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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전투의 국제화
국가권력을 둘러싼 엘리트들의 경쟁과 지식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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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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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I부 국가권력 장(場) 내부의 제국주의적·전문적 전략

1_ 서론
연구 전략│문제의식│책의 구성
2_ 국가 재편을 위한 국가 엘리트의 재구성: 유럽 법률문화의 상속자로부터 미국에서 양성된 테크노폴로
법조계의 유력 정치가들│아르헨티나: 국가 없이 경쟁하는 국제 엘리트│멕시코의 분할된 엘리트│민주주의로 치장한 시카고 보이스│반대 모델들
3_ 궁정전투의 국제화
국가 내부와 외부의 국제적인 학문 전략│군사적이고 반동적인 뉴딜│매판 법률가들: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비대칭적인 달러화│경제학의 달러화│사업법의 복합화│인권과 도덕의 유출│비대칭적인 거버넌스

II부 도전받는 헤게모니: 동맹세력의 구축, 개혁주의 전략의 냉전적 기원

4_ 새로운 보편성의 고고학: 인권의 냉전적 구성과 그 후의 변천
대(大) 법률원칙 지형에서의 반격│전문 엘리트 대연합의 구축│저명인사 모델의 신성화와 위기│박애주의의 전문화와 정치화│국제사면위원회: 시민적 미덕의 엘리트에서 대중 전문기관으로
5_ 아웃사이더로서의 ‘시카고 보이스’: 반혁명의 구성과 수출
금융가에게 봉사하는 수학자들│이데올로기적 반혁명을 위한 매스미디어 전략들│열세에 놓인 세계화의 관료들│지배자 내부의 피지배자│워싱턴 기관들의 찬란한 망명│발전의 선교사에서 머니 닥터로│금융 세계화의 후배들
6_ 다원주의와 개혁의 전파
브라질에서 경제의 전문화와 국제화│사회과학의 자율성 구축│법률교육 개혁: 보다 덜 성공한 시도
7_ 상징적 제국주의의 역설: 근대성의 폭발적인 실험실, 라틴아메리카
칠레: 수입된 경쟁의 격화에서 내전으로│아르헨티나: 포스트모던 국가의 당파적인 싱크탱크

III부 경쟁하는 보편성: 북미와 남미에서 신자유주의의 대칭적 구성

8_ 권력 외부의 개혁적 이스태블리시먼트: 대안적 정치 전략으로서 인권에 대한 투자
전문화와 증가된 미디어 전략의 지배│박애주의의 정치화와 ‘아이디어 시장’의 구축│도덕 자본가에서 벤처 자본가로
9_ 대립에서 협력으로: 새로운 보편성의 국내적 생산과 국제적 인정
피노체트의 시카고 보이스: 경제학자, 금융가, 사업 변호사들의 반혁명 동맹│인권의 국제적 발명:인권의 국제적 실험장으로서 칠레교회│국가 합의의 국제적 형성:경기장에서 세미나실로│브라질:법률권력 장의 복원과 파편화│아르헨티나의 인권을 둘러싼 국제화된 전투

IV부 국제기구의 재형성과 법률의 수출

10_ 파편화된 거버넌스: 국제기구와 국가 전문성의 재형성을 위한 워싱턴의 아젠다
국제 인권운동의 전문화│‘이윤추구 정부’의 폐기에서 ‘친시장적 민주국가’의 재정의로│세계은행의 신경제학자들│비교정치경제: 교조주의의 패러독스│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테크노크라트에서 테크노폴로│반개혁적 동맹, 미주협의체│조심스러운 결론
11_ 하향식의 참여적 발전: 인도주의적 시장 헤게모니의 구축과 세계화의 사회적 폭력을 막기 위한 시도
세계은행을 활용한 환경운동│세계은행의 사업에 우호적인 NGO들│폭력을 억제하기 위한 엘리트 전략
12_ 기회주의적인 제도의 건설자, 매판 법률가들
외국인의 법률 영역: 멕시코의 외국인 법률회사│몬테레이, 알파, 그리고 기업에 소속된 변호사들의 성공│NAFTA의 변호사들│선거법정과 부패에 대항한 전쟁
13_ 법원을 둘러싼 개혁주의 전략들
두 개의 층위를 가진 법률구조 안에서 열세에 처한 사법권력│위장된 자율성│사법 포럼의 실패│멕시코: 인권운동에서 국가 내부의 인권기관으로│아르헨티나의 유산된 법원개혁│대안적 분쟁 해결 모델의 수입
14_ 불완전한 이식의 논리

