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청개구리' 이야기
숱한 옛 이야기들 사이에서, '청개구리' 이야기는 오랜 시간 겨레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굳건히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청개구리' 이야기가 간명한 이야기 구조 속에 보편적인 사람살이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담아 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느 순간 손쉬운 '훈육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청개구리' 이야기는 불행히도 우리 어린이들과 너무 멀어져 버렸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 가운데 '청개구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야기 탓도 아이들 탓도 아닙니다. 이야기의 참뜻을 살리지 않고 멋대로 이상하게 비틀어 버린 어른들 탓입니다. 이금옥 선생님이 글을 쓰고 박민의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청개구리》가 일본 도쿄에서 처음 나온 지 열여섯 해가 지났습니다. 그 책을 보리 출판사가 지금 다시 펴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조금도 낡아 보이지 않는 그림과 시인의 담백하고 아름다운 문장, 또 '청개구리'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따뜻한 시선과 다정한 마음을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마음 못지않게 어린아이의 마음도 찬찬히 헤아려 쓰고 그린 이 책이, '청개구리' 이야기를 제 주인에게 온전히 되돌려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얘들아, '청개구리' 이야기를 너희에게 되돌려줄게 미운 세 살? 미운 일곱 살?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워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하듯, 여기저기 눈치 살피고, 배려하기 바쁘고, 애써 참아 내는 일에 익숙하다면 그 아이는 이미 '아이의 얼굴을 한 어른(애어른)'이지 '어린이'가 아니지요. 어린아이 처지에서 생각해 보세요.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너무너무 많아서 다 꼽을 수도 없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동무들이랑 사이좋게 노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동무들 노는데 훼방 놓는 일이 더 재미있고, 엄마가 잘 정돈해 놓은 방이 어질러지는 줄도 모르고 온 방을 뛰어다니고 놀면서 즐거워하고, 엄마가 나무를 해 오라면 고기를 낚고 싶고, 고기를 낚아 오라면 나무하러 가고 싶은 청개구리처럼 말이지요. 엄마 말 안 듣더니 그것 참 쌤통? 아무리 아이가 엄마 말 좀 안 듣기로서니, 그것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엄마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릴 때 어른 말 좀 안 들었다고 아이들이 영영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자라납니다. 언젠가는 그 아이도 어른이 될 테고, 어쩌면 청개구리 같은 아이도 낳아 기르며 살아가겠지요. 그게 사람 사는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많은 엄마들은 '청개구리' 이야기를 빌려 와 예닐곱 살도 안 된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협박합니다. "청개구리가 엄마 말 안 듣다가 어떻게 됐지? 너도 그렇게 되고 싶어?" "너,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청개구리 엄마처럼 엄마도 콱 죽어 버린다!" "그러게, 평소에 엄마 말을 잘 들었어야지!" 엄마의 마지막 부탁만은 꼭 들어주고 싶어서 강가에 무덤을 썼다가, 비 오는 날이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무덤 가에서 우는 청개구리 마음은 헤아려 볼 생각도 않고 말이지요. 엄마들만 좋아하는 옛 이야기?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는 일이, 아이를 사람답게 옳게 기르고자 하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입을 닫게 만들고 손과 발을 묶어, 어른들 좀 편하자고 하는 일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니 아이들이 '청개구리' 이야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잘 커 가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아이한테 엄마는 '온 세상'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들이 제 어미를 잃는 것은, 세상이 통째로 무너지는 슬픔입니다. 어린아이들한테는 엄마가 죽는 일보다 더 크고 절대적인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죽음'을 볼모로 삼아 아이들 버릇이나 잡아 보려는 엉터리 '청개구리' 이야기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으니, 아이들이 '청개구리' 이야기라면 질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철부지 아이의 마음으로 다시 쓰고 그린 《청개구리》 그림책 《청개구리》속 청개구리는 가장 아이다운 모습을 간직한 개구쟁이입니다. 그 또래 여느 집 아이들과 똑같지요. 철부지지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랍니다. 청개구리 눈높이로 쓰고 그린 '청개구리' 이야기. 관점이 다르니 펼쳐 보이는 세계도 다릅니다. 그 세계 속에서는 천방지축 말 안 듣는 청개구리도, 걱정에 몸져누운 엄마도, 엄마의 죽음도, 엄마를 보내고서야 철이 난 청개구리도 모두 그저 사람 사는 순한 이치를 따라 사는 것뿐입니다. 아끼는 이의 죽음과 때늦은 후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은 이런 모진 순간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림책 《청개구리》는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담담하게 따릅니다. 누구를 탓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엄마를 잃은 청개구리의 슬픔을 살며시 보듬어 안고 다독입니다. 서럽게 우는 아이 등을 찬찬히 어르는 투박한 할머니 손처럼 말입니다. 그림책 《청개구리》를 쓰고 그린 이야기 글 이야기 "아득한 옛적, 어머니께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나는 개구리랑 올챙이를 볼 때마다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나곤 합니다." 이금옥 선생님에게 '청개구리' 이야기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낯선 식민국에 건너가 살아남아야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그이가 처한 독특한 처지와 형편이 이 이야기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청개구리'는 온 겨레가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와 있는 '청개구리' 이야기만 대충 훑어보더라도, 대개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나무라는 이야기이거나, 잘 해야 비 오는 날 개구리가 우는 내력을 밝히는 이야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상투적인 해석만이 차고 넘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금옥 선생님은 '청개구리'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전형성을 흩트리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청개구리'를 다시 썼습니다. 시인 특유의 간명한 언어로 사람 사는 순리를 담담하게 풀었지요. 그러면서 이름만 '청개구리' 이야기가 아닌, 진짜 '청개구리' 이야기를 되살려 놓았습니다. 그림 이야기 "어린아이한테 엄마가 죽는다는 것은 세상이 끝나는 것보다 더한 슬픔이지요.《청개구리》를 그릴 때 우리 아이가 마침 유치원에 다녔어요. 꼭 청개구리만 했지요. 청개구리처럼 말썽도 많이 부리고. 그래도 아이는 아이잖아요. 그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럽지요. 나는 청개구리가 꼭 우리 아이 같아서 엄마 잃은 청개구리를 슬프게만 놔 둘 수가 없었어요." 박민의 선생님은 어릴 적 "'청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집에 돌아가 엄마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놓인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오래 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이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린이의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책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림책 《청개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고기며 온갖 벌레들이 그림 곳곳에 쏙쏙 숨어 있습니다. 벌레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들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대요. 14쪽 청개구리가 물고기를 낚는 장면을 그린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랍니다. 아이가 자꾸만 물고기를 그리고 있는 박민의 선생님 곁에 와서는 "엄마, 이 물고기 죽었어." 하더래요. 선생님이 "물고기 아직 죽은 거 아니야. 이제 막 잡혔잖아." 하고 타일러도 "아니야, 이 물고기 죽었어. 눈이 죽었어." 하고 말하더래요. 결국 박민의 선생님은 아이가 "응, 이제 살았어!" 하고 말할 때까지 이 장면만 수십 장을 그리셨다지요. 화가이기 전에, 그만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청개구리'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욕심이 남달랐다고 말하는 박민의 선생님. 그림책 《청개구리》가 완벽하게 의인화된, 살아 있는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은 그 욕심과 애정을 뛰어난 기량이 받쳐 준 덕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