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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계원필경집 제11권

격서(檄書)
황소에게 보낸 격서〔檄黃巢書〕
조장의 귀순을 권한 글〔招趙璋書〕
제도에 군병의 징집을 고한 글〔告報諸道徵會軍兵書〕
제도에 고하여 강운을 재촉한 글〔告報諸道徵促綱運書〕

서(書)
절서 주보 사공에게 답한 글〔答浙西周司空書〕
강서 왕 상서에게 답한 글〔答江西王尙書書〕
서주 시보에게 답한 글〔答徐州時溥書〕
양양 극 장군에게 답한 글〔答襄陽?將軍書〕
절서 주보 사공에게 보낸 글〔浙西周寶司空書〕절서 호군 초 장군에게 보낸 글〔浙西護軍焦將軍書〕

계원필경집 제12권

위곡(委曲)
저주 허경에게 보낸 글〔?州許勍〕
소의 성린에게 보낸 글〔昭義成璘〕
여강 현령 이청에게 보낸 글〔廬江縣令李淸〕
회구진 이질에게 보낸 글〔淮口鎭李質〕
광주 이한지에게 보낸 글〔光州李罕之〕
초주와 수주에서 변경 방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장사에게 보낸 글〔楚壽兩州防秋廻戈將士〕
귀순군 손단에게 보낸 글〔歸順軍孫端〕
초주 장웅에게 보낸 글〔楚州張雄〕
초주 장의부에게 보낸 글〔楚州張義府〕
저주 허경에게 보낸 글〔?州許勍〕
수주 장고에게 보낸 글〔壽州張?〕
여주 양행민에게 보낸 글〔廬州楊行敏〕
화주 진언에게 보낸 글〔和州秦彦〕
노전에게 보낸 글〔盧傳〕
대로에게 보낸 글〔戴盧〕
광주 왕서에게 보낸 글〔光州王緖〕
초주 영전판관 기무빈에게 보낸 글〔楚州營田判官?毋?〕
운주 경원심에게 보낸 글〔?州耿元審〕
해릉진 고패에게 보낸 글〔海陵鎭高?〕
회구 이질에게 보낸 글〔淮口李質〕

계원필경집 제13권

거첩(擧牒)
묵칙을 행하여 산기상시에 제수한 글〔行墨勅授散騎常侍〕
우이 진장 추당에게 어사중승을 제수한 글〔授??鎭將鄒唐御史中丞〕
초주 자사 장웅에게 우무위장군을 제수한 글〔授楚州刺史張雄將軍〕
고패에게 권지 강주군주사를 제수한 글〔授高?權知江州軍州事〕
허경의 처 유씨를 팽성군군에 봉한 글〔許勍妻劉氏封彭城郡君〕
절도판관 이관 대부를 부사에 임명하면서 청한 글〔請節度判官李琯大夫充副使〕
부사 이 대부에게 유후를 맡기면서 청한 글〔請副使李大夫知留後〕
고언휴 소부에게 염철 순관을 맡기면서 청한 글〔請高彦休少府充鹽鐵巡官〕
사주 우도 상서에게 도지휘사를 맡기며 청한 글〔請泗州于濤尙書充都指揮使〕
왕계 단공을 섭 우사마에 임명한 글〔王棨端公攝右司馬〕
우사마 왕계 단공을 섭 염철출사순관에 임명한 글〔右司馬王棨端公攝鹽鐵出使巡官〕
전 소주 녹사참군 고현부를 섭 동성 현령에 임명한 글〔前邵州錄事參軍顧玄夫攝桐城縣令〕
정기를 해릉 현령에 임명한 글〔海陵縣令鄭杞〕
전 선주 당도 현령 왕고를 섭 양자 현령에 임명한 글〔前宣州當塗縣令王攝楊子縣令〕
유효양을 섭 저주 청류 현령에 임명한 글〔柳孝讓攝?州淸流縣令〕
전 무주 금화 현위 이함을 섭 천장 현위로 임명한 글〔前?州金華縣尉李涵攝天長縣尉〕
전 절서 관역순관향공삼전 장함을 섭 산양 현승에 임명한 글〔前浙西館驛巡官鄕貢三傳張咸攝山陽縣丞〕
전 영상현 주부 정수를 섭 성당 현승에 임명한 글〔前潁上縣主簿鄭綬攝盛唐縣丞〕
제갈은에게 각주의 일을 맡긴 글〔諸葛殷知?酒務〕
이소망을 봉국순관에 충원한 글〔李昭望充奉國巡官〕
시엄을 초주 영전원 홍택 우당 순관에 임명한 글〔柴嚴充洪澤雨塘巡官楚州營田〕
허권을 섭 관찰아추에 임명하고 홍택 순관에 충당한 글〔許權攝觀察衙推充洪澤巡官〕
왕계 단공에게 단양 감사를 맡긴 글〔王棨端公知丹陽監事〕
장한에게 염성 감사를 맡긴 글〔臧澣知鹽城監事〕
조사를 섭 화주 자사에 임명한 글〔趙詞攝和州刺史〕

