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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聲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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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에서 일어선 견훤은 900년 완산성(전주)을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한다. 견훤보다 일 년 늦게 나라를 연 선종은 선정을 베풀어 명군 소리를 듣지만 연호를 수시로 바꾸고 신라에 대한 지나친 증오심을 보인다. 왕건은 선종의 명에 따라 해군대장군이 되어 나주 정벌에 나서 대승을 거두고 시중이 되어 쇠둘레로 돌아온다. 하지만 외로운 선종은 은부라는 간신에게 휘둘리고 설상가상 사냥 길에 머리를 다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데 왕건은 견훤이 수복을 노리는 나주를 방어하기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나주장군이 된 왕건이 능산, 금언 등 선종의 신하였던 명장들의 보필을 받으며 야전의 명수 견훤과 팽팽하게 대적하고 있는 동안 쇠둘레는 선종의 병증과 더불어 점점 더 어둠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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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시대에 통합의 리더십을 읽다
역사소설의 거장 김성한이 흠모한 군주 왕건 일대기. 김성한의 《왕건》은 한고조 유방을 능가하는 덕(德)의 인물 고려태조 왕건을 복원해 낸 최고의 작품이다. 당대의 경세가 선종과 걸출한 용장 견훤을 넘어 덕장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한 창업군주가 되기까지 세 영웅이 펼치는 서사극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 선종과 견훤도 작가의 붓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작품이 처음 선보였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선종과 견훤은 폭군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지만 작가는 이들 불운한 영웅에게도 남다른 애정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선종은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무장세력을 육성한 출중한 지도자로 되살아났다. 그는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 북반을 점령하여 독립왕국을 개창했으며 건국 직후 해군을 건설하여 견훤의 배후 나주를 틀어쥐는 전략가로 그려진다. 선종은 정신이상으로 자신이 건설한 것을 고스란히 왕건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선종의 기반 없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견훤도 기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당대의 용장이며 건실하게 나라를 경영하는 창업군주로 묘사된다. 왕건이 특유의 유연성으로 능소능대하다면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우직한 무장이었다. 특히 왕건과 견훤이 부딪치는 전투 장면들은 무장 견훤의 타고난 감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보여주었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 덕에 흥미가 배가되는 대목들이다.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 선악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낳은 산물이며 역사적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확 트인 시대, 거인들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 김성한 역사소설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다. 역사소설 처녀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인 작가는 《왕건》 연재시(동아일보) 옛날 여자들은 성(姓)만 남아 있고 이름이 없기에 소설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름을 창작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로 사실(史實)을 골격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건》 역시 자료 수집에 4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즉위 초기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던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무려 스물아홉 명에 이르는 아내를 두게 되었던 사정의 이해라든지, 비록 망해가는 나라이지만 천년사직의 정통성을 지닌 신라를 포섭하여 민심 잡기에 성공한 왕건의 2(고려+신라) 대 1(후백제) 전략 묘사 등은 사실(史實)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성한표 역사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난맥상과 겹쳐 혼란기로만 여겨지기 일쑤인 후삼국 시대를 이렇게 말했다. “모함으로 지새우던 조선왕조의 답답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라 말기에 등장한 선종, 왕건, 견훤 세 사람이 엮어낸 후삼국 시대의 확 트인 풍경은 어느 다른 세계의 일같이 속 시원한 느낌을 준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 이런 시대가 있었다. 천 년 전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대결하여 역사를 창조하던 이들 거인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는 고려는 유불선을 마음대로 믿고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연애하며 과부도 개가도 자유로운(《고려도경》) 열린 사회였다며 이렇게 열린 사회에서 개인의 재능이 발휘되고 세계적 명품인 고려청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통합의 지도자 왕건 일대기를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생각하는 동시에 고려시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