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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시진핑 정권의 핵심 인물
제2장 계속 암약하고 있는 ‘원로 군단’ 제3장 시진핑 패밀리의 민낯 제4장 반당반민(半黨半民) 기업과 비즈니스 리더들: 차이나 드림은 존재했는가? 제5장 금융 마피아와 자원파(資源派) 제6장 대일 외교의 사령탑과 군부 수뇌 제7장 타이완을 움직이는 사람들 제8장 재야 및 반정부 지도자들 제9장 홍콩과 마카오를 움직이는 사람들 |
Masahiro Miyazaki,みやざき まさひろ,宮崎 正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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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두’는 촉(蜀)나라 초대 황제인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을 가리킨다. 그는 유비현덕이 죽은 후 제2대 황제가 되지만, 위(魏)나라에 패해 투항하고 안락공(安樂公)에 봉해져 일생을 마친 바보 같은 인물이다. ‘아두’는 중국어로 멍청이라는 뜻이다. 보시라이가 시진핑에게 유아두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시진핑이 심약하고 유선(劉禪)과 같이 멍청한 자라는 의미로 실로 무시무시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 p.24
시진핑은 1953년생으로 62세이다. 시중쉰 전임 부총리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실각으로 고향 산시성(陝西省)의 농촌으로 7년간 하방(下放)되었다. 이때의 정신적 트라우마로 타인과의 다툼을 싫어하고, 처참한 투쟁을 피하며, 팔방미인형인 온화한 성격을 형성했다고 한다. 장기로 비유하자면 정석밖에 두지 않는 타입으로 다음 수를 읽기 쉬운 정치가이기도 하다. --- p.25 장쩌민은 경제 혼돈과 부동산 버블의 기초 조건을 만들어내고, 군에 바짝 다가서서 반일을 무기로 민족주의(nationalism)를 선동하고 일류 국가의 지도자로 가장했다. 그는 일본인이 중국을 싫어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궁중 만찬회에 인민복을 입고 등장해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以史爲鑑]”는 연설을 하며 으스댔다. --- p.90 중국을 지배하는 독재자는 국내의 여러 가지 모순으로부터 국민의 시선을 떼어놓기 위해 ‘애국’ 등 싸구려 민족주의를 부르짖고, 늘 일본을 적대시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자 기를 쓴다. 겉으로는 싱글벙글 웃는 중국이, 국내에서는 노회하고 교활하게 악의에 가득 찬 반일 교육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말하자면 ‘반일’이란 국민을 결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구사하는 무기[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이것을 ‘싸구려 술’이라고 불렀다]이며, 정치가 입장에서 쉽고 편리한 아편과도 같은 것으로, 후진타오도 이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p.100 2003년에 원자바오가 국무원 총리가 된 것은, 전임자였던 주룽지와의 연줄에 의한 것이다. 민완 총리라고 불렸던 주룽지는 금융 해방을 과감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들은 원자바오에게도 동일한 행정 수완을 기대했다. 원자바오는 한동안 서민으로부터 인기가 높았고, 또한 사실은 ‘입만 산 사람’이지만 서방식 민주주의를 주장해서 서방 매스컴의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실태는 이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 p.104 시진핑의 최대 브레인은 모친 치신이라고 일컬어지지만, 그는 대학 동급생인 허리펑(何立峰)을 참모역에 두고, 천시(陳希) 등 어린 시절 친구의 발언에도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의 가족들이 비즈니스를 확대하여 부호 집단을 형성했듯이, 시진핑의 자제들도 이미 홍콩에 진출하여 부동산 개발로 부호가 되어 있다. 황제의 자리를 손에 넣은 현재, 이권과 관련된 비즈니스 과점도 시작되었을 것이다. 시진핑 일가는 자산 규모가 400억 엔 이상이라고 할 만큼 대부호이다. --- p.112 장쩌민이 은퇴하고 저장성에 놀러왔을 때에도, 마침 장쩌민의 배경으로 저장성 서기가 되어 있던 시진핑은, 장쩌민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라붙어 각지를 안내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고전 소양을 발휘해 시를 암송하거나, 각지의 기념관이 휘호(揮毫)를 요청할 때에 달필을 자랑하는 장쩌민의 연속되는 질문에 시진핑은 답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관광 안내와 역사를 술술 외워 남편을 도왔던 것은 펑리위안이었다. --- p.116 일찍이 시진핑이 ‘형’이라고 불렀던, 또 1명의 선배는 실각한 보시라이이다. (중략) 시진핑은 형뻘이었던 보시라이를 잃고, 일시적으로 기운이 빠졌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추의 권력투쟁으로, 후진타오가 통솔하는 공청단과의 파벌 간 싸움에서 열세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시진핑과 같은 태자당의 떠오르는 스타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보시라이는 잠재적 라이벌이며, 그의 실각은 장래의 2인자를 미연에 제거하는 의미에서 볼 때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 p.134~135 그러나 공산당 독재 정치제도 아래에서 민간인이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뇌물이 없어서는 안 된다. 