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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 - 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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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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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이남석 6

제1장 관료 지배와 정치적 리더십 13

제2장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57

제3장 의회화와 민주화 85

해제`―정치를 위한 변호|이남석 119
1. 반전의 반전 119
2. 혼돈의 시대와 베버의 정치관 124
(1) 정치의 억압자,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126
(2) 무능력한 군주의 정치적 실패 129
(3) 무기력한 정당 131
(4) 또 다른 삽화 134
3. 행정과 정치의 투쟁 137
(1) 관리와 정치 지도자 138
(2) 엽관제, 왜 필요한가 141
(3) 법률가 정치인의 시대 144
(4) 적극적 정치의 실현으로서의 의회 147
4. 베버의 그림자 151

주 154
더 읽어야 할 자료들 169
옮긴이에 대하여 174

저자 소개 1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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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ilian Weber,Maximilian Carl Emil Weber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하이델베르크, 슈트라스부르크, 베를린,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 역사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1889년 베를린 대학에서 중세 이탈리아 상사(商社)에 대한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891년에는 고대 로마 농업사에 관한 연구로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893년 평생의 지적 반려자인 마리안네 슈니트거와 결혼했다. 1894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및 재정학 정교수로 초빙되었다. 1897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학 및 재정학 정교수로 초빙되었으나, 얼마 후 심한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되어 1903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으며, 하이델베르크, 슈트라스부르크, 베를린,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 역사학, 철학 등을 공부했다. 1889년 베를린 대학에서 중세 이탈리아 상사(商社)에 대한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891년에는 고대 로마 농업사에 관한 연구로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893년 평생의 지적 반려자인 마리안네 슈니트거와 결혼했다. 1894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경제학 및 재정학 정교수로 초빙되었다. 1897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경제학 및 재정학 정교수로 초빙되었으나, 얼마 후 심한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되어 1903년 10월 대학에서 물러나 명예교수가 되었다. 1904년 베르너 좀바르트 및 에드가 야페와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저널』의 공동 편집인이 되었다. 독일 사회학회가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으며, 1909년 이 학회가 창립되었을 때 회계 담당 이사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방대한 사회과학 총서 『사회경제학 개요』의 조직과 편집을 담당했으며, 사회정책학회 총회에서 벌어진 가치판단 논쟁에서 가치판단 중지의 원칙을 옹호했다. 1919년 뮌헨 대학의 사회과학, 경제사 및 경제학 정교수로 초빙되었으나, 1920년 6월 14일 급작스런 폐렴으로 한창 원숙한 지적 경지에 이른 56세에 세상을 떠나 그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인 하이델베르크에 안장되었다. 그는 『경제와 사회』 및 『종교사회학 논총』(전3권) 등을 비롯해 문화과학과 사회과학 담론의 다양한 차원 ― 이론적 논의, 경험적 연구, 역사적 접근, 비교 연구, 방법론적 고찰,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관계 등 ― 에 걸쳐 실로 거대한 지적 유산을 남겼다. 총 3부 43권(실제로는 54권)으로 구성된 『막스 베버 전집』(Max Weber-Gesamtausgabe)은 1984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해 2020년 완간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하며 해박한 지식과 투철한 분석력으로 법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종교학·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예리한 현실감각으로 당시 뒤처져 있던 독일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고 근대화에 힘썼다. 그의 업적은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가치 자유(몰가치성)의 정신과 이념형 조작이 뒷받침된 사회과학 방법론의 확립, 종교적 이념과 에토스(사회적인 습관)의 역사 형성력에 입각한 유물사관 비판, 근대 서구세계에 일관되게 흐르는 합리화와 관료적 지배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지적 등이다. 베버의 학설은 사회과학에 광범한 영향을 끼쳤으며, 가치 자유, 이념형적 파악, 이해적 방법에 바탕을 둔 이론은 독일 역사학파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한편 그의 행위론이나 관료제론, 종교사회학적 연구는 마르크스 이론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 의의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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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남석
그는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서울로 이주하여 평범한 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부침의 시간은 그를 순진한 소년으로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두발 자유화'와 '학원 자율화'의 함성, '87 민주 대항쟁'을 경험하면서 점점 성숙한 청년이 되어갔다. 동국대학교에 입학해 80년대 대학 문화의 대표 주자인 민속극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문화 일반과 전통 문화를 이해했고, 사회와 정치의 부조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이 시작되던 무렵, 학교 가는 길에 학생들은 온데간데없고 전경들만이 학교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 때문일까.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 끝에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사상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서는 학생회 활동도 하고 여러 선후배와 인문사회과학연구회를 결성해 학문 간의 벽을 헐고자 노력했다. 한국정치연구회에도 가입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과 해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 소외와 해방을 연구했다.

박사학위 논문「기술, 지배, 이데올로기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는 유연생산 시대에 기술이 왜 지배 역할을 하며 실업을 불러오는가, 그리고 기술의 지배적 성격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가 등에 대해 논했다.

하버마스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 의식의 원류를 찾아가다 베버를 연구하게 되었다. 2년 넘게 합리성이 왜 지배로 작동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으로, 베버, 루카치, 비판 이론, 하버마스 등을 공동 연구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에 관한 일고찰」이라는 글을 통해, 하버마스와 베버의 연관성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동국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사상, 정치 철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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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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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9.7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9.5만자, 약 2.9만 단어, A4 약 60쪽 ?
ISBN13
9788970139685
KC인증

책 속으로

'군주제 정부' 라는 꼬리표에서, 관료가 승진해 국가의 최고위직을 차지한다든지 또는 궁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자가 마찬가지로 최고위직을 차지한다면, 그리고 무기력한 의회가 이러한 정부 구성 방식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상황은 전적으로 달라진다. 또한 의회제 투쟁의 내부에서는 당연히 실질적인 이슈 이외에 개인적인 권력에 대한 공명심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하위직 형태와 방향에서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890년 이후 독일에서 추구되었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유권자들의 지역 경제의 사적인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것 외에 미관말직 하위 정실 인사가 정당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제국 수상 뵐로브와 중앙당의 갈등은 실질적인 의견 대립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중앙당으로부터 모든 관직 정실 인사를 박탈하려는 당시 수상의 시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시도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국가 관청의 인적 구성에 현저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수당은 프로이센에서 관직 독점권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특혜가 사라질 것 같으면 '혁명' 이라는 유령으로 군주를 위협하려 들었다. 그러나 중앙당에 의해 국가 관직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배제당한 정당들은 도시 행정과 의료 행정에서 보상을 얻고자 했으며, 과거 사회민주당처럼 의회내에서 국가에 적대적이거나 이질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당연하다. 모든 정당은 권력 그 자체, 즉 행정 참여와 관직 임용에 영향을 미치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지배 계층은 다른 모든 국가의 지배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관직 사냥과 정실 인사가 무대 뒤에서 행해지고, 개인적인 일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하위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의 지배 계층은 그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관료는 통제도 받지 않은 채 권력을 행사하며, 그 대가로 지배 정당에게 미관말직 정실 인사권을 필수 사례비로 제공한다. 이것은 의회 내에서 다수를 형성하는 정당이 정부에 반대하거나 찬성할 경우 책임져야 할 가장 높은 정치적 지위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자명한 결과이다.

---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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