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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무삭제판,2disc)
덕슨 베스트할인 2차
Marlon Brando 출연
덕슨미디어 200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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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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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더빙 : 영어 화면 : 16:9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등급 : 18세이상 관람가 제작년도 : 1979 (2001재편집판) 년 자막 : 한국어 영어 오디오 :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 상영시간 : 202 분 지역코드 : 3

감독/출연진 소개 1

출연Marlon Br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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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론 브란도

정말로 비대한 덩치에 유난히 괴벽스러운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난 말론 브랜도. 그의 말년의 행동들은 전후 배우의 표준으로 여겨졌던 젊은 시절의 명망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그 표준에 그 자신조차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50년부터 1972년까지 그의 영예로운 전성기 동안 그는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화배우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브랜도에게는 누이가 둘 있었고 부모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아버지는 집에 없는 적이 많았고 예술적인 성향을 지닌 어머니는 술에 취한 채 무너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1943년에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정말로 비대한 덩치에 유난히 괴벽스러운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난 말론 브랜도. 그의 말년의 행동들은 전후 배우의 표준으로 여겨졌던 젊은 시절의 명망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그 표준에 그 자신조차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50년부터 1972년까지 그의 영예로운 전성기 동안 그는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영화배우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브랜도에게는 누이가 둘 있었고 부모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아버지는 집에 없는 적이 많았고 예술적인 성향을 지닌 어머니는 술에 취한 채 무너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1943년에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다친 무릎 때문에 군대에도 입대하지 못하자 그는 누이들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부분적으로는 그의 미래에 대한 아버지의 낮은 기대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뉴욕스쿨의 드라마 워크숍에 등록한 그는 스텔라 아들러에게 연기를 배웠는데, 그녀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론을 적용하여 연기에 진정성을 불어넣기 위해 중요한 감정적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배우의 능력을 강조했다. 브랜도는 진정한 자신의 스타일로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이끌어 줄 영향으로 그 '메소드 연기법'을 채택하고, 1944년에 「아이 리멤버 마마」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했다. 굉장한 평가가 이어지면서 할리우드로 오라는 제안들이 있었지만 장기적인 계약에 따르는 제한들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6년 후에는 그도 뜻을 굽히고 신체가 마비된 군인들의 이야기인 「맨(1950)」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그 후 그는 연극 무대를 버리고 영화로 방향을 돌려 그때까지 어떤 배우들도 관객에게 선보인 적 없는 가장 비범하고 자극적이며 어려운 연기들을 보여 주었다. 1950년대 초의 작품들만 보아도 그에게 첫 아카데미후보의 영예를 안겨 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와 「혁명아 사파타(1952)」, 「줄리어스 시저(1953)」, 「위험한 질주(1953)」 그리고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한 「워터프론트(1954)」가 포진하고 있다.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브랜도는 박스오피스의 금광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영화계에서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배우였다는 점이고, 1962년에는 「바운티 호의 반란」 한 편에 125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출연료를 받으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높이 평가된 상업성은, 일반적으로 그에게 주어지던 '진지한 예술로서의 연기'의 선구자라는 인정과 더해지면서 압박감으로 작용했고, 결국 그가 변덕스럽고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몰고 갔다. 그런 그의 행동은 영화 제작 과정을 와해시키거나(「애꾸눈 잭(1961)」) 동업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브랜도가 다양한 욕망들을 -특히 음식과 여자들- 채우기에 급급하여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자신을 낭비하고만 있다는 인식을 퍼뜨렸다.

브랜도라는 '브랜드' 되살리기
1960년대의 상업적으로 실패한 일련의 영화들(「어글리 아메리칸(1963)」, 「체이스(1966)」)과 함께 그러한 비판적인 견해는 더욱 확고히 뿌리내렸다. 그러다가 브랜도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그가 연기한 돈 콜레오네라는 인물은 즉각 아이콘의 위치에 올랐고 그에게 또 하나의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안겨 주었다. 브랜도는 아카데미상을 받기를 거부함으로써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러나 1972년은 뭐니뭐니해도 그의 가장 의미심장한 연기라 할 만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말년의 활동은 간헐적이었다. 주로 우스꽝스럽고 지나치게 많은 출연료를 지불한 역할(「슈퍼맨(1978)」, 「포뮬라(1980)」, 「크리스포터 콜럼버스(1992)」, 「닥터 모로의 DNA(1996)」)이나 그의 연령과 아웃사이더라는 위치를 잘 살린 좋은 역할들(「미주리 브레이크(1976)」, 「지옥의 묵시록(1979)」, 「프레쉬맨(1990)」)이 조금 있었고,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뿌리(1979)」의 한 에피소드에도 출연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떠들썩하게 보도된 그의 딸의 죽음까지 포함하여-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낭비였다.

그의 실망스러운 선택과 천재의 기벽을 알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브랜도가 연기예술에 지반을 뒤흔드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표준으로 우뚝 선 그는, 미국 특유의 연기 유파뿐 아니라 미국 특유의 남성상-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조화시키고 거기에 계급의식까지 더한-이 자리할 하나의 우주를 창조해 냈다.


브랜도 신화

말론 브랜도는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배우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연기 스타일은 미국 연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스탠리 코왈스키와 돈 콜레오네를 비롯해 브랜도의 여러 인물들이 아이콘적 입지에 오른 것은 그가 즉석에서 이끌어 낸 즉흥연기의 성과였다. 그는 제임스 딘과 폴 뉴먼 등의 역할 모델이었고, 모든 미국 배우들을 평가하는 척도다.

