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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
진실과 진리에 대한 회의 구름처럼 흘러가버린 청춘, 사랑, 세월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는 『바람 없는 나무』처럼 각 장절마다 화자 ‘나’가 달라지고, 작가는 각 장절마다 화자를 달리함으로써 등장인물의 주관적인 관점과 입장을 충분히 드러내준다. 이를 테면 『뿌리 깊은 땅』과 「베이징에 황금태양이 있네」에서 3인칭으로 지칭되던 인물들의 익명성이 개방되면서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 등의 작품으로 갈수록 주변 인물들이 각자 이름을 얻고, 화자로, 중심인물이 되어 말할 권리를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베이징에 황금태양이 있네」의 미스터리 사건은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에서 해결되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여 인물들은 새로운 갈등 속에서 부침한다.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는 2년 동안 계속된 가뭄 때문에 사람들이 사당패를 불러 떠들썩하게 기우제를 지내다가 산불을 내서 천연 보호림을 홀랑 태우고 그 와중에 두 아동 둘째 죄받이와 갓난이가 희생되어 현 촌장 자오챠오마이, 사당패 도사 가오웨이둥, 초등학교 교사인 장중인 세 사람이 공안국 장 국장에게 잡혀가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의 작중 인물들은 80년대의 두 번째 미신 활동인 기우제에서 첫 번째 미신 활동인 문혁 당시의 마을 어귀의 오래된 수호나무에서 발생한 황표지 사건을 회상한다. 이러한 마을 공동의 미신 활동 속에서 선생 장중인은 처음에는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간다. 장중인은 십 몇 년이 지난 뒤에 마을에서 기우제를 올리다 산불이 나는 바람에 피동적으로 연루되어 다시 감옥에 들어간다. 사실 장중인은 지식인적인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식인은 계몽자의 입장을 갖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민중을 가르치겠다는 식의, 그것은 넉넉한 자가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며 도와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피계몽자보다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민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장중인과 리루이의 ‘진실’, ‘진리’에 대한 회의의 과정이라고 하겠는데, 장중인이 처음 마을에 올 때만 해도 그는 일대 유일한 지식인이라는데 자못 심취했고, 마을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다는 우월감도 갖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의 깊은 반성을 통해서 그는 진정으로 민중의 입장에 서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리루이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이상이 정치, 역사, 현실과 부딪치면서 갖게 되는 괴리감을 돌출시키고, 나아가서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시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시대의 기수이자 계몽자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추상적인 이념, 진리, 진실의 허구성을 파헤친다. 저자 중국어판 후기 우리의 비전, 본토중국을 ‘쓰기’에 대한 세 가지 단상 하나 중국의 모든 작가와 시인들의 가장 큰 행운과 가장 큰 불행은 모두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표현할 때마다 사용하는 상형의 표의문자인 한자 때문이다.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수많은 문자 가운데서 단연 독보적이긴 하지만, 상형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백이 툭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혼잣말에 그치고 만다. 인류의 지혜를 표현하는 각기 다른 방식이 각각의 말과 글임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독특함’을 인정하는 만큼 가장 외로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지구상의 많고 많은 완벽하고 성숙한 종류의 문화와 인종집단들(ethnic groups) 속에서 상호 비교해 보면, 우리는 거의 하나밖에 없는 상형의 원시적인 사유방식에서 출발하여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표의문자인 한자로써 상징되는 오늘날의 문화로 발전했음을 발견할 것이다.(세계에 고대 이집트인, 마야인과 다른 종류의 상형문자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승되지 못했거나 흔적 없이 사라졌고, 중국어처럼 그렇게 대대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하지 못했다.) 남들이 상형으로부터 표음문자로 변이하고 전환될 때에, 우리 조상들은 고집스럽게 한자를 지켜왔고 울창한 숲으로 번성시켰다. 더군다나 그 아득한 옛날 기원전 221년에 벌써 문자를 통일시켰다. 