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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 한 수
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 열여덟 수 마음속 깊은 울분 한 수 내 뜻을 술회하다 두 수 선경에서 노닐다 한 수 육언시 열 수 대추호가시 일곱 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한 수 두 곽씨에게 답하다 세 수 완덕여에게 주다 한 수 술자리 한 수 사언시 열한 수 오언시 세 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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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贈兄秀才入軍)> 제18수
속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해 외물을 쫓다 돌아오지 않네. 지인은 멀리서 살피다 자연으로 돌아가서는, 만물과 하나 되고 사해와 한집을 이루네. 만약 그대와 함께라면 내가 어찌 애석해하리. 삶이란 부평초와 같아 잠시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는 것. 세상일이 복잡하고 어지러워 오랑캐 땅에 버려졌도다. 못가의 꿩은 굶주려도 원림을 원치 않는데, 어찌 벼슬길에 능히 올라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나? 몸은 귀하고 이름은 천한 법 영욕이 어디에 있겠느냐? 뜻대로 하는 게 귀한 것이니 마음에 맡기면 후회가 없으리라. 流俗難悟, 逐物不還. 至人遠鑒, 歸之自然. 萬物爲一, 四海同宅. 與彼共之, 予何所惜. 生若浮寄, 暫見忽終. 世故紛?, 棄之八戎. 澤雉雖饑, 不願園林. 安能服御, 勞形苦心. 身貴名賤, 榮辱何在. 貴得肆志, 縱心無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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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육조(六朝) 시대는 중국 최대의 격변기이며, 그 시대 초기에 전개되었던 위진(魏晉) 교체기는 난세 중의 난세다. 한나라 말기 조조가 조정(朝廷)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온갖 권세를 누릴 때 이미 위(魏)나라의 탄생은 예견되었다. 그가 죽은 해(220) 연말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나 위풍당당했던 조씨(曹氏) 일가도 3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고평릉(高平陵)의 난(249)을 주도한 사마의(司馬懿)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서기 265년에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司馬炎)이 진(晉)나라를 건국했다.
이런 와중에 시대가 만든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역사의 주목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혜강(?康)과 완적(阮籍)이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마씨의 정권 탈취 상황을 맞이해 혜강은 탈속(脫俗), 완적은 기행(奇行)으로 그들의 칼날을 피하고, 천부적인 글재주와 이상적 삶의 지혜를 대외에 표출하며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위나라가 채 망하기도 전에 혜강은 형장의 이슬로, 완적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 결과 혜강은 재야의 고수이자 영웅적인 자태를 풍미한 인물로, 완적은 하급 관리이자 방탄(放誕)적인 태도로 일관한 기인(奇人)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특히 혜강이 사형 집행 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런 두려움 없이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할 때의 모습은 가히 당대의 영웅적인 자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전하는 혜강의 시는 모두 60수로 사언시 30수, 오언시 12수, 육언시 10수, 악부시 7수, 소체(騷體)시 1수 등이다. 산문은 모두 15편[서(書) 2편, 부(賦) 1편, 논(論) 9편, 기타 3편]이 전하는데, 전체 문학 작품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위진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과 현실적 가치, 그리고 예교 윤리를 표방하며 탄생한 사마씨 정권의 부당한 정치적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 본래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자연과의 일체화를 지향했고 시공간의 초월적 존재인 신선을 앙모하며 양생론을 바탕으로 이상 세계인 신선 세계로 접근을 시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