· 그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다. -잭 니콜슨, 브랜도와 '메소드 기법'과 자신의 연기 스타일에 미친 그의 영향에 관하여
· 그는 조명을 사랑해! 조명이 그를 통과하며 어떻게 빛나는지 보이지- 나는 편파적이면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야.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거나, 아니면 너무 탁월해서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그려낼 수 있는 배우를 원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래서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하고 물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두 배우가 누굽니까? 로렌스 올리비에와 말론 브랜도죠. … 브랜도는 나의 영웅 중의 영웅이에요. 그를 만나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거예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의 캐스팅에 관하여
·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아요. 그도 적을 많이 만들었죠. 그 역시 완벽주이자고요. -베티 데이비스, 자기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데 흥분해서.


"배우란, 당신이 그 자신에 관해 말하고 있지 않을 때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자다."


출처 : 501 영화배우-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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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7년 03월 09일
시간/무게/크기
202분 | 250g | 크기확인중
연령제한
18세 이용가

줄거리

197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1980년 영국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 남우조연상 수상.
1980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감독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수상.
1980년 아카데미 8개 부문 노미네이트, 최우수 촬영상과 음향상 수상.
2001년 칸느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총 5시간의 초판, 6개월의 디지털 편집과 사운드 믹싱
테크놀로지가 이룩한 사운드와 영상의 완벽한 복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말대로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는 디렉터스 컷이 아니다. 감독과 편집자는 단지 1979년의 원작에 삭제된 몇 장면을 덧붙이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상영판이 아닌 원래 필름을 디지털로 재편집하고 사운드를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했으며 Dye Transfer 작업을 통해 필름의 색감 또한 다시 손질했다. 새로운 장면들을 재녹음하기 위해 여섯명의 배우들을 불렀는데, 1979년 개봉 당시 자신이 등장했던 장면이 삭제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록산느역의 배우 오로르 클레망은 누구보다도 먼저 감독과 편집자에게 달려가 도움을 주었다. 길이 125만 피트, 총 5시간이라는 거대한 분량의 필름을 새로 편집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결국 6개월 간의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코폴라 감독은 몇해전 [지옥의 묵시록]을 TV로 보면서 당시엔 매우 난해했던 영화가 20여 년이 흐른 후에는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영화로 변모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주제가 확실히 드러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고 관객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개봉 당시 부득이하게 잘려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지옥의 묵시록]은 테크놀로지의 힘과 새로이 덧붙인 53분의 에피소드로 인해 더욱 풍부하고 명료해진 주제의식과 이야기, 깊고 웅장한 영상과 사운드를 가진 영화로 회귀(Redux)했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에 추가된 장면들

1.윌라드 대위는 서핑광 킬고어 대위의 서핑보드를 훔친 뒤 정글에 숨는다. 이것은 그들의 우정을 나타내고, 윌라드 대위 일행의 임무가 처음엔 즐거운 여행처럼 시작했음을 알려주며 그들에게 곧 닥칠 비극과 대비된다.

2.위문공연이 끝난 뒤 정글로 향하던 윌라드 대위 일행은 연료가 떨어진 플레이걸들과 다시 만난다. 그들은 각자 가진 것, 연료와 육체를 맞바꾼다. 이 장면은 1979년 극장 개봉시 삭제되었는데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위선적인 사회의 이면을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

3.윌라드 대위는 한 프랑스 가족을 만난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의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하는 그들과 윌라드 대위는 적의에 가득찬 저녁식사를 나눈다. 프랑스 가족의 록산느라는 여인은 윌라드를 유혹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이 소멸한 이상향의 추구,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행위를 비판한다고 설명한다.

4.커츠 대령과 윌라드 대위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첨가되었다. 커츠 대령이 가진 사상과 영화의 주제는 이 장면을 통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전쟁이 아닌 전쟁 그 자체가 된 영화 : 제작 당시의 에피소드

[지옥의 묵시록]은 조셉 콘라드의 소설 [Heart of Darkness]을 원작으로 한다. 코폴라 감독은 이 매혹적인 원작을 웅장하고 철학적인 전쟁영화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여기에 [코난], [바람과 라이온]의 시나리오 작가 존 밀리어스가 가세하면서 영화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생각했던 바를 뛰어넘는 엄청나게 고단한 작업이 되었으니, 코폴라 감독은 "우리는 영화를 찍어가면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우선 필리핀 정부의 촬영 협조가 원만하지 못했다. 애초 필리핀 정부는 헬리콥터와 조종사를 빌려주기로 약속했으나 반군의 출현으로 지원이 여의치 못했다. 게다가 40년 만에 최대규모라는 허리케인이 몰아쳤는데 심지어 자기 손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세트는 망가졌고, 결국 필리핀에서의 촬영기간은 애초 생각했던 네달에서 열다섯달로 늘어났다. 제작비는 1600만 달러에서 3200만 달러로 뛰었고 소요된 필름의 길이도 370시간 분량이나 되었다. 코폴라 감독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담보로 걸고 빚을 얻었으며 결국 그의 빚은 1600만 달러가 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의 촬영 속에서 배우들과 제작진은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 윌라드 대위 역의 마틴 쉰이 심장발작을 일으켜서 그의 형제들이 필리핀으로 불려와서 대역을 하기도 했고, 몇몇 배우들은 고통을 이기기 위해 마약을 하기도 했다. 코폴라 감독 또한 심한 정신적 공황에 시달렸다고 한다. 본 촬영과 마찬가지로 [지옥의 묵시록] 후반작업 또한 다른 영화들의 몇배를 뛰어넘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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