계원필경집 제14권

거첩(擧牒)
회구 진장 이질을 연회 응접사에 임명한 글〔淮口鎭將李質充沿淮應接使〕
회음 진장 진계련을 연회 응접부사에 임명한 글〔淮陰鎭將陳季連充沿淮應接副使〕
송재웅을 수군 도지병마사에 임명한 글〔宋再雄差充水軍都知兵馬使〕
소율을 아전우후에 임명한 글〔蘇聿補衙前虞候〕
조위를 산병마사에 전보한 글〔曹威轉補散兵馬使〕
허경을 여주 자사에 제수한 글〔許勍授廬州刺史〕
손단을 권지 서주군주사에 임명한 글〔孫端權知舒州軍州事〕
주용을 토격사로 임명한 글〔朱?補討擊使〕
학정을 아전병마사에 임명한 글〔?定補衙前兵馬使〕
객장 가서당에게 악영사를 겸직시킨 글〔客將哥舒?兼充樂營使〕
왕처순을 염성 진사에 임명한 글〔王處順充鹽城鎭使〕
장안을 여주군전 최진사에 임명한 글〔張晏充廬州軍前催陣使〕
귀순군을 아전병마사에 임명한 글〔歸順軍補衙前兵馬使〕
안재영에게 임회도를 맡긴 글〔安再榮管臨淮都〕
여용지에게 산양 도지병마사를 겸관하게 한 글〔呂用之兼管山陽都知兵馬使〕
해치 도장에 임명한 글〔??都將〕
숙송 현령 이민지를 초토도지병마사에 임명한 글〔宿松縣令李敏之充招討都知兵馬使〕
장웅을 백사 진장에 임명한 글〔張雄充白沙鎭將〕
안재영을 행영 도지휘사에 임명한 글〔安再榮充行營都指揮使〕
서매를 각주무전지에 임명한 글〔徐?充?酒務專知〕
유효겸을 백사장 각주무에 임명한 글〔柳孝謙知白沙場?酒務〕
행영 도우후에 임명한 글〔行營都虞候〕
조붕에게 행재진주를 맡기고 절도압아에 보충한 글〔曹鵬知行在進奏補充節度押衙〕
주축 대부를 기복한 글〔朱祝大夫起復〕
상도 호천관에 보낸 글 〔上都昊天觀〕

계원필경집 제15권

재사(齋詞)
응천절의 재사〔應天節齋詞〕
또〔又〕
또〔又〕
상원황록재사〔上元黃?齋詞〕
중원의 재사〔中元齋詞〕
하원의 재사〔下元齋詞〕
또〔又〕
상원의 재사〔上元齋詞〕
중원의 재사〔中元齋詞〕
하원의 재사〔下元齋詞〕
황록재사〔黃?齋詞〕
양화재사〔禳火齋詞〕
천왕원 재사〔天王院齋詞〕
고 소의 복야를 위해 재를 지내며 올린 글〔爲故昭義僕射齋詞〕
또〔又〕

계원필경집 제16권

제문(祭文)
오방의 신령에게 제사 지낸 글〔祭五方文〕
양마성을 쌓으면서 토지신에게 제사 지낸 글〔築羊馬城祭土地文〕
초주의 전사한 장병을 제사 지낸 글〔祭楚州陣亡將士文〕
전사한 장병을 한식에 제사 지낸 글〔寒食祭陣亡將士文〕