후주
참고문헌
주요 국가 연보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이브 드잘레이 / 브라이언트 가스
드잘레이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사회학과 교수이며, 파리인간학연구소(Maison des Sciences L’Homme)와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연구주임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현장 인터뷰를 수행하고 있는 그는 특수한 전문 지식이 국제적으로 보편성과 정당성을 획득하고, 세계 각지로 전파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로 『Marchands de droit』(1992)가 있다. 가스는 미국변호사재단(ABF) 이사이며,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학장이다.

드잘레이와 가스의 공저로는 『Dealing in Virtue:International Arbitr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a Transnational Legal Order』(1996) 등이 있으며, 『Global Prescriptions:The Production, Exportation, and Importation of a New Legal Orthodoxy』(2002)를 공동 편집했다.
역자 : 김성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10대학(낭테르) 정치학 석사, 동 대학 비교정치 및 정치사회학 DEA, 파리정치연구소(IEP de Paris) 국제관계 박사과정을 거쳐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제3섹터 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고속철도계약을 둘러싼 경제외교 : 거대 국제계약의 사회학」, 「미국 민주주의 재단(NED)을 통해 본 국제민주화운동과 상징권력」, 「구조개혁과 엘리트 충원을 통해 본 프랑스 경제외교」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28쪽 | 750g | 153*224*35mm
ISBN13
9788976829740

출판사 리뷰

미국에서 양성된 남미의 경제학 엘리트

이 책은 국가를 움직이는 전문 지식이 유럽 중심의 법률에서 미국 중심의 경제학으로 이동하는 구조적인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냉전 이후에 나타나는 이 변화의 다양한 과정 중 이 책의 관심 부분은 미국의 국제전략과 각국 엘리트들의 미국 지식 습득(유학과 국제기관 활동)을 통한 권력투쟁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남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국제개발처(USAID), ‘진보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Progress), 포드재단, ‘법과 발전’(law and development) 등 여러 기관과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한편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 경제학계는 케인스주의적 발전 논리에서 점차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 시카고대학은 수많은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이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남미의 엘리트들이 경제 전문성을 습득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고, 이와 아울러 세계경제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던 세계은행과 포드재단 같은 거대 박애주의 재단에 주목하고 있다.

①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
시카고대학 경제학자들이 열세에 있을 당시, 그들은 공화당 소수 보수주의자들과 연합하면서 국제전략을 추구하였다. 그 중 남미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놀드 하버거(Arnold Harberger) 등의 시카고 경제학자들이 국제개발처와 거대 재단들을 활용해 산티아고 가톨릭대학에 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가톨릭대학 경제학도들은 시카고대학으로 건너가 ‘최신의’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칠레의 악명 높은 군부 독재자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을 때 이 그룹(시카고 보이스)은 피노체트 정권과 연합할 수 있었다. 칠레 군부는 시카고 보이스가 제공한 아젠다를 통해 옛 엘리트들을 효과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었고, 시카고 보이스는 새롭게 국가 경제정책을 좌우할 핵심 위치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카고대학에서 유학한 경험과 경제 전문성을 바탕으로 군부가 갖지 못한 (미국 친화적인) 정치적 정당성과 경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엘리트들은 국가개입의 축소, 민영화 등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칠레 경제를 이끌었다.