우리는 대단한 ‘한자’의 자손들이다. 지난 한 세기여 동안에 중국인은 이러한 영광의 폐쇄성과 쓴맛을 실컷 맛보았다. 어떤 이는 ‘한자를 폐지하자’고 크게 외쳐댔고, 어떤 이는 뼈저리게 뉘우치며 ‘중국 책을 읽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신문화운동을 주도한 선구자들은 하나같이 문자에 깊이 통달한 지식인이었다. 소동파(蘇東坡)는 「봄철 강가의 해질 무렵 경치(惠崇春江晩景)」라는 시에서 ‘봄날 강물이 따스해지면 오리가 가장 먼저 안다’고 하였으니, 그러한 선구자가 이해하는 사람 없는 외로움을 가장 먼저 어찌 아니 느꼈을까. 지금 보자면 그들의 슬로건에 부족함과 편협함이 다소 없지는 않으나, 그러나 여러분은, 당시 선구자들이 ‘신문화’ 창조를 도모할 때에 탁월한 안목을 갖고, 우선적인 공격목표로 선택한 것은 문언문(文言文)이었다. 문언문은 역대 문인들이 꾸준히 사용하여 휘황찬란한 전적을 수없이 집필해낸 유일무이한 수단이었다. 「광인일기」에서 사람을 깜짝 놀라자빠지게 만든 광인의 ‘백화(白話)’로부터 중국은 지난 2천여 년 동안의 ‘문언’의 역사와 작별했고, ‘백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광기도 차츰 가라앉았다. 그들이 자신의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파괴할 때에 그들 자신이 발붙인 대지도 따라서 파괴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최악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너무 다급했던 나머지 그들이 이도저도 아닌 ‘백화’를 선택한 일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게 되었다. 신문학 관련 사료를 펼치고, 대부분 번역투에다 설미지근한 글말로 도배한 초기 백화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신문학 선구자인 후스(胡適, 1891?1962)는 백화란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1천 년 전의 당대(唐代) 소설과 그 뒤의 송원(宋元) 화본(話本)까지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확한 견해였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화본이란, 사실 민중에서 유행하는 속어나 사투리로 말한 ‘이야기(story)’ 대본이다. 현대 중국인은 문학사의 ‘4대 고전’이야말로 자랑스러운 고전으로 자부한다. 하지만 『서유기(西遊記)』, 『수호전(水滸傳)』,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모두 화본을 바탕으로 해서 문인들이 편집하고 재창작한 것이다. 조설근(曹雪芹, 1724??1763?)의 『홍루몽(紅樓夢)』은 주로 ‘베이징 지역의 입말’로 쓴 백화소설이다. 이 고전들은 동시대 민중들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한 속된 말과 상소리들을 그대로 썼다. 그것들은 벼슬하는 양반 말투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양반들의 비위에 거슬렸고, 그래서 푸대접과 업신여김을 받았다. 수천 년 동안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입말이 자체의 상스러움과 속됨 때문에 양반의 우아하고 고상한 문언문 밖으로 배척당한 거야 당연지사는 아니었을까. 심하면 색출당하고 유통을 금지당하고 ‘금서(禁書)’가 되었다. 지난 천년 동안 계속된 푸대접과 업신여김 끝자락에서, 신문화운동의 선구자들이 자기 주변에 널린 입말과 연결시켜 글과 말의 변혁을 주장했다. 상하이 푸단대학(復旦大學)의 천쓰허(陳思和, 1954? )의 독창적인 관점을 빌리면, 백화는 민중의 말이다. 신문화운동의 선구자들이 서양의 불씨를 빌려와 민중을 계몽시킬 때, 그들은 다급한 김에 절박하게 발붙일 곳을 찾느라 허둥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민중 편에 서게 된 일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는 모르겠으나, 계몽자들이 내건 간판은 피계몽자인 민중이 말하는 방식이었다. 달리 해석하면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민중이야말로 중국에서 지난 수천 년 세월동안 강권과 독재 통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토대이자 토양이다. 루쉰(魯迅, 1881?1936)과 같은 계몽자마저도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의 사각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든 민중 아니던가. 민중의 이러한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바뀌지 않았다. 다급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신문화운동의 선구자들은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민중에서 가져온 백화를 계몽의 도구로 삼았다. 문언문과 철저히 동화된 문인이 서둘러 빌려온 (‘문(文)인(人)’과는 전혀 딴판인) 민중의 백화는 도구일 뿐이었다. 요컨대 민중 계몽과 문학 창조의 도구였을 뿐이다. 백화는 임시적으로 응급조치를 위해서 문인이 손에 든 대용품이었다. 