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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은이에 대해 I. 고증에 관해 II. 정치에 관해 III. 사회·경제에 관해 IV. 풍속에 관해 V. 경학에 관해 VI. 역사에 관해 VII. 박문에 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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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군자를 바로잡겠다
이 책은 왕부지(王夫之)·황종희(黃宗羲)와 함께 삼대 유로(遺老)로 알려진 고염무의 역작이다. 고염무는 일지(日知)의 의미에 대해 ≪일지록≫의 목차 앞에 “내(고염무)가 어릴 적부터 책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으면 그때마다 기록해 두었는데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때때로 다시 고쳤다… 자하(子夏)의 말을 취해 이름 짓기를 일지록이라 했으니 이를 통해 후대의 군자를 바로잡겠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즉 일지는 ≪논어≫ <자장>의 “날마다 알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고 달마다 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으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라는 구절에서 기원한다. 실패한 통치 기제의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대안의 모색 고염무는 명 왕조의 멸망을 과거 순기능으로 작용했던 통치 기제의 합리성이 붕괴된 결과로 판단했다. 특히 통치 이념으로서 성리학이 본래 지닌 실용적이고 경세적인 측면이 쇠락하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원리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체제 내부의 문제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파악했다. 왜냐하면 성리학의 심학화(心學化)는 개인의 수양에 국한된 세계관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정치 과정에 진입한 학습된 관료들 역시 해결 능력의 부족 내지 통치 기제의 합리성에 대한 몰이해라는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염무는 명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당시의 학술적 폐해를 지적한다. 즉 관념적·추상적 원리로 경도된 심학으로서의 이학(理學)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경전에 대한 충실한 독서와 경전에 내포된 본래의 의미, 즉 경세(經世)를 위한 학문으로서의 취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해답은 경학(經學)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적인 학문 태도로의 복귀와 이에 의거해서 학습된 인재의 등용을 통한 명 왕조의 부활이었다. 결국 이 책은 실패한 통치 기제의 원인 분석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의 모색이라는 정치 개혁론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