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비판과 정명
리영희의 언론 사상 양장
최영묵
한울아카데미 2015.12.04.
베스트
주제로 읽는 역사 top100 1주
가격
39,500
39,500
YES포인트?
1,180원 (3%)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제1장/리영희의 영향

제2장/불퇴전의 삶

1. 식민지의 소년
2. 포화 속의 청년
3. ‘독종’ 기자 리영희
4. 학교로 간 ‘언관’
5. 실천하는 ‘자유인’

제3장/우상 타파와 반전 평화
1. 저술 활동과 수난
2. 언론과 대중문화 비판
3. 냉전 체제와 반공 정권
4. 베트남전쟁과 중국 혁명
5. 민족과 탈식민
6. 남북 관계와 통일
7. 반전·반핵과 인류평화
8. ‘소품체’ 산문의 미학

제4장/사상, 계몽과 해방
1. 영향 관계
2. 인간 해방의 논리

제5장/언론 사상과 언론 실천
1. 지식인
2. 비판
3. 정명

제6장/리영희, ‘오래된 미래’
1. ‘생각 없음’을 생각하라
2. ‘전략’을 세우고 현장으로 가라
3. ‘경계’에서 성찰하라

부록
1. 농사꾼 임 군에게 보내는 편지
2. 크리스찬 박 군에게
3. ≪창작과비평≫과 나
4. 리영희 그 독한 기자 정신의 역정
5. 리영희 선생에게서 듣는 무위당의 삶과 사상

저자 소개 1

崔榮默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부 교수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리영희 선생의 지도로 석사 학위(‘민중언론사 연구’, 1988)와 박사 학위(‘방송공익성 연구’, 1996)를 취득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방송진흥원에서 근무했고, 2001년 이후 성공회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방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국회미디어발전위원회 위원, 대통령선거방송 심의위원, 언론정보학회 총무이사, 한국방송학회 방송법제 연구회장, KBS 이사(2012~2015)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역서로는 『언론과 민주주의』(1995, 공역), 『방송 공익성에 관한 연구』(1997), 『텔레비전 화면깨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부 교수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리영희 선생의 지도로 석사 학위(‘민중언론사 연구’, 1988)와 박사 학위(‘방송공익성 연구’, 1996)를 취득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방송진흥원에서 근무했고, 2001년 이후 성공회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방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국회미디어발전위원회 위원, 대통령선거방송 심의위원, 언론정보학회 총무이사, 한국방송학회 방송법제 연구회장, KBS 이사(2012~2015)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역서로는 『언론과 민주주의』(1995, 공역), 『방송 공익성에 관한 연구』(1997), 『텔레비전 화면깨기』(2003, 공저), 『시민미디어론』(2005), 『대중문화와 문화산업』(2006, 공저), 『한국방송정책론』(2010), 『공영방송의 이해』(2012, 공저) 등이 있다.

최영묵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수상내역 및 미디어 추천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812g | 153*224*30mm
ISBN13
9788946058545

책 속으로

리 선생은 틈만 나면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리영희가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당연히 진실은 사실들(facts)의 덩어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군 신화나 고구려 또는 신라의 건국 신화, 에밀레종 설화의 구체적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 시대의 신화나 설화가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의 사실(fact)은 누군가가 인식한 현실의 작은 조각에 불과할 수 있다. (중략) 가령 많은 사람이 ‘광주 학살’은 미국의 묵인 속에 전두환 일당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이 발포 명령을 했다는 사실을 알거나 전두환이 광주 현장에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리영희 선생은 ‘진실’을 알기 위해 공부에 헌신했고, 알게 된 진실을 알리는 데 자신의 존재를 다 던졌다. 취재와 공부를 통해 알게 된 지식·정보의 집적이자 그 관계의 통찰에서 나오는 ‘총체적 앎’이 리영희 선생이 생각하는 진실이었다. --- pp.24-25