도구가 된 이상, 영원히 ‘사람’ 밖의 ‘타자’의 운명을 피할 수 없고, 임시적으로 가져올 수 있으면 또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도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 진짜 치명적인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언어는 우리의 사지, 오관, 심장, 대뇌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만약 해부학과 생리학의 의미에서 사람은 어떠한 영장류 동물과도 서로 분명하게 구분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러면 언어가 탄생한 날부터 사람은 만물과 철저하게 분리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임을 나타내는 상징은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신문학사를 펼쳐놓고 신문학부터 오늘까지의 문학사를 살펴보면, 사용할수록 도구는 날로 완벽해졌고, 사람들은 날로 세련되게 사용했다. 우리는 이 도구를 들고 새로운 물결이 몰려올 때마다 거울삼고 모방했다. 하나하나 깊은 주제와 사상을 표현했고, 하나하나 모범적인 인물을 묘사했다. 그러나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껏 언어 자체를 주체로 업그레이드시키기 못했고, 사람처럼 중시되는 본체로 업그레이드시키지 못했다. 라오서(老舍, 1899?1966)와 자오수리(趙樹理, 1906?1970)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욱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민중 속에 뛰어들어 민중의 입말을 대량으로 활용하고, 서민생활과 시골생활을 묘사함으로써 풍부한 민중 색채를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활발히 창작하면 할수록 주제, 인물, 스토리가 쌓이고 또 쌓일수록 그들의 토속적인 입말도 도구의 성격과 본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일상에 녹아든 언어 역시 그저 주제를 표현하고 모범적인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활용된 것이었다. 우리는 카프카, 조이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포크너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체험에서 얻은 서술이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그러한 혼연일체가 되는 체험을 체득할 수 없다. 아무리 절대다수의 독자가 읽은 중국어 번역본이라 해도. 그렇지만 우리는 폭포처럼 쏟아내는 그들의 고백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강렬한 자극을 느끼고 전율할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자각이 없는 문학사야말로 커다란 결함을 가진 문학사이다. 언어에 대한 자각을 획득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야말로 영원히 이해하는 사람 없는 ‘혼잣말’의 그림자 속에 파묻힐 것이다. 물론 엄격한 문법과 뜻을 가진 서양인의 알파벳은 그들의 유구한 이원론 철학과 실험실에서 얻은 과학으로부터 전승되었고, 그들의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와 기독교의 휘황찬란한 문화와 예술로부터 전승된 것이다. 그들의 언어적인 의미에 대한 자각도 불과 근대 이래의 일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알파벳과 텍스트적인 의미에서의 혁명과 자각을 이해하고 알았다고 해서 우리의 상형문자인 한자에 대한 언어적인 자각과 혁명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 서양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유형의 인류의 지혜를 대변한다. 사람이 부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문화와 전통도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숙명인 것이다. 설령 동쪽 산에서 뜨는 태양과 서쪽 산으로 지는 태양이 같은 태양이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그건 본래 같은 태양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나간 역사는 우리에게 늘 커다란 아쉬움과 부족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모종의 비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비전에서 한자의 씨앗을 받아내서 이 땅에 뿌리고 중국인의 피와 땀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자란 나무들이 울창한 숲으로 가꾸어가야 한다. 그리 하지 못했거든 자신의 피와 살과 문자로써 이 땅의 흙이라도 썩혀야 한다. 우리 후손들이 씨를 뿌리도록. 그러자면 용기가 필요하다. 숙명에 대한 초연함은 더욱 절실하다. 둘 청나라 말기 무술변법(戊戌變法)이래로 한 세기여 동안 여러 정권이 엎치락뒤치락 바뀌었다. 지난 한 세기여 동안 내리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지난 한 세기여 동안 우리는 상전벽해를 겪었다. 중국은 이제 어제의 중국이 아니다. 우리가 ‘본토중국’이란 말로 중국을 표현할 때, 우리는 ‘本’은 어제의 ‘本’이 아니고, 어제의 ‘土’는 이미 사라졌음을 깊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독특한 언어 문자에도 타인의 목소리와 뜻이 흠뻑 스며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표현할 때, 우리는 여전히 상형의 표의문자인 한자를 사용한다. 세계 4대 고대문명이 역사의 비바람 속에서 중단-변화-소멸의 과정을 겪을 때, 한자에 응집된 중국 문화는 불가사의한 힘과 인내로써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는 기적이다. 