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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이라크에서 사제폭탄의 목표물이 되다 1 초기의 외교적 교훈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유년시절 외교를 경험하다 2 평화봉사단 대학졸업 후 카메룬에서 경험한 세상 3 첫 멘토 유고슬라비아에서 래리 이글버거 대사를 만나다 4 내 인생을 만들어준 특별한 사람들 리처드 홀브룩, 스티븐 솔라즈, 마더 테레사, 레흐 바웬사, 워렌 크리스토퍼 5 프레이저 사라예보에서 순직한 국무부 동료 외교관 6 평화 셔틀 리처드 홀브룩과 함께한 외교현장 7 미완의 비즈니스 마케도니아에서의 경험 8 제네바로 가는 길 보스니아 내전 종식을 위한 협상 9 당신들의 아름다운 나라 주마케도니아 미국대사로 활동하다 10 코소보, 전쟁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161 코소보 위기의 근원 11 미완의 평화 코보소 내전 종식을 위한 노력 12 안전한 방 코소보 내전, 마케도니아로 확대되다 13 협력의 패턴 발칸에서 폴란드로,그리고 마침내 한국으로 14 훈령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다 6자회담, 그리고 북한 사람들과의 첫 만남 15 플라스틱 튤립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6 어둠의 심연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하다 17 보여주기 캄보디아와 뉴질랜드에서 겪은 일 18 체니와의 조찬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에게 6자회담을 브리핑하다 19 검증 가능한 것 북한의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되기까지 20 전 세계에 대한 공헌 힐러리 클린턴, 주이라크 대사를 제안하다 21 다섯 번째 상원 인준 주이라크 대사 인준 투쟁기 22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날 주이라크 대사로 보낸 첫날 23 전쟁을 끝내며 이라크에서 본 외교와 전쟁, 그리고 홀브룩과의 마지막 만남 에필로그 외교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가나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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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0년대 중반 한국을 떠난 뒤 2004년 주한 미국대사로 서울에 다시 오면서 한미관계를 시대변화에 걸맞게 현대화하고 혁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국인을 직접 만나는 일에 주력했다. 외교관으로서 늘 만나오던 정부 관리나 기업의 임원들뿐 아니라 온라인 저널리스트와 학생들을 만남으로써 주한 미국대사관을 좀 더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p.8
1985년까지 나는 동유럽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그런 경험은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동아시아로 돌렸다. 그래서 간 곳이 한국이었다. 이곳에서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주한 미국대사관 경제담당관으로 일했다. 폴란드의 미래가 어두침침했다면 한국의 미래는 아주 밝았다. 나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열정과 활기에 반했다. --- p.61 “여러분이 복귀했을 때는 가옥이 대부분 파괴된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코소보 재건에 힘을 합칠 것이고 벽돌 하나하나를 함께 쌓을 것입니다. 코소보의 법치주의 원칙도 무너져 내렸는데, 그것 또한 재건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치주의 재확립을 코소보 복귀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가 시작할 것입니다. (……) 나는 여러분이 가공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제게 넘기십시오. 그들에게 정의가 관철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제게 넘기십시오. 제가 정당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온 부끄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 연설은 그리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효과를 발휘한 듯했다. --- p.230 1999년 8월, 나는 약간 울적한 기분으로 마케도니아를 떠났다. 그간 매일매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박한 위기에 직면하면서 살아온 탓에 그런 위험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중독성이 강한 아드레날린이었다. --- p.234 2004년 럼스펠드는 한국 주둔 미군은 북한의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대남도발에 대비해 밧줄에 묶인 염소처럼 전통적 임무를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전략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략적 역할은 미군이 한국인의 동의 없이 중국과 전쟁을 계획하는 데 한국을 전쟁터로 삼으려는 구도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했다. --- p.269 이런 상황에서 뭐가 최상의 결과일지 생각했다. 우리가 지침을 어기는 행위가 될 것인 만큼 회동을 취소한다? 아니면 회동을 진행하고 회담 재개를 발표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장에 중국인이 앉아 있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누가 신경 쓸까. 결국 우리는 베이징에 있고, 6자회담을 위한 회동, 즉 모든 목적은 다자대화를 재개하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우리의 모든 파트너는 이것을 원했다. 그것과 별개로 무엇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일까? 내가 경질될까? 머리가 아프고 위가 뒤틀리는 상황에서 결정하기 힘들었다. --- p.281~282 나는 2005년 2월부터 북핵 이슈에 집중해온 이래 거의 4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을 40여 차례 방문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명성은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가 파트너로 프로세스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많이 변화됐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견지하며 협상했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 받아내기 전에 북한에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뭔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또한 그 프로세스를 이끄는 과정에서 중국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했다. 