리 선생님이 말년에 자연인으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특정 권력자나 언론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아니라 양심과 상식을 공유하는 시민이 직접 나설 때 역사가, 그리고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리영희의 삶은 해방과 전쟁, 독재 정권과 4·19 혁명, 군사 쿠데타와 공포정치, 신군부와 광주 학살,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문민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자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권력의 탄압과 인신구속 같은 반복된 수난은 오히려 리 선생의 언론인, 지식인으로서의 실천 활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업이 바뀌고 직장이 달라졌지만 정론 직필의 기자, 우상 타파와 이데올로기 비판의 ‘전사’로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 pp.78-79

리 선생은 1970년대 중반까지 주로 베트남전쟁이나 중국 혁명, 국제 관계에 대해 글을 썼고 국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언론이나 문화 관련 에세이를 썼다. 1970년대 말 『우상과 이성』 등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상고이유서?를 쓴 후 국내 반공주의의 문제에 관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중략) 리 선생은 1989년 4월 ≪한겨레신문≫ 방북 취재 기획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9월에 풀려난다. 취재를 하러 북한에 간 것도 아니고 취재 계획을 세운 것을 문제 삼아 리 선생을 구속한 것이다. 리 선생은 특유의 탄탄한 논리를 앞세워 ‘국가보안법 전문(前文)의 대전제’를 진실 검증대에 세운다. 리 선생이 세운 진실 검증 기준은 다음과 같다. 휴전선 이북 지역의 정치적 성격, 승계 국가 여부, 유엔 결의 ‘유일 합법 정부’ 해석 문제, 유엔 결의의 ‘권고 사항’, 북한의 ‘국가’ 자격 문제, 북한 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 유무 문제, 6·25 전쟁 휴전협정의 조인 당사자 지위 문제, ‘7·4 남북공동성명’의 상호 국가승인, 김일성 (국가) 주석 호칭의 공식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남한 행정권 지역 제한 규정 등이다. --- pp.126-130

리 선생은 정권 변화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한 권력 작용에 대해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리 선생은 다른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달리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기에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정치권 일각에서 리 선생을 KBS 이사장으로 모시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예 정치권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진정한 자유인이자 독립적인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권력의 장에 철저하게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평생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 p.141

리 선생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학생 시절 해방을 맞았고 이후 전쟁, 분단, 독재 정권의 시대를 살았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한국인의 일상적 삶을 근원적으로 속박하고 있는 것이 식민성과 제국주의 지배 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리 선생은 일본과 미국 두 제국주의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자주적으로 민족 정통성을 세울 수 있을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탈식민 문제는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의 새로운 화두이기도 하다. 디지털, 인터넷, 모바일로 이어지는 21세기 신자유주의 네트워크는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철저하게 편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의 ‘자발적 식민화’라고 할 수 있다. --- p.190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리 선생을 ‘휴머니스트’라고 하는 이유는 거의 모든 글의 저류에 ‘인간’이라는 주제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과 핵무기는 인간을 말살하는 집단 범죄행위의 정점이다. 동족상잔의 현장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겪은 전쟁의 참상과 반인간성은 평생 리 선생을 반전주의자로 살게 한 원체험이었다. (중략) 리 선생의 생각은 이렇다. 무지란 핵 기술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땅에 남의 핵무기가 들어와 있으면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무식함이다. 무감각하게 된 것은 수십 년간 언론의 ‘냉전·반공 세뇌’의 결과다. 소위 언론이라 ‘참칭하는’ 매체들이 미국 정부와 군사정권의 말만 주입해왔기 때문이다. 그 ‘세뇌’의 결과 한국인은 핵 문제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한반도가 강대국 핵전략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데도 아무런 자각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세 가지 과한 것은 미국의 이성과 호의에 대한 과신, 원자로 같은 초정밀 기계는 안전할 것이라는 과신, 그리고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의 우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과신이다. --- pp.225-235