이는 우리의 벗어날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돌이켜 보면, 중국에 진짜로 변하지 않은 ‘토지’가 있을까? 하상(夏商)부터 서주(西周), 춘추(春秋)부터 한당(漢唐), 명청(明淸)부터 민국(民國) 시대 또 오늘날 개혁개방까지, 중국에 하루라도 변하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지난 천백 년 동안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 땅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지막에 한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한자가 모던이나 포스트모던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길까?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지난 3천년 동안에 전혀 없었던 대변혁’이라고 해도. 우리가 영원불변의 ‘본토’를 고집스럽게 요구할 이유라도 있단 말일까? 역사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지금 파묻힌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은 역사의 거대한 도전 앞에서, 어느 누가 당신의 입발림을 듣고 싶어 할까? 역사라는 치명적인 재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칠 때, 역사는 여러분이 살아남을 방주를 잘 준비했는지 아닌지를 물은 적이 없다. 셋 글말은 천차만별이다. 변화무쌍한 일상의 입말과 씨름하는 것은 조가비가 바다와 씨름하는 것과 같다. 만약 어느 날 파도가 잠잠해진다면, 만약 어느 날 사람들이 더 이상 언어로 말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조가비도 그때부터 생명의 뿌리를 잃어버릴 것이고 눈부신 광채도 잃어버릴 것이다. 글쓰기의 의미는 바로 조가비의 속박을 벗어나서 생명의 바다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것은 흥분을 억제할 수 없는 회귀다.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한 가지 문제를 해석해주어야 할지 모른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글을 써왔고, 지난 여러 해 동안 구시대와 동시대 사람의 글을 읽었다. 그러는 가운데 저절로 잠재의식적으로 글말 용어에 길들었다. 때로는 글말만이 우아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라고 여겼다. 이 글말의 암초 위에 선 다음부터는 주변의 쉬지 않고 소란을 떠는 입말의 바다를 점차 잊어버렸다. 극도로 통제하고 간결하고 신중한 서술 방식으로 완성한 ‘뿌리 깊은 땅(厚土)’ 계열은 이 시기의 나에게는 글말의 감제고지(瞰制高地)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고유의 각도에서 출발해서 앞으로 좀 더 나아가면 어느 정도 힘을 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탄도미사일처럼 예정된 궤적을 따라서 하늘 높이 올라간 다음에 예상 목표에 정확히 떨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예상 목표에 떨어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이 글말의 암초 위에 섰을 때에 비로소 내 주변에서 떠드는 입말을 들었고, 그 입말의 바다에 매료되었다. 나는 ‘입말이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경계에 흠뻑 취했다. 한참을 에돌아간 다음에 나는 마침내 입말로 혼잣말하는 수법으로 장편소설 『바람 없는 나무(無風之樹)』를 완성했고, 뒤이어서 장편소설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萬里無雲)』를 완성했다. 나는 문자의 조가비를 더 이상 복잡하게 다듬고 비틀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대단한 서사시인 양 떠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주체, 인물, 줄거리, 서사시 같은 거창한 것들로 이미 쌓아놓은 제방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나는 나의 소설 속에서 드넓은 바다의 도도한 파도가 거세게 솟구치기를 갈망했다. ……나는 진짜 오만방자했다. 나는 진짜 너무 분수를 몰랐다. ……절벽 위에 서서 몸뚱이를 훌쩍 날려 천길만길 아래로 떨어지면 살과 뼈가 으스러질 것임을 분명히 알지만, 그러나 그 찰나의, 비상의 짜릿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사람은 절대 성공을 위해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내버린 것은 알짜이고, 수확한 것은 찌꺼기일지도 모른다. 푸른 숲을 보는 눈을 갈망하지만 커다란 사막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만 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다. 나는 두서없이 왁자지껄 웅성웅성하는 입말의 숲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야말로 문법이라곤 없는 입말의 숲에서 난생 처음으로 흥분했다. 『바람 없는 나무』에서 ‘입말이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재미를 처음 맛본 다음에 나는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에서는 멀리 훨씬 더 멀리 가보고 싶었다. 