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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_007
신호 대기 _029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_055 유령의 집 _087 추석 전야 _119 간빙기의 밤 _151 먼산에 내리는 눈 _173 방학식 _191 거리의 마술사 _225 크리스마스 포커 _257 리와인드 _271 커피잔은 어떻게 해서 깨어지는가? _307 해설 | 권희철(문학평론가)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_317 작가의 말 _346 |
김종옥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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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녀와 헤어지던 날 같다.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해야 할 말 같은 건 없는 것이다. 다음번이 없을 때, 말이란 언제나 무용해진다.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중에서
나는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일은,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을 나는 언제나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중에서 내가 두려운 건 끝을 보는 거였다. 그녀가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거였다. 내게는 그냥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적당했다. 그냥 내가 싫어졌을 뿐이다. 거기에 다른 이유는 없어야 했다. 사랑이 시작되는 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끝나는 데도 이유가 없다. 그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곳에서 결정되는 일이어야 했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중에서 우리는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우리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이 뭔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것을 생각할 때, 그 무한한 일들을 떠올려볼 때, 나는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볼 때처럼. 아무도 저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는 없다. 아예 길이란 게 없으니까 말이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삶 속에서 죽음을 살죠. 그 사람은 삶 속에서 죽음을 봐요. 그러나 남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애는 죽음 속에서 삶을 보는 애였죠. ---「거리의 마술사」 중에서 이미 모든 게 일그러진 상태여서 나는 그 일그러짐에 익숙해지고 싶었고, 어쩌면 일그러진 대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로. ---「리와인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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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은 ‘기억’을 통해서일 것이다
김종옥식 기억술의 시작 김종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삶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주장하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향해 차분히 귀를 내어주는 것, 그것에서부터 김종옥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니 「거리의 마술사」의 미덕이, 단순히 문제적인 사회현상을 소설 안으로 끌어당겨온 것에서 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평소 왕따를 당해온 한 학생이 학교 창문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남겨진 자의 시선에 소설의 빛나는 힘이 담겨 있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던 끝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잠시나마 공중에 뜨는’, 일종의 ‘마술’을 시도했다는 것. 이렇게 사건을 재구성하기까지 남겨진 자는 세심하게 지난날을 되짚어가며 언젠가 그가 해줬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는데, 그 섬세한 기억술이 이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준 또하나의 마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김종옥식 기억술은 이후 발표되는 작품에서 방향을 비틀며 더욱 깊어진다. 가령, 형의 결혼식날, 미용실이며 결혼식장, 김포공항까지 형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아침부터 여기저기 끌려다닐 때,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은 과거 옛 애인들과 나누었던 대화, 장면들과 포개어진다.(「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또는 신호 대기에 걸려 차를 멈췄을 때 ‘나’가 길 건너편으로 본 것은 ‘좁고 긴 골목’이지만, 그 골목이 불러오는 것은 지금은 헤어진 여자와 함께 거닐었던 봄날의 길이다.(「신호 대기」) 그리고 소설 속 화자는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그때는 그저 흘려보냈던 여자의 눈빛에, 표정에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니 김종옥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공통의 보폭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질주도, 계속 한자리에 머무르는 멈춤도 아닌, 천천히 걸어나가는 산책의 리듬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현재가 아니라 스쳐지나갔던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되비춘다. 김종옥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며 기억을 통해 우리가 한번 더 살아갈 때만이, 놓쳐버렸던 진실에 얼핏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우리가 헤어진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 때문일 거라고.” ‘하지 않은 일’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과천행 버스! 충만한 삶,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회상이 우리를 ‘그곳에 없는 장소’로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삶을 아주 조금 되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되찾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것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음을 혹은 있을 수도 있었음을 증언해주기 때문이다. 이 시시하고 맥빠진 것처럼 보이는 연애담들이 현명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유혹의 손짓에 넘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들 각자의 과천행 버스를 타는 일이며, 우리들 각자가 신의 셈법에 동참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저마다의 삶을 보충할 수 있게끔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_권희철(문학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의 ‘나’는 문득 버스정류장에 모여 있는 여학생들을 보며 그들과 비슷한 시절을 거쳤을 옛 애인들을 떠올린다. 그 옛 애인들이란 과천에 산 적이 있거나 언젠가 과천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다. 촘촘하고 구체적인 연결고리 없이, 다만 쏟아지는 기억을 어찌할 수 없다는 듯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회상하는 이 남자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 심지어는 지나오지 않았던 시간’까지 되돌아가며 무심히 놓쳐버린 장면과 재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란, 단순히 우리가 했던 것들을 또렷이 떠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것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처럼, 우리가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그래서 놓쳐버렸던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하나하나 더듬어나가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김종옥 소설이,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따라붙기 마련인 감정의 분출이나 적극적인 액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회상 속에서만이 놓쳐버렸던 것이 조금이나마 다시 찾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고루 갖춘 이 젊은 소설가가 이끄는 과천행 버스에 올라타는 일일 것이다. 저마다의 과천행 버스에 올라탐과 동시에 우리는 지나왔던 삶을 한번 더 반복하게 된다. 그때와는 조금 달라진 방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