서(書)
절서 진 사도의 사당을 옮긴 글〔移浙西陳司徒廟書〕
수찰(手札)

기(記)
서주 나성도기〔西州羅城圖記〕
안남녹이도를 보충한 글〔補安南錄異圖記〕
소(疏)대운사 중수를 위해 보시하기를 청한 글〔求化修大雲寺疏〕
여러 도관의 중수를 위해 보시하기를 청한 글〔求化修諸道觀疏〕

계원필경집 제17권

계(啓)·장(狀)
태위에게 처음 올린 글〔初投獻太尉啓〕
두 번째 올린 글〔再獻啓〕
생료를 준 것에 대해 사례한 글〔謝生料狀〕
시를 헌정하면서 올린 글〔獻詩啓〕
관직에 임명된 것을 감사한 글〔謝職狀〕
관사를 대여해 준 것을 감사한 글〔謝借宅狀〕
출사한 뒤에 고사한 글〔出師後告辭狀〕
종군하게 한 것을 감사한 글〔謝令從軍狀〕
배를 빌려 준 것을 감사한 글〔謝借舫子狀〕
주천을 허락한 것을 감사한 글〔謝許奏薦狀〕

계원필경집 제18권

서(書)·장(狀)·계(啓)
회구의 적당을 쳐부순 것을 하례한 장문〔賀破淮口賊狀〕
고 사마가 관직에 임명된 것을 하례한 장문〔賀高司馬除官狀〕
관직을 사양하는 장문〔謝職狀〕
장계〔長啓〕
요전을 더 지급해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加料錢狀〕
옷감을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衣段狀〕
법운사 천왕의 비기를 보여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借示法雲寺天王記狀〕
연화각 기문의 비본을 보여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示延和閣記碑狀〕
직책을 바꿔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改職狀〕
요전을 미리 지급해 주기를 청하면서 올린 장문〔謝探請料錢狀〕
은문 배 수재를 위하여 청탁한 글〔與恩門裴秀才求事啓〕
전 호남 관찰순관 배료에 대해서 아뢴 글〔前湖南觀察巡官裴?啓〕
생일 선물을 바치며 올린 장문〔獻生日物狀〕
또 올린 장문〔又狀〕
물장〔物狀〕
단오절에 보낸 물장〔端午節送物狀〕
신다를 사례한 장문〔謝新茶狀〕
앵두를 사례한 장문〔謝櫻桃狀〕
동지의 절료를 사례한 장문〔謝冬至節料狀〕
한식의 절료를 사례한 장문〔謝寒食節料狀〕
사일의 주육을 사례한 장문〔謝社日酒肉狀〕
필단을 사례한 장문〔謝疋段狀〕

계원필경집 제19권

장(狀)·계(啓)·별지(別紙)
좌주 상서에게 올린 별지〔上座主尙書別紙〕
이부 시랑에 제수된 것을 하례한 별지〔賀除吏部侍郞別紙〕
예부 상서에 제수된 것을 하례한 별지〔賀除禮部尙書別紙〕
제원에 보낸 별지〔濟源別紙〕
초주의 행리를 맞으며 보낸 별지〔迎楚州行李別紙〕
또〔又〕
5월 1일에 보낸 별지〔五月一日別紙〕
왕림해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降顧狀〕
금부 낭중에게 보낸 별지〔與金部郞中別紙〕
또〔又〕
잡서(雜書)객장에게 준 글〔與客將書〕
송현 시어에게 사례한 글〔謝宋絢侍御書〕
배졸 서자에게 답한 글〔答裴拙庶子書〕
고 비서가 장가를 보여 준 것에 대해 사례한 글〔謝高?書示長歌書〕
이관에게 사례한 글〔謝李琯書〕
원 낭중에게 사례한 글〔謝元郞中書〕
주번 수재가 《소산집》을 보여 준 것에 대해 사례한 글〔謝周繁秀才以小山集見示書〕
수주 장 상시에게 준 글〔與壽州張常侍書〕
초주 장의부 상서에게 하례한 글〔賀楚州張義府尙書〕
가목에게 준 글〔與假牧書〕