리영희는 뛰어난 문장가다. 리영희의 책이 널리 읽혔던 이유 중 하나는 글이 쉽고 탄탄한 구성을 통해 흡입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루쉰과 마오쩌둥의 문장론에서 민중을 위해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리 선생은 특히 루쉰의 ‘잡문’을 좋아했다. 리 선생은 격식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소설과 수필, 논문과 신문 기사를 크게 구애받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썼다. (중략) 리영희 작가의 작품 중 그 문학성과 문체에 주목해볼 만한 글로 ?전장과 인간?, ?D 검사와 이 교수의 하루?, ?키스 앤드 굿바이?를 꼽을 수 있다. ?전장과 인간?이 한 편의 실감나는 전쟁 다큐멘터리라면 뒤에 두 편은 탄탄하게 구성된 소설이다. ?전장과 인간?은 청년 리영희가 전쟁을 체험하면서 엄혹한 세상에 대해 눈을 떠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리영희식 ‘성장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서로 바쁜 시간에 쫓겨 차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자식들에게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살아온 모습을 숨김없이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 pp.257-260

리 선생의 삶은 늘 긴장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본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시대가 그러했고 그러한 ‘운명’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권력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에서 통일 문제까지 리 선생이 계속 글을 써온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사상과 표현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베트남, 중국, 미국 등 어느 나라의 이야기를 하던 그 자체가 한국 현실의 이해관계의 환기이고 현실 권력의 모순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리영희는 자신의 글쓰기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회피하는 법이 없었고, 야만과 허위가 지배하는 사회 조건 속에 자신을 내던진 것을 보람으로 느끼며 살았다. --- pp.313-326

순응자나 질문자와 달리 자신이 살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나의 문제(problem)’로 인식하고 이와 대결하는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지적 해명에 만족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시대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였기 때문에 방관자가 될 수 없었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삶도 부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리 선생이 평생 싸웠던 헛것, 허위의식, 어둑서니들로는 냉전·반공이데올로기,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한미 혈맹론, 국수주의, 기독교 유일신교리, 물신주의, ‘자유민주주의’, 제복과 유행, 지식인의 기회주의, 남한 유일 합법 정부론, 핵무기 신앙, 북한 전쟁 능력 우위론, 충효 사상, 지역차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리영희는 온갖 거짓으로 꾸며진 권력과 지식, 그리고 상식, 철학, 학문, 신앙, 교육, 언론매체들이 이런 어둑서니들로서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정리하자면 리 선생이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조건반사적인 토끼’가 되어버린 인간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고, 허위란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부정된 진리’를 회복하는 일이며, 결국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일이다. --- pp.355-359

리영희의 자기비판과 성찰은 늘 준엄했다. 리영희 휴머니즘의 핵심은 자유인이다. 리영희에게 자유인이란 우선 무지와 몽매,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며, 나아가 온갖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을 말한다. 자유인은 변화하는 세상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학습해야 한다. (중략) 리영희는 평생 동안 ‘공부’하고 반성하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삼았다. 자기가 해온 이야기가 동굴 속의 ‘독백’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신이 신뢰했던 이성이라는 것이 허상은 아니었는지, 지성으로써 인간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지, 자신이 또 다른 ‘우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가족보다 사회를 늘 중시한 자신의 태도가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지 등, 그의 성찰과 반성, 자기비판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리영희는 늘 ‘현재의 리영희’로 존재하는 것이다. --- pp.365-366쪽

준엄한 자기반성과 가혹한 성찰은 리 선생이 생각하는 자유인의 기본 조건이다. 자유인이란 우선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된 인간이고 나아가 온갖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을 말한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세상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학습해야 한다. 리 선생은 일상생활에서도 사물의 어떤 하나도 그냥 방관하거나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술집에 걸린 족자 따위도 반드시 읽어본 다음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리 선생이 까다롭고 독해보였던 것은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성실성과 엄격성, 자기반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부단한 성찰로 자신의 주어진 조건을 회의하고 극복해야만 모든 인연, 조직, 집단,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쳐 자유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구애됨 없이, 각 주장과 이해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 진리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리 선생의 신념이었다.

--- p.396

출판사 리뷰

사상의 은사, 리영희
혼돈의 시대에 독야청청했던 지식인의 기운을 담다


광복부터 민주화에 이르는 역사는 이 땅의 지식인과 언론인 들에게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국가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매몰되어 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탄압했고, 그 속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유혹과 위협에 노출되었다. 그 어두웠던 시대에 리영희 선생은 독야청청 우뚝 선 한 그루 소나무 같은 지식인이었다.