② 브라질의 신세대 경제학자들
브라질에서 미국에 토대를 둔 경제학의 발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은행에 관련되어 있는 (브라질과 미국의) 공동위원회와 국제연합이 설립한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CEPAL)가 중심이었다. 공동위원회를 통해 성장한 국가경제발전은행(BNDE)과 거대 공기업들은 1950년대 브라질의 발전정책을 이끌었고, 셀수 푸르타두(Celso Furtado)가 이끄는 구조주의 경제학은 CEPAL과 협력하여 브라질 경제정책을 세웠다. 그러나 1964년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새롭게 부상하던 경제학 엘리트들은 기세가 꺾이고, 1980년대 외채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델핑 네투(Antonio Delfim Netto)가 이끄는 경제학자 그룹(일명 델핑 보이스)이 제한적으로 군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브라질에서 경제학 엘리트들이 급부상하는 계기는 1970년대 말 해외 유학파 경제학자들이 국내에 복귀하면서 시작되었다. 페드루 말랑(Pedro Malan)과 디오니지우 카르네이루(Dionisio Carneiro) 등은 포드재단으로부터 재정 지원으로 받아 리우데자네이루 가톨릭대학에 경제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들 신세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엘리트들의 양성을 위해 미국 유학을 추진하는 한편, 국내에서 미국 지향적인 경제학을 중심에 놓기 위해 노력했다. 외채위기 이후 그들은 그들이 맺고 있는 국제적인 인맥과 미국 경제학의 투자, 경제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들은 브라질에 탈규제와 민영화, 해외투자 개방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국가 통치의 핵심 행위자에 오르게 되었다.

③ 경제학의 ‘달러화’(dollarization)
이와 같이 남미의 경제학 엘리트들은 미국에서 생산된 ‘국제적인 전문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국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미국 달러의 변동에 자국의 환율을 자동으로 연동시키는 남미 국가들의 환율정책에 빗대어 ‘달러화’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남미의 경제학 엘리트들은 마치 일반 상품의 소비자들이 국제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듯 국제적으로 인정된 지식을 수입해 자신들과 사회그룹의 논리로 활용하고, 국제시장의 변동에 맞추어 자신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조정하였다. 케인스주의와 발전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국내 궁정전투의 방법으로서 이 경제학들을 수입하여 1980년대 외채위기 이후 승리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국제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화한 법률 엘리트

부르디외에 따르면, 국가는 단순히 지배계급이나 제도·기관이 아니라 지배의 원칙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상징적 투쟁의 공간이다. 특히 법과 관련한 전문 지식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부터 현재까지도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것은 사법부와 경찰, 재무부와 조세기관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 전문성의 대표주자이다. 법의 지위는 냉전 시기에 이르러서도 그 위치가 흔들리지 않았지만, 기존의 엘리트들에 대항하여 새롭게 권력의 장에 진입하려는 법률 엘리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 법률 엘리트 역시 경제학 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지식’을 국내의 궁정전투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인권운동
남미의 법률 엘리트들은 대체로 법을 권력 외부의 소외된 사람들, 권력으로부터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 경력을 위해 투자했다. 그들은 주로 국가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정당에서 활동했다. 연고주의와 후견을 바탕으로 연합한 가족적인 이 전통 엘리트들은 인권 분야를 접근할 때도 정치적이거나 딜레탕트적인 목적을 두었다. 그들에게 ‘인권’은 운동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1973년 이후 피노체트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은 아옌데 그룹을 돕기 위해 칠레의 몇몇 법률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법률가 그룹은 칠레교회와 조우하고 법적 해결책을 찾는 한편, 칠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국제사면위원회와 접속하였다. 그들은 피노체트의 협력자들이 자신들이 전복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시카고 경제학을 활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국제 인권법을 활용했다. 미국 내에서도 냉전 세력이 분열된 후 젊은 정치인들과 포드재단이 인권운동가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남미의 인권운동가들은 권력을 획득하자 새로운 국가에 투자하기 위해 교회 같은 기관을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군부 독재 후 첫번째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된 라울 알폰신(Raul Alfonsin)은 인권운동의 배경을 바탕으로 국가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인권운동 경력이 그의 대통령 당선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다.
한편, 냉전시대의 인권운동이 이데올로기적이고 비교적 옛 엘리트들이 주도했다면, 현재의 인권운동은 신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 새로운 운동이 비록 새로운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거대 재단과 같은 국제적인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엘리트주의의 한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②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법률회사
멕시코의 법률회사들은 미국의 법률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국가 기관이나 옛 엘리트 가문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베이커앤보츠(Baker & Botts: 전직 미 국무차관의 지원으로 멕시코에 정착한 법률회사)와 같이 이들은 미국과 합동으로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면서 강한 유대를 형성했다.
이와 달리, 아르헨티나의 법률회사는 미국 지향적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졌고, 무엇보다 전통적인 가족 기업의 후예들이 설립했다. 이 법률 엘리트는 일찍부터 국제화되어 외국의 학위와 인맥을 활용했고, 국내로 돌아와 매판 역할을 했다. 이 엘리트의 능력은 아르헨티나의 사업체와 외국자본, 그리고 국가를 연결하는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군부 정권은 언제든 이들을 숙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국가의 외곽에 머물면서, 점점 상승하는 미국 전문성을 이용해 새로운 정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다.
19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는 이런 남미의 법률회사들이 미국 법률회사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역할을 했다. 남미의 법률 엘리트들은 협상의 영향력과 협상에서 획득한 외국의 노하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통해 국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남미의 사회자본과 미국의 법률자본 간의 연결을 바탕으로 법률개혁, 무역, 보험, 반독점 등과 같은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국내에서 지위를 높이고 있다.

