리움이 나를 부르면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구두 한 켤레로 남은 어머니 겨울편지 여름날의 그 집 저녁편지1 그대의 섬에서 그대를 읽네 저녁편지2 왜가리 선생님 팬티 저녁편지3 2 사랑이 나를 만질 때 그 섬에 가면 문득 가을입니다 소년 상선이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동화작가가 되기 위하여 통도사 생각 옷 알의 꿈 저녁편지6 인형시인 왕효창 전설 이 계집애 미친 거 아냐? 저녁편지7 3 슬픔이 나를 찾거든 관계 설 매미 울면 가을이 옵니다 저녁편지8 슬픈 미학 여름의 끝에서 김상사 죽다 4월 한낮 삶과 죽음의 경계 화전민 김 씨는 아직도 그곳에 산다 석남사 뭉게구름 모딜리아니 스님 저 잘 지냅니다 아름다운 동행 고생대 기록 시베리아의 별 왼손 4 아름다움이 나를 적시거든 사랑의 뼈 단꿀 도토리묵밥 저녁편지 9 밀양이라 부르니 아리랑이 되네 ㅂㅅ 밥이 부처이니 꼭꼭 씹어 드세요 산이 너희에게 상상의 마을 저녁편지 10 새의 우화 저녁편지 11 수요일의 해운대 일지 어신 엄재오 우리 갑시다 유랑극단 따라 열하까지 풍경을 노래하는 화가 백중기 저녁편지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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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부쳐지지 않는 편지를 씁니다. 우표도 없고, 빨간 우체통도 없고, 편지를 부치기 위해 아득히 뻗은 미루나무 길을 걷지도 않지만, 저는 매일 편지를 씁니다.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히듯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므로, 그리워하므로, 때로는 외로워하면서 편지를 씁니다.---「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중에서
어쩌면 제겐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기에 편지를 쓰나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제 자신이기도 하고 또 다른 영혼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중에서 편지는 그리움이고 그 그리움을 채우는 여백이다. 편지엔 기다림이 있고 부치는 즐거움이 있다. 저절로 쓴 이의 다정한 모습이 떠오르는 게 편지글이다. ---「그대의 섬에서 그대를 읽네」중에서 가을이 오면 기침이 나고, 가을이 오면 산과 강이 멀어집니다. 녹음을 지우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갑니다. 아무 기척 없이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을 스쳐갑니다. 가을이여 난 그대로 하여 지금 미열을 앓고 있습니다. 가을을 안달한 나머지 나는 안타까이 목 놓아 메아리를 놓아 보냅니다. ---「문득 가을입니다」중에서 이별은 아프지만 슬픈 것이 아니다.사랑은 한순간이고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이들은 알고 있다.사랑은 오래 간직하는 것이지 늙을 때까지 누리는 것이 아님을,사랑은 기다리면서 지우는 것임을,사랑은 희미한 기억의 날들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는 것임을이들만은 안다.---「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중에서 이 가을, 밤이 오면 알밤 줍듯이 알차고 빛나는 별들을 주우세요. 당신의 마음안에 차랑차랑 떨어지는 마음의 별을요. ---「저녁편지2」중에서 저녁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면서 새들이 서둘러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지나는 길에 선술집 대포나 한잔할까. 어쩌면 그 옜날 가스등 불빛 아래서 함께 우울하게 순잔을 기울이던 애인 하나 문득 그리워져 어느 담벼락에 쓸쓸히 기대어있을 때, 그의 이름을 가만히 떠올려 보아야 한다. 사랑한다. 이름도 잊은 그대여.---「저녁편지7」중에서 그 무엇이 되던 그것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다만 존재하지 않을 뿐.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여기에 놓인 생을 마감하기 위해 한 발짝씩 걸어갈 뿐.---「저녁편지7」중에서 죽음은 언제나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존재함을 가슴깊이 느낀다. 그래서 죽음은 또 다른 하나의 삶인 것이다. 죽음은 내 안에 숨 쉬는 하나의 거룩한, 언젠가는 내가 꼭 이행해야 할 생명의 엄숙한 절차인지 모른다. ---「여름의 끝에서 김상사 죽다」중에서 친절은 가장 쉬운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배려이고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관계로서 존재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삶을 영위합니다. 친절은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친절은 마음을 늘 편안하게 하고, 친절은 삶의 관계를 튼튼히 합니다. 친절은 서로에게 주는 꿀과도 같은 것입니다. ---「단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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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연, 삶, 사랑…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까지도 끈질기게 응시하는 시인 최돈선 사람들은 최돈선을 ‘물빛의 시인’, ‘시인이 닮고 싶어 하는 시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최돈선은 자신을 그저 서정시나 쓰는 ‘변방시인’, 헤픈 웃음으로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바보시인’이라고 칭한다. 변방시인이자 바보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최돈선이 온몸으로 부딪치며 써내려간 문장을 읽고 있자면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고 여리고 힘없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땅 속에서 칠 년을 살다 일곱 날을 우는 매미의 삶, 장마 때면 초가지붕에서 꾸물꾸물 떨어지던 미꾸라지에 대한 추억,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 최돈선은 슬프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되짚으며 속삭인다. 좀 더 느리게, 좀 더 낮게, 좀 더 깊게 세상을 들여다보라고. 이 책에는 “헤이 기브 미 원 오케이?” 하고 손을 흔들며 미군부대 트럭을 뒤쫓던 어린 시절의 최돈선이 있고, 어머니가 사주신 구두를 남들은 구닥다리라고 놀렸지만 “자네들은 이런 구두 없지?” 하고 빙그레 미소 짓던 최돈선이 있다. 죽창과 빈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5월의 그날을 목격한 최돈선이 있고, 삶에 지친 이들이 어느 날 문득 당신을 찾았을 때 넉넉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던 최돈선이 있다. 여백이 있는 마음에 풍경 같은 글들이 쏟아져 내린다 이 책은 최돈선이 독자에게 부치는 영혼의 편지이다. 편지는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잊고 지냈던 친구나 사랑하는 이에게 어느 날 불현 듯 늦은 편지를 받아들었을 때, 그 편지는 ‘영혼이 담긴 글’이고, ‘애틋한 속삭임’이고, ‘숨’이다. 이것은 가슴에 품어 오래오래 읽고 또 읽는 편지가 된다. 이처럼 최돈선은 편지가 갖는 근본적인 속성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생은 기다림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무엇이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느리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편지는 그리움이고, 그 그리움을 채우는 여백이다. 편지엔 기다림이 있고 부치는 즐거움이 있다.” 숨을 고르며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최돈선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공간을 마련하여 들숨의 시원함과 날숨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숨과 숨 사이엔 따스함이 있고, 위로가 있다. 최돈선의 글맛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쉴 겨를이 없던 마음에 여백을 만들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최돈선이 독자에게 부치는 《느리게 오는 편지》는 애틋한 속삭임으로 독자의 마음에 여백을 불러오고, 이 여백에 다채로운 풍경들이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그가 쓴 편지를 읽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