일신을 보전하기 위해 입을 다물거나 아예 시류에 영합해 변절하는 지성인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그 암담한 시대에, 리영희는 기자, 교수, 작가로 활동하며 지배 권력과 지식인,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강직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의 매서운 붓은 기득권의 탄압을 받아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 때도 꺾이지 않았고, 병환이 닥쳐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도 멈추지 않았다. 반공 정권, 언론, 북한과 중국, 베트남전쟁, 대중문화 등 나라 안팎의 굵직한 주제들, 그러나 좀처럼 그 실체를 규정하기 어려웠던 주제들은 리영희의 손과 혀를 통해 비로소 본모습을 조금씩 드러냈다.

리영희가 떠난 지금도 그를 둘러싼 논란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1980년 ≪르몽드(Le Monde)≫가 그에게 바친 ‘사상의 은사’라는 헌사는 지식인 리영희의 삶을 가장 훌륭하게 축약한 말로 기억될 것이다.

리영희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비판과 정명이 밑바탕이 된, 실천적 지식인의 무기


리영희 선생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글쓰기는 지식인의 눈을 가린 우상을 파괴하는 무기였으며 해방과 진보를 위한 창칼이었다. 그로 인해 온갖 수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지식’과 ‘진실’을 위해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론 냉철한 기자의 글로써, 때론 부드럽고 자유분방한 작가의 글로써, 반공주의 독재 정권의 실체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실상 등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바로 보게 했다. 리영희는 “어떤 권위나 권력, 지배로부터 독립적인 시민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하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지식이 억압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리영희 선생은 “사고하는 괴로움을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 시대의 우상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투명한 이성이란 존재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바야흐로 ‘혹독한 사고의 담금질’이 필요한 시기다.

우상이 진실을 은폐하며 이성의 작용을 마비시키려는 시기에 ‘진실’을 위한 글쓰기는 ‘목숨을 건’ 실천 행위일 수밖에 없다. 리 선생의 글쓰기는 ‘우상’의 본질, 본모습을 드러내는 수단인 동시에,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말살하려는 현실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리 선생은 그러한 글쓰기가 가져올 위험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글을 썼다. 그것이 기자, 지식인의 ‘본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_ 360쪽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한국에서는 독재가 끝나면 실낱같은 민주화의 희망이 피어나고, 그것이 다시 군홧발에 짓밟히는 역사가 반복되었다. 이 같은 엄혹한 시대에서 뚝심 있는 언론인, 지식인으로 살다 간 리영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그의 굳건한 신념과 실천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진실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고, 이를 통해 시대를 꿰뚫는 안목으로 스스로 ‘우상(偶像)’이라 이름 붙인 세상의 허구, 허상 들을 파헤쳤다. 만연하는 거짓을 폭로하는 일이 ‘비판(批判)’이라면, 혼란스럽게 뒤섞인 것들에 올바른 이름을 붙여서 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정명(正名)’이다. 비판과 정명은 비뚤어진 한국 현대사의 풍파와 맞서는 리영희만의 전략이자 힘이었다.

리영희가 그토록 탐구했던 한국 사회 안팎의 문제들은 지금도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현재에도 정치계에서는 친일파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북한과의 관계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대중문화는 여전히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을 담아내지 않는다.

이제 리영희는 없다. 그를 추모하며 눈물짓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지식인 리영희의 사상과 삶의 지향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리영희가 그토록 비판했던 우상은 오히려 그의 생전보다 더욱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하며 그들의 삶을 파탄에 몰아넣고 있다. 리영희가 남기고 간 비판과 정명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고인(故人)의 놀라운 통찰력과 심지 곧은 마음가짐, 불같은 행동력과 독특한 휴머니즘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 그의 발자취와 사상을 되짚는 책 『비판과 정명』은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와 굳힘 없는 실천의 길을 안내할 것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채널예스 기사1

  • '헬조선’ 시대, 진보란 무엇인가
    '헬조선’ 시대, 진보란 무엇인가
    2016.01.05.
    기사 이동
39,500
1 3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