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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1부 역사의 물줄기 황산하를 아시나요/가야진사의 나루신神/영남의 제1관문―작원관, 작원나루/낙동강 뱃길 7백 리 2부 나루터 사람들 하회 사공아, 노 저어라/퇴계와 농암의 나룻배/낙동강의 마지막 뱃사공/을숙도의 신新어부가/낙동나루의 석양 3부 이 사연 저 풍경 엄마야 누나야_본포나루/주모, 술 한잔 주소_삼강주막/물의 길, 풍류의 길_도흥나루/처녀 뱃사공은 어디 가고_악양나루/세 갈래의 강물_삼랑나루/임은 간 데 없고_구포나루/탈놀음의 고향_율지나루/나루를 열어라_개포나루 |
朴昌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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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동강의 나루인가?
나루가 무엇이던가? 나루의 존재 목적은 소통인 만큼, 실어주고 날라주면 족했다. 사공은 큰 걸 바라지 않았고 이용하는 주민들은 알아서 가름을 했다. 수확기가 되어 뱃사공이 지게를 지고 손수 골목길을 돌며 곡식을 추렴하는 모습은 인상적인 강촌 풍경이었다. 배를 많이 탄 사람은 많이 탄 대로, 적게 탄 사람은 적게 탄 대로 곡식을 내주었다. 많으니 적으니 다투는 법도 없었다. 그렇게 부대끼며 당겨주고 밀어주면서 나룻배는 움직였다. 이러한 소통과 흐름이 한민족 삶의 고갱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때문에 이 땅의 나루 하나하나가 소중한 문화재요, 민중 생활사의 단면인 것이다. 이 땅의 강줄기마다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루들이 젖먹이처럼 붙어 있었다. 수운이 왕성할 때는 서울 한강에만도 무려 수백 곳의 나루가 터를 잡았고, 영산강·금강·섬진강에도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백 개 이상씩의 나루가 들어서 있었다. 이 나루들이 모두 한겨레를 먹여살린 젖줄이다. 특히 서울 한강의 큰 나루들, 즉 광나루(廣津), 삼밭나루(三田渡), 동작나루(銅雀津), 노들나루(露梁津), 양화나루(楊花津) 등은 나루 자체가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되고 있을 만큼 그 역할이 컸다. 그러나 나루로 치자면, 낙동강은 한강보다 더 풍성한 유산을 끌어안고 있다. 낙동강에 붙어 있던 수백 개에 이르는 나루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역할과 모습을 드러낸다. 민중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의 나루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선비들의 독특한 풍류가 숨 쉬고, 때에 따라서는 군사·지리·산업·교통의 거점 구실을 했던 것이다. 낙동강의 나루들에 각별히 천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낙동강에는 일찍부터 나루가 흥했다. 1천3백 리나 되는 긴 길이만큼이나 나루도 많았고 사연도 깊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무려 1백여 개의 나루에서 배가 움직였다. 자잘한 강촌의 나루까지 더하면 수백 개를 헤아렸다. 이름을 떨친 나루도 많았다. 청량산의 광석나루는 퇴계 이황이 공부하며 건너던 곳이요, 안동 하회는 선비들이 선유(船遊)하고 민초들이 먹고살기 위해 이용하던 나루다. 예천 삼강은 세 개의 강과 세 개의 산이 하나의 장엄한 풍경을 빚어낸 뱃가요, 고령 개포는 팔만대장경이 옮겨진 나루다. 합천 밤마리(율지)는 오광대의 발상지로서 큰 장이 섰던 곳이다. 함안 악양은 ‘처녀 뱃사공’의 사연이 깃든 나루요, 남지 도흥은 조선 선비들의 멋과 풍류가 흐르는 자리다. 양산 가야진은 신라 때부터 국가 제의로 기우제를 행하던 곳이요, 물금은 유서 깊은 황산진구로서 가야와 신라의 전장 또는 교류의 물목이 된 나루다. 구포는 일제 수탈의 기지였고, 하단은 나라의 끝, 강과 바다가 만나는 열린 포구였다. 이들 나루와 포구에는 소금배가 다니고 해산물을 실은 배, 옹기를 실은 배가 무시로 오갔다. 1960년대 말까지 낙동강에는 부산의 소금배가 중간 기항지인 대구 화원의 사문진을 거쳐 상류인 상주 낙동나루까지 올라갔다. 상주에 부려진 소금은 다시 작은 소금배에 실려 예천 안동 등지로 옮겨졌다. 이 책에는 이러한 낙동강 나루의 사연들이 속속들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쓴 박창희 씨는 낙동강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다. 기자 생활을 하는 틈틈이 그가 엮어낸 책(<천리벌판 적시는 강>, <낙동강을 따라가 보자 1·2>, <살아 있는 가야사 이야기>)들은 그의 이런 낙동강 사랑을 증명해 준다. 이렇게 각별하게 낙동강과 낙동강의 나루들에 천착해 온 저자가 낙동강 언저리의 사연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그의 글이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나루와 나루의 문화에 대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이런 깊은 이해와 사라져가는 우리네 삶의 풍경과 문화를 아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사라진다는 것, 그것에는 그리워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거창한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에는 친절한 안내문도 많고, 책도 많고, 그것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무형의 문화나 생활풍속은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만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 지금 우리는 나루의 삶과 문화를 만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