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좋은 그림
2차대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삶은 피폐한 가운데 ‘라살구’라는 이름을 가진 화가가 그린 그림이 화제가 된다. 그의 그림은 놀랍게도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는 기이한 힘이 있었던 것! 배급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라살구의 그림은 대번에 희망이 되고, 그는 일약 실제파(야수파, 추상파 같은 화풍의 일종으로 그림에서 현실적인 힘이 나오므로)의 거장이 된다. 이제 그의 그림을 둘러싸고 정치계, 예술계, 언론계 등에서 대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작품의 결말에서는 여기저기서 라살구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게 된 예술가들 덕분에 배고픔에서 해방된 파리 시민들은 식권이니 암시장이니 하는 전쟁의 고통도 잊은 채 모두모두 행복해진다. 은총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머리에 성자의 둥근테를 두르게 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남들과 다른 남편의 둥근테를 몹시 싫어하며 없애버릴 것을 요구한다. 하느님의 섭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 남자는 처음에는 교만한 행동을 한다. 위장된 교만함이었지만 계속 입으로 교만한 말들을 내뱉자 어느 순간 진심으로 교만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둥근테가 사라지지 않자 다음에는 식탐을 택한다. 그런데 식탐은 또 다른 죄, 나태를 부르고, 교만과 식탐이 합쳐지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자신의 식탐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아내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고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도의 칠대지악을 전부 한 몸에 가지게 된 둥근테의 남자를 통해 이 작품은 죄가 더 큰 죄를 부르는 죄악의 연쇄를 그리고 있다. 무관심 분량은 가장 적지만 진지한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유머는 자취를 감추고 진지한 필치로 전쟁이 낳은 인간성의 상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있지만 그것도 포기하고 범죄자의 길을 걷는다. 전쟁 후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골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거침없이 살육하며, 살인청부업자로 일하기도 한다. ‘나’가 보여주는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전쟁이 낳은 최대의 폐해가 아닐까 씁쓸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
|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이로운 이야기꾼,
마르셀 에메가 선사하는 여덟 편의 매콤달콤한 소설 『파리의 포도주』는 통통 튀는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과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풍자, 소심하고 쩨쩨하며 때때로 어리석기까지 한 인간의 내면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마르셀 에메의 대표적인 소설집이다. 마르셀 에메는 문학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에게 열광적인 성원과 지지를 받는 등 민중작가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작가이다. 수십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은 내용상 흔히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먼저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작가 생활의 황혼기인 1960년대 사이의 시대적 분위기를 냉철한 필치로 관찰하는 극히 사실적인 작품이 있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특정한 상황에 빗대어 때론 신랄하게, 때론 정감 있게, 가끔은 맵게 꼬집기도 하는 풍자적인 작품이 있으며, 또 자신만의 기발한 발상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작품이 있다. 소설집 『파리의 포도주』에는 이런 마르셀 에메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포용하는 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관심」과 「파리를 가로질러」는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직접적이고도 건조하게 드러내보이는 등 암울한 사회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로서의 마르셀 에메의 면모를 엿볼 수 있고, 「좋은 그림」과 「은총」은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는 그림’, 혹은 ‘성자들처럼 둥근테를 달고 다니게 된 남자’ 등 에메다운 황당한 발상과 거침없는 유머가 압권인 작품들이다. 또한 「가짜 형사」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죄악을 마음대로 심판하는 인간의 위선적인 면모를 풍자하고 있으며, 「당통」에서는 사형 집행일 아침, 아기로 변해버린 살인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죄악의 구렁」은 교만, 분노, 시기, 식탐, 인색, 나태, 육욕이라는 일곱 가지 악마와 한 자루 검으로 대결을 벌이는 목사의 이야기로, 각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생김새의 괴물로 형상화된 일곱 악마의 묘사를 보노라면 에메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파리의 포도주」는 인간의 미각에 대한 집착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슬픈 이야기로, 포도주가 너무도 먹고 싶은 나머지 모든 사람의 머리가 포도주 병으로 보여 마침내 장인어른의 포도주 병(머리)을 부지깽이로 따버리는 남자가 주인공인데, 혀끝을 자극하는 맛난 음식에 대한 사람의 집착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를 약간은 잔혹하지만, 따뜻한 정서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넘실대는 위트와 유머, 군더더기 없는 알뜰한 구성과 아담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훌륭하게 담아낸 마르셀 에메의 수작 단편으로 손꼽힌다. 마르셀 에메의 손끝에서는 소심하고, 욕심 많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우리 인간들의 참모습이 빚어진다. 「좋은 그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보기만 해도 허기가 가시는 마법의 그림의 비밀을 알게 된 화상 영감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화가에게 선심이라도 쓰는 양 모든 작품을 계약할 것을 제의하다 들통 나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마법의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를 질투해 욕설을 퍼붓는 라이벌 화가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셀 에메는 인간의 그런 위선적인 면모를 조롱하면서도, 결국 그것마저도 우리 인간의 본성임을 신랄하지만 익살스럽게 묘사하기에 독자는 곡절 많은 우리네 인간사를 긍정하고,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