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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가 난자 속에 들어가려고 달리기를 하는 걸 보며 입을 쫙 벌리고 있는데, 아빠가 "그러니까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일등 한 사람들이야. 이억 마리 중에서 일등으로 달린 정자가 사람이 된다니까." 하고 말했다. 하늘에서 상금 천만 원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 기뻤다. 달리기만 했다면 꼴찌만 하는 내가 일등을 했다니. 그것도 여섯 명도 아니고 아억 마리 중에서. 언젠가는 내가 달리기를 잘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그런데 왜 나는 달리기를 못해?" 하고 기대를 이빨 사이에 탁 끼우고 물었다. "달리기를 일등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은 뭔가 한 가지씩은 제일 잘하는 게 있다는 말이야." 하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해도 공책 세 권을 받고 팔목에 일등 도장이 찍힌 듯 너무너무 좋았다. 나도 달리기에서 일등을 해본 적이 있다. 야!!! --- 2000/5/15 일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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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 18일 월요일
바람만 따끔하게 불고 햇살은 봄 같은 날씨 저녁을 먹기 전 나는 상 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엄마는 아빠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나와 "민서야, 민주야." 하고 불러서 돌아보니 엄마가 오른쪽 눈에 티슈를 접어서 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다. 나는 장난치는 줄 알고 우스워 죽을 것 같았는데, 민서는 소파에 엎드려서 "엄마, 엄마가 아닌 것 같아." 하며 울려고 했다. 엄마가 "눈이 간질간질해서 먼지나 병균이 못 들어가게 막아 놓은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민서가 막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눈 한쪽이 없어졌어. 어엉엉흐흑." 하며 엄마 목을 끌어안고 엄마 가슴에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나는 더 웃음이 넘쳤다. 엄마가 눈물을 닦아 주며 우스운 표정으로 "눈을 계속 감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이렇게 있지." 하고 말해도 계속 울었다. 할 수 없이 엄마가 티슈를 떼어 내고 "엄마 눈 여기 있잖아." 하고 보여 주었다. 그러자 민서가 눈물을 닦으면서 엄마 눈을 계속 보았다. 엄마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눈을 또 가리나 싶어서 얼른 쳐다보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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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의 성장 세계를 솔직하게 담은 책
초등 4학년은 고학년이 되어 서서히 사춘기라는 문을 두들기는 출발선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세계에서 친구와 이성, 그리고 자신에 대해 조금씩 조숙하게 성찰할 수 있는 시기다. 이 시기는 “성”에 대한 가르침과 호기심이 함께 필요한 때이다. 어떻게 아기를 갖고 어떻게 아기가 태어나는지, 결혼은 무엇인지, 남자와 여자는 왜 다른지 등 자신의 몸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남자라는 이성에 대한 궁금증까지 확대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밀노트인 일기 속에서조차도 이런 의문과 질문 담기를 수줍어한다. 민주는 이런 내용조차도 거침없이 일기에 고스란히 담는다. 이 모음집은 어린이의 2학년 봄부터 4학년 여름까지 쓴 일기를 엮었다. 대개 2학년과 4학년의 문화적 체험과 사고의 깊이는 그 차이가 현저하다. 내용의 깊이와 그 길이가 달라진다. 민주의 일기를 보면 그 차이를 즐겁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이 무슨 고민에 빠졌는지,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보통 가장 적수이면서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와의 소리없는 전쟁, 친구와의 우정, 선생님에 대한 생각들이 정직하게 담겨 있다. 3,4학년생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 자연이다.”란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기르기 귀찮고 꽃도 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싫어서 빨리 시들기 바랐던 꽃에 대해 “민주도 늦게 늦게 자라고 말 안 들으니까 엄마도 민주 버릴래.”란 엄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자식처럼 꽃을 돌보는 그런 마음이 어린아이에게 가능할까? 비디오를 보여주기 싫어서 컴퓨터 고장 났다고 하던 선생님이 비디오를 틀어주자 혹시 선생님이 거짓말한 것은 아닐까 싶어 비디오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만날 달리기에서 꼴찌를 해서 한번쯤 일등을 해 봤으면 하고 상상이나 하는 아이가 수억 마리의 정자 가운데 일등한 정자만이 사람이 된다는 아빠의 말에 자신도 일등 해 본 적이 있다며 일기에 “야호!”하고 쾌재를 부르는 아이…… 어린이는 정말 “어리다”고 치부해 버리는 어른의 세상을 향해 이 일기 모음집은 한 아이가 세상과 자연을 이해하는 폭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일기 모음집은 초등 학생이 쓴 글이면서 초등 학생이 읽을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일기라는 장르를 배제할 수 없기에, 이 모음집에는 현직 초등 학교 선생님이면서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의 말을 빌어 일기쓰기에 대한 도움말을 붙였다. 민주의 일기를 “어떤 유명한 어른이 쓴 글보다도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라고 평을 한 윤태규 선생님은 무엇보다 일기의 성격은 “정직함”에 있음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