한미동맹을 위협했던 한국과의 인식 차도 극복됐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2007년 대선이 실시될 때 한미관계는 이제 더는 현안이 되지 않았고, 어떤 후보도 반미를 내세우지 않았다. --- p.370 부시 행정부는 임기 초반에는 북한과 협상하는 데 반대하다가 후반에는 협상에 주력했다. 나는 압력밥솥처럼 스트레스로 부글부글 끓었던 북한과의 협상에서 벗어난 뒤에는 속이 뒤틀리는 것과 같은 이라크 문제에 몰입하게 됐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무리 스트레스가 많아도 대의명분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로 뭉쳐졌다. --- p.437 네오콘과 추종자들이 이라크에서 무엇을 성취하려고 했는지 설명하지 못한 것은 미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난 대상을 정보분석가들에게로 돌리려는 뻔뻔스러운 시도까지 했다. 이들이 부시 대통령을 전면적으로 밀어붙여 전쟁으로 가게 한 것처럼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 p.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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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이후 미국 주도 협상의 중심
슈퍼파워 미국 외교의 실체 《크리스토퍼 힐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은 1977년 국무부에서 시작한 크리스토퍼 힐의 33년 외교관 생활의 총결산인 동시에, 냉전시대에서 탈냉전 글로벌시대에 이르기까지 슈퍼파워 미국 외교상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냉전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분열되면서 생긴 보스니아 내전을 힐이 리처드 홀브룩 수석대표와 함께 데이턴평화협상을 이끄는 과정과 그들이 고민한 구체적 내용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데이턴평화협상 후 부임한 마케도니아에서 내전을 중재하기 위해 힐이 노력한 부분들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힐은 코소보의 주요한 민중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을 설득하고 미국 정부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독재자 밀로셰비치를 때로는 압박하고 때로는 설득하여 내전종식의 중요한 돌파구를 만들었고, 직접 마케도니아 정부를 설득해, 내전을 피해 몰려드는 알바니아계 코소보 난민들을 위한 대형 난민캠프를 설치하여 극심한 혼란을 막기도 했다. 폴란드대사와 한국대사를 거쳐 이라크대사로 부임한 크리스토퍼 힐은 안정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았고, 미군이 주도하는 현지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에 대사관의 비중을 늘려 미국 정부와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이라크 주민 및 이라크 정부와의 불필요한 충돌과 갈등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힐은 네오콘 그룹의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광적인 이라크 침공론을 비판하면서 이들의 북핵 강경대응책에 대해서도 비현실적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네오콘 진영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힐 대사의 책을 비판하는 반박 칼럼을 기고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외교관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두 가지 고정관념 이 책을 읽다 보면 외교/외교관에 대한 두 가지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외교관, 특히 미국 외교관이라고 하면 화려한 외교파티에 등장해 건방진 태도로 미국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을 떠올리거나, 일반인들은 경험하기 힘든 엄숙하고 복잡한 의전을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에 부임한 미국 대사들 중에도 정재계 주요인물을 만나는 데만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힐의 회고록을 읽다 보면 외교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의 업무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알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은 코소보 내전 해결을 위해 코소보 산악지역으로 과감하게 코소보 민족해방군을 찾아가는 야전형 협상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마케도니아에 코소보 난민들을 위한 캠프를 설치하도록 하여 인도주의를 실천하기도 했다. 힐은 국제분쟁과 관련하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주변국, 기업, 해당 국가 출신 자국 국민 등과 갈등과 충돌을 빚기도 하고, 정부 내 타부서와 치열한 내부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살육이 진행되는 전투현장에서 독재자와 협상해야 하는 외교관의 고뇌와 상급자와의 소통과 동료애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음으로 외교 관련 책이 아주 따분하고 지루할 것이란 고정관념이다. 힐의 회고록이 지닌 미덕은 그런 딱딱하기 그지없는 외교 사료와 서술에서 풍부한 사례, 인간 대 인간의 갈등과 외교현안을 다루는 이들의 심리묘사, 고민,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소설 미국 외교사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어가고 감동을 준다. 외교관들이 쓴 책은 대개 의미는 있지만 무미건조해 재미가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확 날려버렸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 그의 혈기왕성한 생각에 공감하고 그의 고민에 동참하면서 마치 스스로가 그가 되어 행동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인 《스티브 잡스》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이 책에 대해 “…힐은 외교협상과 스토리텔링의 거장이다. 그의 책은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외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가이드다. 또한 외교의 이면에서 전개되는 모험적 이야기들로 가득 찬 매력적인 책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국제정세와 미국외교사, 힐이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과 교양을 선사해줄 것이며, 외교관을 지망하는 학생들과 관련 업무 종사자들에게는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외교 현장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