계원필경집 제20권

계(啓)·장(狀)
귀근하도록 허락해 준 데 대해 사례한 계문〔謝許歸覲啓〕
행장과 여비를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行裝錢狀〕
한 달분의 요전을 다시 보낸 것을 사례한 장문〔謝再送月料錢狀〕
아우 서원에게 전을 준 것을 사례한 장문〔謝賜弟栖遠錢狀〕

별지(別紙)
태위에게 올린 별지〔上太尉別紙〕
또〔又〕
또〔又〕
또〔又〕
또〔又〕

제문(祭文)
참산의 신령에게 제사 지낸 글〔祭?山神文〕

시(詩)
태위에게 진정하며 올린 시〔陳情上太尉詩〕
좌주 상서가 난을 피하며 유양에 들러 보여 준 절구 세 수에 화운하다〔奉和座主尙書避難過維陽寵示絶句三首〕
귀연음을 지어서 태위에게 바치다〔歸燕吟獻太尉〕
양섬 수재의 송별시에 답하다〔酬楊贍秀才送別〕
일행이 산양에 머물 적에 태위가 잇따라 옷감을 보내면서 어버이를 뵙고 축수하는 예물로 삼게 하였으므로 삼가 시를 지어 사례하다〔行次山陽續蒙太尉寄賜衣段令充歸覲續壽信物謹以詩謝〕
여 도사에게 작별 선물로 주다〔留別女道士〕
진사 양섬의 송별시에 답하다〔酬進士楊贍送別〕
초주 장 상서가 수곽에서 영접하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楚州張尙書水郭相迎因以詩謝〕
오만 수재의 석별 시에 답한 절구 두 수〔酬吳巒秀才惜別二絶句〕
바위 봉우리 〔石峯〕
조수 물결〔潮浪〕
바닷가 모래톱〔沙汀〕
들판을 태우는 불〔野燒〕
진달래꽃〔杜鵑〕
바다 갈매기〔海鷗〕
산꼭대기의 아슬아슬한 바윗돌〔山頂危石〕
바위 위의 작은 소나무〔石上矮松〕
단풍나무〔紅葉樹〕
바위 위에 흐르는 샘물〔石上流泉〕
우인이 제야에 보낸 시에 화운하다〔和友人除夜見寄〕
봄바람〔東風〕
해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海邊春望〕
봄날 새벽에 한가로이 바라보며〔春曉閒望〕
바닷가를 한가로이 거닐며〔海邊閒步〕
해동으로 돌아올 즈음에 참산의 봄 경치를 바라보며〔將歸海東?山春望〕
김 원외가 참산의 청 상인에게 준 시에 화운하다〔和金員外贈?山淸上人〕
해문의 난야에 있는 버들을 읊다〔題海門蘭若柳〕

저자 소개

저자 : 최치원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해운(海雲), 호는 고운(孤雲)이다. 경주 사량부(또는 본피부) 출신이다. 857년(헌안왕1)에 태어나 868년(경문왕8)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7년 만인 874년에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서 문한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29세 때 신라에 돌아와 시독(侍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라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지로 나가 태산군·천령군·부성군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894년에는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승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908년(효공왕12) 말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문창후(文昌侯)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금체시(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중산복궤집(中山覆需集)》 등의 시문집과 사서(史書)인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불교관계 글인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석순응전(釋順應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등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만이 전한다.
역자 : 이상현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 전신) 국역연수원 상임연구부를 졸업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에서 《제자선독》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의 고향》, 논문으로 〈추사의 불교관〉 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계원필경집》, 《고운집》, 《목은집》, 《택당집》, 《계곡집》, 《포저집》, 《간이집》, 《가정집》, 《도은집》, 《고산유고》, 《원감국사집》, 《대각국사집》, 《죽석관유집》, 《침굉집》, 《기암집》, 《부휴당대사집》, 《사명당대사집》 등의 번역서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96쪽 | 1048g | 153*224*35mm
ISBN13
9788979773842

출판사 리뷰

최치원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완역서 출간
현전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고대 문집
최치원의 사상과 시대 인식에 대한 재조명 계기
고전번역의 중요성 일깨운 역작

