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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6
인연-10 아비규환-21 동침-33 지옥 문고리-57 미안해-69 산 놈, 죽은 놈-88 잡초의 추억-120 의로운 도둑-143 몽상의 늪-152 배신자-192 반딧불-216 유혹은 어디까지-234 목숨의 한계-246 사랑의 증거-256 설움-264 결혼-295 공동 변기-310 복수-323 노리개-334 잊힐 리야-345 악마의 굴-359 흩날린 꿈-386 어디로 가나-404 두견새-418 에필로그 - 흰 구름-430 글을 마치며-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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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열차 지붕 위에 올라 아래에서 선희가 올려 보내는 짐들을 노끈으로 묶어 끌어올렸다. 열차 안 공기를 뽑아 올리는 기둥처럼 박힌 둥그런 관 형식의 환풍기 통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가 있었다. 밤에 열차가 달릴 때 혹시 저도 모르는 잠결에 몸을 움직여 열차 지붕 위에서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였다. 환풍기 통에 두터운 끈
으로 나와 선희, 짐을 함께 연결해 묶어 놓았다. ‘설사 잠든다 해도 떨어져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떠날 때 어깨 위에서 발까지 닿는 사각형 모양의 비닐박막을 비옷처럼 온몸을 뒤집어쓰고 앉았다. 그래야만 달리는 열차 밤바람에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60 나는 멀쩡한 발을 곡괭이 날로 내리찍어 상처를 내어 절뚝거리며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탈출 작전을 시작했다. 다음 번 상처를 낼 대상은 손이었다. 오른손을 벽돌 위에 올려놓았다. 입에는 타월수건이 물려 있었다. 준비를 끝내고 왼손으로 벽돌을 들어 몇 번 힘껏 내리쳤다. 손가락 잔뼈가 우개 졌다. 언젠가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일부러 상처를 내고는 치료 핑계로 갱 막장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솜털 이 뽀시시 애티를 벗지 못했던 10대의 어린 청년은 피를 뿌리고 뼈를 바수는 따위의 모험을 택했다. --- p.136 흥분이 절정에 달한 청년의 욕구를 채우는 일은 나에게 두 다리가 찢겨 나가는 아픔이었다. 그 고통은 굶주린 야수의 송곳니에 물린 여인이 체험할 수 있는 숙명적인 운명이기도 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 하다’고 한다. 정권이 있고 나라가 있는 북조선 여성들은 중국 남자들에게 개가 아닌 벌레보다 못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노예로 순종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북조선 에서 태어난 죄로 당해야 하는 치욕의 서러움이 눈물로 변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p.275 나는 석 달 가까이 되자 하반신의 신경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실신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헛소리를 치는 등 정상이 아님을 직감한 콧수염은 당분간 남자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한 것은 놈들이 나를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죽거나 잘못되면 돈벌이 기계가 없어지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콧수염네 가족에게 있어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콧수염들에게 성 노리개 몸종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나는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하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놈들은 나를 희생양으로 벌어들인 돈을 나누어 가지는 문제를 가지고 싸움이 붙었다. 집안의 돈을 모아 맏자식인 콧수염을 장가보낸다며 데려왔던 북조선 여성 ‘리선희’는 한족 동네의 네 것, 내 것 따로 없는 공동 변기가 되어 버렸다. --- p.320~321 나는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 하나하나를 사랑과 정으로 담아 오빠에게 부어주었다. 날이 밝고 밤이 새도록 한 몸이 되었다가는 지치면 눈물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잠시 쉬고 다시 한 몸이 되기를 반복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오빠의 한 부분이 아닌 오빠를 내 몸속에 넣고 싶었다. 나는 오빠의 품에 안겨 수많은 영혼의 조각상들을 온 넋과 힘을 모아 그려 보고 만들어 냈다. 가슴속에 진주 보석처럼 자리 잡은 그 소중한 추억들을 미련의 갈피마다 흔적으로 자국자국 남기며 우리는 2박 3일을 그렇게 보냈다. 너무도 고맙고 잊지 못할 오빠와 운명을 함께하고 싶었던 나는 마음의 꿈을 접어야 했다. --- p.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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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하면 굶주림, 질병, 독재, 처형 등 인간의 삶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비극적이고 어두운 면만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구촌 유일무이한 독재의 공포가 난무하는 땅,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삶 속에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있다. 암흑과 절망이 몰아치는 그 땅에도 사랑과 정이 오가고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감성적인 정신세계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소설 《선희》를 통해 전하려 한다. 경제 수치, 아사자, 인권 뉴스식의 차갑고 덩어리진 사실들이 아니라 한 남녀의 개인적 삶을 담담히 써내려갔다. 색채가 있고, 온기가 있는 ‘삶’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각각의 삶에 닮긴 이야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다. 친구의 얘기에, 드라마 속 스토리에 울고 웃는 것이 우리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념과 사상을 벗어던지고《선희》를 읽어주길 바란다. 각자가 소설 속 ‘원명’이 되고 ‘선희’가 되어 본다면 같은 인간으로서 그 상처의 깊이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 속에서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두 목소리가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 《선희》의 구성은 남자 주인공 ‘원명’과 여자 주인공 ‘선희’의 시점으로 나뉜다. 똑같은 일을 남녀의 시선으로 각각 해석하는 것이 아닌, 처량하고 애달픈 사랑을 두 남녀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명’은 발 디딜 틈도 없는 기차에서 여자를 만난다. 함께 장사를 하며 서로의 처지를 보듬어 가는 중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가정을 꾸리려 하지만 생계도 힘든 북한에서는 녹록지 않다. ‘선희’는 혼자 애쓰는 남자를 보며 돈을 벌기 위해 중국행을 택한다. 하지만 그곳은 그녀를 잡아 갈기갈기 찢어 먹으려하는 늑대 같은 인간들의 땅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에는 많은 상처가 담겨 있다. 독재 정권, 낙인, 가난, 인권, 인신매매, 자유에의 갈망 등…. 이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둘 다 놓지 못하는, 아니 놓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 두 남녀의 시선 어느 곳에서도 빠지지 않는 절망 속의 사랑, 그 연결고리가 애달프지만 가슴 벅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