뇌물 자체가 중국의 문화이다. 뇌물의 액수가 적으면 권력은 이 기업을 횡령하든지 부숴버린다. --- p.174 과거 소니와 마쓰시다전기(松下電器, 파나소닉의 전신)가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를 매수했을 때, 미국은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불쾌하기는 했으나 일본인은 다루기 쉽기 때문에 문화가 잠식될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유대인과 이탈리아인이 구축한 미국 영화 산업은 미국인에게 전통문화라고 하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할리우드에 도전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반응은 달랐다. 완다그룹은 중국 최대의 영화관 체인 경영을 비롯해, 부동산 비즈니스에도 손을 대왔다. 1988년에 왕젠린이 창업하고 최초에는 부동산 개발로 활용했던 복합기업체이다. (중략) 중국 국내에서 경영하는 영화관은 88개, 스크린은 730개를 자랑한다. 이 완다그룹이 미국의 대형 영화관 체인 AMC 엔터테인먼트를 매수했던 것이다. AMC는 경영 압박 때문에 중국 기업이 매수하는 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액수는 26억 달러였다. 기업 가치는 기껏해야 15억 달러여서, M&A 전문가들은 “비싼 매물이다”라고 비웃었다. --- p.176 중국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것이 군부, 즉 중국인민해방군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당(黨)의 군대’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p.220 ‘중국’이라는 국가는 한 꺼풀 벗기면 행정 등은 장식이고 당이 전부이다. 시장보다 시의 당 위원회 서기가 더 상위인 것처럼 말이다. --- p.223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작가인 류샤오보는 중국 민주화의 상징, 희망의 별이다. (중략) 류샤오보가 중심이 된 중국 민주화의 ?2008년 헌장?으로 2010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중략) 류샤오보가 기초를 다진 ?2008년 헌장?은 인터넷에 유포되었고, 찬동자가 금세 1만 명을 넘었다. 당국은 류샤오보를 ‘국가 전복 선동죄’로 구속했다. 가족과 변호사와의 면회도 불허했으며 11년 형을 언도했다. --- p.289~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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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인물사전
지은이 미야자키 마사히로는 중국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시진핑 정권기의 주요인물 일람을 시진핑 정권이 막 출범하려 하던 2012년 12월에 제시했다. 그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첫째,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는 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미국과의 분쟁을 표면화하지 않았으며,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는 ‘개혁’ (지향) 체제였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에는 형식적이라고는 해도 전향적이며 능력 있는 - 대표적으로 원자바오와 같은 관료가 적다. 개혁파로 보이는 왕치산, 리커창, 리위안차오, 왕양 등이 정치국에 있지만, 서방이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민주화’의 실천자는 아니다. 둘째, 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될 것이지만, 시진핑 정권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오히려 특권계급의 유지가 정치 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놓일 것이다. 셋째, 공산당과 군 고관의 오직과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으며,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와 토지 수용을 둘러싸고 오직에 저항하는 민중 폭동이 계속 확산될 것이다. 근대적인 군의 ‘국군화(軍國化)’는 군 내에서도 당 내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금기시되며, 개혁파 군인은 요직에서 교묘하게 배제된다. 이 때문에 시진핑에게 아첨하는 군인이 늘고, 동시에 시진핑은 군권을 장악하고자 국방비의 두 자릿수 증액 노선을 유지한다. 다섯째, 시진핑은 결단력이 둔하다고 알려진바, 권력의 중추에 눌러앉아 있는 원로들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리라고 예상된다. 