나는 모든 문언문, 시사(詩詞), 글말, 입말, 술 취한 주사, 아이의 엉뚱한 생각, 정치적 폭력용어, 농사꾼과 아낙네의 구두선, 모든 고전적, 모던적, 유행이 한참 지났거나 아예 사라져버린 말, 지금 한창 유행하면서 남발하고 있는 말, 심지어 내가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원래의 소설까지도 모두 몽땅 ‘입말이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탁류 속에 깡그리 집어넣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만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직감만으로,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야, 무조건, 무작정 훌쩍 몸뚱이를 날리게 될까. 나는 남의 아름다움을 빼앗을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옛날 사람의 손에서 빌리고 배운 것은 모두 자신의 창조인 셈이다. 나는 다만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를 뿐이다. 나는 아방가르드를 뽐내고 싶지 않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중국에서 한창 유행하는 간판이 되었을 때, 나는 한사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이용하는 한자는 중국 사람이라면 지난 2, 3천년 동안 쓰고 또 쓰고 닳고 너덜너덜 헤지도록 사용했다. 아방가르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낡은 한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새로운 생명을 주입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있다. 신문화운동의 선구자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중국 사람이 사용했던 한자와 입말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켰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수문을 열어젖힌 제방을 좀 더 넓히는 것이고, 바다 깊은 곳으로 나아가서 좀 더 깊이 잠수하는 것이다. 중국문학이라는 바다에 더욱 많은 바닷물과 파도를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입말에는 우리의 모든 슬픔과 기쁨이 담겨있다. 모든 과거, 현재와 미래가 담겨있다. 입말에는 인류 전체가 겪은, 뼈에 사무치는 생명 체험이 담겨있다. 모든 주제, 인물, 줄거리, 모든 역사적, 철학적 깊이는 그저 입말의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한 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간신히 자유를 획득한 한자를 글말의 문학이란 암초에 감금시켜 놓고 숨통을 조일 이유란 없다. 입말은 글말의 울타리에 갇혀서 숨통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중국어의 바다에 대서양이나 아마존 강의 색깔을 섞을 필요도 없다. 누구든 『바람 없는 나무』를 읽은 다음에 ‘농촌제재를 쓴 소설’이라고 하는 말을 나는 가장 듣기 싫다고 말했었다. 내가 싫어하는 까닭은 농촌제재라는 말 자체가 실제로 문학과는 천리만리 동떨어진데다가 서로 관련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뜻을 조금이라도 고증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준군사적인 용어라는 것을 대번에 알 것이다. 유격전으로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정권이 흥분에 겨워서 감격한 나머지 군사적 승리를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널리널리 퍼뜨렸다. 그리하여 우리한테 공업전선, 농업전선, 위생전선, 문화전선, 교육전선, 선전 같은 용어가 생겼다. 지도통일과 선전통일을 위해 손쉬운 방법으로 모든 예술창작에 공업제재, 농업제재, 군사제재, 위생제재 같은 말도 붙여 넣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느 누가 이러저러한 제재가 무장투쟁의 유풍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러저러한 전선이 정치폭력이라는 것을 모르랴. 나는 ‘신시기 문학’의 신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신시기’란 용어는 문화대혁명 이후에 유행한 신조어가 아닌가? 버젓이 ‘입으로’ 폭력을 휘둘러놓고도 어떻게 전혀 느끼지 못할 수 있는 건지. 왜 포크너의 농장과 흑인의 속어를 말해야만 고상한 건지. 말끝마다 왜 문학은 순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지? 왜 조이스의 그런 거의 해석 불가능한 베를린 방언과 잡소리를 언급하면, 성서말씀을 듣는 것처럼 몸을 낮추는 건지.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 대신에 미처 연구해보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는지. 모두 다 문학이라면, 중국이든 외국이든 간에 일률적으로 문학과 예술로써 말해야 한다. 모두 다 사람의 언어라면 표음문자인 영어든지 표의문자인 한자든지 간에 모두 사람의 언어로써 다루어야 한다. 중국의 작가마다 모두 거장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긴 외국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잠재의식적으로 불평등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식민 상태를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도 아프지 않다니. 