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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불발탄, 고독이라는 이름으로/고갱처럼 살기 위하여/산에서 만난 여자, 은수/내가 열지 못한 좁은 문/황색 그리스도를 닮은 사내/고흐를 훔쳐가다/아름다움에 대하여 2권 그러나 너는 내 누이의 남자/그 여자의 배를 탄 고갱/빗으로 빛을 빗다/드디어 고갱, 고흐를 만나다/파리로 떠난 광화사/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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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괜스레 세상을 시덥잖게 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개성이 없었던 나에게도 별명이 있었다. 한때 호라고도 생각했던 그 별명은 '고독'이다.
내 별명의 고씨는 그러나 제주도 삼성(三姓) 혈에서 나온 고씨와 양씨와 부씨의 3성 중의 하나인 고씨가 아니라 고갱의 고씨이자 고호의 고씨이고 또 고야의 고씨였다. 나는 고야와 고호 그리고 고갱이라는 고씨 성을 가진 위대한 세 화가의 맥을 이을 수 있는 그들의 정신적인 적자로서의 '고독'이고자 했다. 그 시절에 나는 미술 선생이 주목하고 기대하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다른 재주는 없었지만 그림 그리는 것만큼은, 그것이 경쟁종목일 수가 없었음에도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고, 또 교내에서 가장 잘 그린다는 평판 속에서 미술 시간만 기다리는 학교생활을 하며 십대의 그 이유 없는 반항기를 가까스로 견뎌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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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인 그 초여름에 어떤 여자를 그 방풍림 속으로 데리고 가서 난생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처음으로 섹스하고 사정까지 했으되, 나의 섹스 파트너는 여자가 아니라 그 방풍림 끝에 펼쳐진 모래사장이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 하얀 빛에 반했다는 모래의 자궁 속에 나는 내 첫 정을 쏟아냈다. 좀더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나의 첫 섹스 파트너는 해변 모래사장이라는 '인간의 대지'였다.
얼굴이 간지러웠다. 여우비에 젖은 잎사귀를 해풍이 수증기로 날려 보내는 그 광경은 이상하게도 더없이 관능적으로 보였으며, 그 관능적 쾌감은 얼굴을 간지르는 비누거품으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곧 나의 물건은 그 간지러움을 감지하여 불끈불끈 일어서려 했다. 그 간지러움은 이발을 마쳤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는데, 몸 안에 골고루 퍼져 못살게 굴던 그 간지러움은 그때 물건의 끝으로 모여들어 내 몸 바깥으로 뛰쳐나오려 했다. 그런 기운이 온몸을 터질듯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나는 그때까지 수음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쾌감과 자극이 무엇 때문이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방 알아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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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시절, 유년의 순수로 돌아가는 길고 긴 여행
이 소설의 첫머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괴테의 시 『첫사랑』의 아름다운 영탄을 떠올리게 한다.
"아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첫사랑의 그때를 아아 누가 돌려줄 것인가 그 아름다운 시절의 다만 한 토막이라도 ." 사람들은 대개 이미 지나간, 그래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시절을 떠올리는 순간 지극한 위안을 받는다. 지나간 시절의 첫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괴테의 시는 고통스럽고 슬프고 지난한 현실의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왜냐하면 지나가버린 모든 경험은 현실의 불안과 위험을 초극하는 '순수'와 '무구'의 형태로 미화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 순수와 무구의 세계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그리고 세속의 서러운 인연과 추억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열정의 헌사이다. 작가 박인식의 자전적 체험이 상당 부분 중첩되는 것으로 보이는 소설의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받았던 박기정의 만화 『불탄』의 진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 감동은 너무도 생생해서, 만화를 본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만화의 첫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대로 재생해 낼 수 있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불발탄』의 첫 장면은 주인공 훈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장면이다. 파리행 비행기가 떠오르고, 훈이는 자신이 접은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린다. 실제 비행기와 종이비행기의 항적이 겹쳐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종이비행기가 더 이상 높은 곳으로 날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종이비행기의 추락, 그것은 유년의 순수와 사랑과 꿈의 상실을 뜻한다. 그 상실은 주인공의 가슴에 비원을 남기고, 주인공은 그 비원을 청춘의 열망으로 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