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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첫머리에 청사초롱 불 꺼지다 머슴새들 남편의 집 운니동 33번 길 돌에 차가운 글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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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내 막내딸아, 남편을 따라 죽는 열부도 효부도 되어서는 안 된다. 너는 오로지 나의 애중한 딸이다. 알아들었느냐?”
--- p.34 죽은 남편 이명인 못잖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은제는 웃음기를 물었다. 밤으로 피는 분꽃처럼 비밀스러운 웃음이었다. 주변 누구도 그 웃음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남편을 따라 죽는 열부의 길과 부모를 받드는 효녀의 길 그 두 갈래에서 은제는 주춤거린다. --- p.40 은제는 네, 하고 대답은 했지만 웅숭깊고 어두운 속내에서는 완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어떻게요?’ 하면서. --- p.41 “앞으로 너는 ‘충’도 아니요 ‘효’도 아닌 너 자신의 삶, 너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은제는 응대하지 않는다. 길 없는 길이다. 만제가 말한 여자의 그 길은 어디에도 없다. 효도 아니고 충도 아닌 나 자신의 삶, 나 자신의 길이라니. 은제는 사촌오라버니 만제가 어기뚱한 나라 풍습을 말한다 싶었으나 근접하기 어려운 미묘한 신선감을 느낀다. --- p.43 “임진왜란 때 조도사로 순직하신 홍세공 어른이 계시고 그 어른의 배필 고령 박 씨는 두 왕자를 지키다가 왜병에게 사절 당하셨지.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란 뜻으로 선조 임금께서 ‘홍문안洪門雁 집’이란 별칭을 내려 주셨단다.” --- p.44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포은이 송헌의 역성혁명에 반대했던 것은 고려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p.174 은제의 신변이 극도로 위태롭다. 절박하다. 이쯤 되면 제 목숨 스스로 끊을 수도 있을 터. 은제는 묵묵부답 생각에 잠긴다. 노쇠한 친정아버지는 물론 친정사촌오라버니 만제의 피가 마를 듯한 짐이 되어 구차스러운 삶을 지탱해야 하는가. “나는 끝까지 큰아버님을 돕고 너를 괴롭히는 완산 이씨 가문과 맞설 것이다. 준비는 완벽하다. 우리 홍씨 가문의 존폐 여부를 내걸고 각오 단단히 하는 거다. 네가 이 시점에서 포기하면 모든 혐의롤 고스란히 인정하는 모양새밖에 안 돼.” 만제는 수시로 불길한 예감에 눌리며 은제를 타일렀다. --- p.213 이 어리석은 아비는 그분의 업적과 충효만을 우러렀을 뿐 여아들, 우리 누이들의 불행을 외면했다는 말이 되는구나. 근래 명나라에 바치던 공물·공녀 건이 흐지부지된 것이 이 아비의 뼈아픈 반성도 한몫했음을 인정해 다오. --- p.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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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아내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었다?
근래 들어 쭉 역사 인물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는 한상윤 작가의 신작 『홍문안洪門雁 집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여인이라면 불합리한 것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에 자신의 운명에 맞서 주체적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는 남양南陽 홍씨洪氏 문중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완산 이씨 문중 맏아들 이명인은 남양 홍씨 가문 홍이원의 막내딸 홍은제와 백년가약을 맺은 날 밤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홍은제는 시댁에 들어간 후 시댁과 송사를 벌이게 되는데·····. 남양 홍씨 가문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시댁의 부당한 계략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우리가 조선시대의 여인에 관해 가져왔던 편견을 일순간에 깨뜨려 주는 인물이다. 작가는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소설로 펴냄으로써 지나간 선조들의 삶의 역정이 오늘의 현실과 썩 닮은꼴임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