우리가 미국 남부 농민을 쓴 포크너를 ‘농촌제재 소설가’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늘 콩 심고 김매기를 쓴 도연명(陶淵明, 365?427)을 ‘농촌제재 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호 애재라”는 그릇된 주장이다. 나는 문학을 하는 나의 동료들이 문학의 이름으로 이런 쓰레기나 다름없는 언어폭력을 싹 쓸어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진심으로 『바람 없는 나무』와 『만리에 구름 한 점 없네』에 대한 비평을 희망한다. 물론 문학과 언어에서 출발한 비평을 희망한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문학의 내일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 발아래 이 땅의 흙을 썩힐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과 우리 문자를 함께 흙속에서 썩히겠지. 우리는 시간의 긴 강을 따라 묵묵히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되겠지. 언젠가 어느 날,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는 우리 유골을 중국이라 부르는 드넓고 기름진 들판에 묻겠지. 그 기름진 들판은 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졸졸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것이다. 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고 원숭이가 울부짖고, 온갖 새들이 지저귈 곳이다. 미래의 사람들이 아주아주 오래 전, 천백 년 전에, 한자로 풍년을 기원하고 행복 넘치는 옛 노래를 기록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지, 아니면 까맣게 잊어버릴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할 뿐이다. 이런 노래를 말이다. 흙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土反其宅,) 물은 자기 골짜기로 돌아가며,(水歸其壑。) 곤충은 일어나지 않고,(昆蟲毋作,) 초목은 자기 연못으로 돌아간다.(草木歸其澤。) 상상 속의 그런 기름진 들판이 있건 없건 간에. 이런 상상이 자기기만이건 아니건 간에. 이런 옛날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모든 것이 다 현재의 우리와는 무관할 것이다. 두터운 흙 아래 깊이 묻힌 우리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슬픔과 기쁨이 있건 없건 간에 역사는 우리의 생명과는 무관한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강이 바로 시나브로 굴원(屈原)과 이백(李白)과는 무관해진 것처럼. 굽이치는 역사의 강과 이미 많은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간에 모두 무관해진 것처럼. 역사도 마침내 우리와 무관해질 것이다. 모든 영원한 삶과 영원한 생각이란 죄다 가소롭고 허망한 것이다. 큰 강처럼 도도히 쉼 없이 흘러가는 변화과정만이 영원히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껏 우리가 희망을 품거나 절망에 몸부림치거나 했다고 해서 제 변화를 바꾼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슬픔이 밀려온다. 우리는 파종을 기다리는 흙이 될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파종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과 높고 푸른 하늘만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 그때 그 시절에 루쉰의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배우자. 그래서 루쉰처럼 우리 자신을 위해 묘지명을 남기자. “……천상에서 심연을 보다. 모든 눈 속에서 무소유를 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슬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른 선택도 없다. 다른 선택이 없는 처지를 느낄 때, 나는 모옌(莫言)의 우수한 작품을 읽었고, 한사오궁(韓少功)의 『마교사전(馬橋詞典)』을 읽었고, 뤼신(呂新)의 옌베이(雁北) 지역의 큰 산과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소설을 읽었다. 콸콸 떨어지는 폭포와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을 느끼는 그들의 언어를 맛보면서 나도 모르게 깊이깊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감동이 나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게 했다. 나는 너무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나 홀로 무조건 나아가야 할 용기와 포부를 갖게 했다. 그러나 나는 또 나도 모르게 깊이 감동했다. 감동! 우리가 생명이 다할 때까지 문학을 하려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1996년 9월 6일 밤 초고, 11일까지 수차례 수정, 타이위안(太原) 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