국제적인 지식 네트워크 : ‘지식이전’의 국제정치학

① 지식이전의 핵심 전력,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0년 미국 정부와 IMF, 세계은행 등 워싱턴에 본부를 둔 다자간 협의체들이 어떠한 형태의 국가와 경제가 남미에 바람직할지 합의한 것을 지칭한다. 외환시장 개방과 시장 자유화, 관세 인하, 민영화,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을 골자로 하는 이 컨센서스의 방침은 1990년 전후 미국의 경제체제 확산 전략 중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남미의 경제학 엘리트들은 이 컨센서스를 받아들여 남미에 광범위하게 구축되도록 만들었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 MIT·하버드대학에서 맺은 우정관계와 미국 경제학 공동체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이들은 컨센서스가 주장하는 바를 남미에 실현하는 대표가 되었다.

② 지식이전의 선두자, ‘테크노폴’(technopols)
테크노폴은 국가정책의 실무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테크노크라트와는 달리 정치적인 영향력이 확대된 전문 엘리트들을 가리킨다. 멕시코의 페드로 아스페(Pedro Aspe), 에르미니오 블랑코(Herminio Blanco, NAFTA의 협상 대표단장), 에르네스토 세디요(Ernesto Zedillo, 1994~2000년 대통령), 브라질의 페드루 말랑(Pedro Malan),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카바요(Domingo Cavallo), 칠레의 알레한드로 폭슬레이(Alejandro Foxley)가 대표적이다. 주로 국가 경제와 관련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은 미국에서의 교육 경험과 국제 금융기관 등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간에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시각에서 국가와 경제문제를 접근한다.
살리나스 정권 때 대통령 재무보좌관을 지낸 페드로 아스페의 경우 시장개방, 인플레이션 억제, 민영화 등으로 멕시코의 급격한 경제 변동을 이끈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MIT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에서 살리나스를 만나 관계를 형성하였다. 아울러 그의 전문성은 MIT 재학 시절의 교수들과 유학 시절을 함께했던 카바요, 폭슬레이 등에 의해 신뢰받게 되었다. 이런 경제 전문성과 인맥을 통해, 그는 멕시코로 돌아온 1980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해 1988년 재무보좌관에 올라 멕시코의 향방을 결정한 것이다.
이렇듯 각국의 테크노폴들은 자신의 경력을 강화하고 모국의 정치인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국제적인 국가 전문성에 막대하게 투자했다. 그들은 “직업 활동에서 정치경제학을 실행하고 국내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여 경제학과 정치 간의 완벽한 접속을 보여준다.”(p.322)
이와 같이 국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전문성은 외형상 법률 지식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권과 사업법 등)과 경제학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각각의 나라들마다 식민지 이후의 역사가 다르고 지배 엘리트들이 국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국제적 지식이 영향을 미치는 국내 정치 상황이 다르다. 이 책은 이 미세한 결들을 특정한 장(場)에 소속된 개인의 사회적 여정과의 관련성 속에서 탐구함으로써 “국가권력과 지식이전”이라는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화된 일반론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사회그룹의 역사와 지식의 국제적인 지형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점차 국제적 지식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의 여러 그룹과 지식 엘리트들, 그리고 그들의 궁정전투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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