이 책은 일본 일각의 중국관을 잘 보여주는데, 지은이의 중국관이 균형 잡혀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책의 독자 중에는 내용이 편향되었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대형 서점에서 국제관계 코너의 상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반중·혐중 도서에 비하면 이 책의 수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반중 도서의 대량 출간 역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중국위협론’이 제기되었을 당시 일었던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각이 일본 사회 한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비록 일본 사회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지만) 냉정하게 그것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일본에서 절찬리에 출간되고 있는 반한·혐한 도서들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혐한 도서와 혐중 도서의 저자는 많이 겹치는 편이다). 이 책은 제목과 목차에서 잘 드러나듯이 시진핑 시대의 중국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인물사전이다. 지금도 시진핑의 권력중추에서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이 주도권의 장에서 14억 명의 인민을 이끄는 중국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또 그들은 어떤 이들인가? 이 책은 정치계 인물 중심으로 서술을 시작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경제계, 외교계, 금융계, 재야·반정부, 홍콩·마카오·타이완 인사 등 현재 중화권을 이끌고 있는 이들을 총망라하여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정치계를 중심으로 중국 5세대 지도부 인사들을 단편적으로 분석한 글은 한국에도 많다. 그러나 이 책처럼 일관된 관점 아래 중국의 각계 인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한 책은 찾기 어렵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앞으로 중국을 이끌 리더들은 어떤 이들인가? 중국 장쑤성(江蘇省) 장인시(江陰市)의 ‘화시춘(華西村)’은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마을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1인당 GDP가 1440만 엔이고 마을에는 중국에서 여덟 번째로 높은 328미터의 고층빌딩인 신사회주의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중국 전역에서 온 시찰 투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게다가 마을에서 경영하는 항공회사도 있다. 각 가정에는 필리핀 가정부를 고용하는 여유 있는 세대도 눈에 띈다. 원래 화시춘은 둔전병(屯田兵)이 개척한 마을로, 쉽게 말하자면 생활 방도를 잃은 군대가 모인 자작농 지구였다. 문혁 때 비밀 공장을 운영하여 금형이나 철제품 등을 만들어 많은 축재를 이루었기 때문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모델로서 공산당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2011년 가을부터 중국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해 수출이 주춤하면서 경기가 후퇴했고, 이 불황의 파도가 화시춘을 직격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기업 ‘화시춘그룹(華西村集團)’은 주식을 상장하고 있었는데, 무려 매상 73% 감소, 순이익 58% 감소라는 참담한 재무 내용이 공개되었다. 특히 호화 호텔은 적자 경영에 빠져 있었다(≪개방≫, 2012년 9월 호). 그리고 더욱 경악할 만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화시춘의 주 노동력은 북한에서 파견되어온 여성들로, 월 6000위안이라는 ‘고수입’에 3년 계약 조건으로 고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6000위안 중 대부분을 빼앗기고 실제로는 150위안밖에 받지 못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외출의 자유도 없어, 마치 노예와 같다(≪개방≫, 2012년 9월 호). 그런데 왜 북한 여성을 고용하는가? 소식통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북한과 화시춘은 군국주의적 강제노동 지구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정신상의 유사성이다. 즉, 북한은 ‘실패한 화시춘’이고 화시춘은 ‘성공한 북한’인 것이다. 중국의 경제는 근대 경제나 근대 경영학과는 관계가 없다. 공산당에 인사하지 않고 뇌물이나 헌금도 바치지 않았으며 당의 보호 세력이 없는 민간인으로서 거부를 쌓은 가전 판매 2위 업체 궈메이전기의 황광위 사장은 내부자 거래 혐의로 구속되었고, 중국판 ≪포브스≫의 고위직 여성 사업가 우잉은 운용자금의 변제가 한때 늦었다는 이유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권력이 금력[錢力]을 낳는다고 하는 ‘권금변증법[權錢辨證法]’이야말로 중국을 대변한다. 이와 같은 체질을 가진 중국인,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농후한 성격을 드러내는 리더들이 앞으로의 중국을 이끌어간다. 이 책이 100명 전후의 중국인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인명사전식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이런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