《계원필경집》 은 어떤 책인가


“우리 동방에 문장이 나와서 글을 지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운(孤雲) 최공(崔公)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우리 동방의 선비로서 북쪽으로 중국에 유학(遊學)하여 문장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것도 최공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이 지은 글을 보면 왕왕 화려하면서도 들뜨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령 황소(黃巢)에게 보낸 격문(檄文) 한 편만 보더라도 기운이 굳세고 뜻이 곧으니 결코 교묘하게 아로새기려 한 것이 아니요, 그가 지은 시 역시 평이하고 우아하니 만당(晩唐)의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더욱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는 대개 명수(明水)와 거친 삼베 같은 바탕 위에 단술의 맛과 화려한 옷감의 아름다움을 겸한 것이라고 할 것이니, 이 어찌 더욱 보배로 여겨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홍석주 《계원필경집 서문》 중에서

“연천 홍석주가 이 문집을 부쳐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천 년 가까이 끊어지지 않고 실처럼 이어져 온 문헌이다. 그대는 옛글을 유통시킬 생각이 없는가?’ 하였다. 이에 내가 큰 구슬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한편으로,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잃어버릴 가능성이 더 커질까 걱정하였다. 그리하여 얼른 교정을 하여 취진자(聚珍字)로 인쇄한 뒤에 태인현 무성서원(武城書院)과 합천군의 가야사(伽倻寺)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서유구 《계원필경집 서문》 중에서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신라 말에 활동하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문집으로, 그동안 고대사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책이다.

제목 중 ‘계원(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하며, ‘필경(筆耕)’은 융막(戎幕)에서 문필로 먹고살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곧 《계원필경집》은 당나라 회남절도사 고변(高騈) 휘하에서 4년 동안 지은 1만여 수의 시문을 귀국 후 골라 20권으로 편찬한 최치원의 종사관 시절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이 책에는 50수의 시와 320편의 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다양한 전고(典故)와 함께 실용적인 글이 담긴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양 또한 매우 방대한 문집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직후인 886년에 당나라에 있을 때의 저작을 정리하여 잡시부(雜詩賦) 및 표주집(表奏集) 도합 28권을 헌강왕에게 올렸다. 이때 아울러 올린 ‘계원필경집서(桂苑筆耕集序)’에 저작목록이 실려 있다.

《계원필경집》은 《삼국사기》·《해동문헌총록》 등의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조선 중엽까지 여러 차례 간행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1834년 서유구가 호남 관찰사로 재직 중 홍석주의 집에 가장(家藏)된 구본(舊本)을 얻어 편목(編目)과 의례(義例)는 그대로 두고 잘못된 글자만을 교정하여 전주에서 간행하였으며, 그 뒤로 1918년, 1930년에 간행된 바 있다. 1834년 서유구가 간행한 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규장각본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표점영인하여 간행한 ‘한국문집총간’ 제1집 소재 《계원필경집》을 완역한 것이다.

《계원필경집》은 모두 20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문(文)이다. 권수에는 1834년에 쓴 홍석주와 서유구의 교인계원필경집서(校印桂苑筆耕集序)와 886년 저자가 계원필경(桂苑筆耕)을 포함하여 헌강왕에게 올릴 때 쓴 자서(自序)가 실려 있다.

권1~16은 회남(淮南)에서 고병의 종사순관으로 있을 때 그를 대신하여 지은 군문(軍文)이며, 권17~20은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다. 그리고 권 앞에는 각각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계원필경집》 번역의 의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전고(典故)의 구사로 해독이 쉽지 않아, 상세한 주석과 역사적 고증이 충실한 새로운 번역이 요구되어 왔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이번에 《계원필경집》을 새롭게 학술번역함으로써 신라 말 고려 초의 역사·사상·문학을 연구하는 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교류의 흔적을 더듬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계원필경집》을 번역한 이상현 전 수석연구위원(한국고전번역원)은 고전번역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서 손꼽히고 있으며, 《계원필경집》 2집(2010년 발간)의 번역을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전 수석연구위원은 종교철학 전공자로서 불교와 도교 등에도 조예가 깊어 유·불·선을 넘나드는 최치원의 폭넓은 사상세계에 대한 깊은 접근이 이루어졌다는 평이다.

이상현 위원은 “이번 최치원 선생 문집의 번역으로 그동안 난해하게 여겨왔던 고려문집 번역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고전번역원은 다양하고 우수한 번역서 양산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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