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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젊은 시절 1. 어린 시절의 꿈 나의 가족/무섭고도 고마운 김옥자 선생님/경림보통학교 입학/영원한 라이벌, 노영준/그림에 눈 뜨게 해 주신 다카키 선생님/경림학교 대표 스케이팅 선수/제일극장과 영화/사이토 선생님의 붓글씨/서울로 간 수학여행 2. 중학생 시절의 추억 평양제2중학교 입학/교향곡과의 만남/나팔수가 되다/방학 숙제로 낸 ‘들국화의 생태’/여장부였던 어머니/누워서 책을 읽지 마라/니노미야 선생님의 유화/두 분의 영어 선생님/나의 짝사랑, 이혜경/근로봉사대의 나팔수/드디어 해방되다/서광중학교 졸업반 시절/로스케의 횡포 3. 북한에서 보낸 대학 시절 김일성대학교 입학/제비뽑기로 배정된 광산공학과/공부보다 노동이 우선/김일성 암살 계획/감방 생활 /용감한 친구 송이진 4. 남(南)으로 천추의 한이 된 이별/아슬아슬한 탈출/여기가 이남 맞습니까?/아버지 친구를 찾아서/유랑의 6개월/아버지와의 재회/연희대학 입학에 얽힌 사연/대학 생활과 명물 교수들/또 한 분의 명물 교수, 이원철 박사/영문법 강의의 압권, 심인곤 교수/즐거웠던 대학 시절/첫 유학생 시험에 합격하다 5. 한국전쟁 속에서 1950년 6월 25일/육군 중위 조경철/산골짜기 9사단 29연대에 배속/자동차 운전을 배우다/대관령에 나타난 호랑이/전투 중 무참히 스러지는 생명/맥아더 UN군 총사령관과 나눈 악수/‘바, 바, 바, 바’ 함포사격을 지원받다/휴가 중 아버지와의 기적 같은 상봉/마(魔)의 603고지에서 벌인 혈투/훈장 받고, 수모 당하고/육군병원에서 육군형무소로/영문도 모른 채 들어온 육군형무소 생활/1개월 만에 출감/육군사관학교 교수가 되다/육사 교수 생활의 이모저모/배짱으로 얻은 점수/한국전쟁 휴전 제2부 미국에서 보낸 15년 1. 바쁜 한국 생활 여비도 제공받은 도미 유학의 길/뱃멀미 속에서 지냈던 10일간의 항해/최 영사의 호통/Color and White 소동 2.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 터스큘럼 대학에서 정치학 공부를 시작/미국에서의 첫 아르바이트/힘들었던 고학의 길/잊지 못할 은인, 레이먼드 랭킨/너무나도 험난한 생존/천문학을 공부하라는 운명의 편지/천문학에서의 고전(苦戰)/이원철 박사님의 스승, 랜돌 교수의 조수가 되다/버스 보이로 취직/루빈슈타인의 팁/드디어 자동차를 갖다/운명의 은인, 프랭크 우드 박사와의 만남/같이 천문학을 공부하던 친구들/원자폭탄의 발명자, 오펜하이머 박사를 만나다/여름방학 동안엔 화가/석사 학위 논문이 미국 천문학회지에 실리다/변광성 관측의 어려움/또 하나의 관문, 제2외국어 시험 3. 미국에서의 연구와 교수 생활 소련,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다/첫 직장은 미국해군천문대/인기를 끈 천문학 강의/미항공우주국(NASA)으로 거취를 옮기다/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비보/해외 유치 과학자 제1호, 엄청난 매스컴의 환영 보도/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수로 취임 제3부 한국에 돌아와 1. 연세대학 교수가 되어 논지당 생활/학과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즐겁게/열세 명분의 시말서와 돈지갑/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대한민국 국립천문대 설립/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의 사무총장으로 한층 더 바빠지다/일본에서 술 시합으로 받아 온 버스/영화배우 전계현과의 결혼/미하원의원의 연설 통역으로 고군분투/나를 감동시킨 한 고등학생의 어머니/새마을운동에 바친 헌신/물거품 같은 정치판/경희대학교로 이적/공짜 망원경도 돈이 없어 가져올 수 없다니/KBS와 한국 우주과학박람회 소동 2. 52년 만에 찾은 고향 이북에 있는 동생을 찾다/52년 만에 밟은 북한 땅/4일간의 평양 근교 구경/드디어 동생을 만나다/그간 어떻게 지냈니?/동생과 지낸 꿈 같은 하루 4부 남기고 싶은 이야기 1. 세계 각국의 유명 천문대 순방기 독일의 함부르크 천문대/일본의 동경 천문대/영국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프랑스의 파리 천문대/이탈리아의 카스텔 간돌포 천문대/미국의 로웰 천문대/미국의 킷피크 국립천문대/윌슨 산 천문대/팰러마 천문대/릭 천문대/중국의 북경 천문대/호주의 시드니 천문대/북한의 평양 천문대/미국 국립천문대를 30년 만에 재방문 2. 일식 관측의 즐거움 태국에서 본 개기일식/몽골의 일식 관측/터키, 시바스의 일식/티니안 섬의 금환식/호주의 세두나에서 본 개기일식 3. 자동차와 나 자동차와의 인연/Old Soldiers Never Die(노병은 죽지 않는다)/제1회 그랑프리 코리아/파리에서 처음 타 본 롤스로이스/이탈리아 피아트 사 초청으로 페라리 시승/한국 사람 최초로 F1 그랑프리 참관/모나코 F1 그랑프리 관전/르망 24시 경주 관전/모스크바 크렘린에 서다/동베를린의 벽이 무너지던 날/나의 벤츠 병/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들과의 교류/기상천외의 자동차 잔치 마당, 에센 모터쇼/세계의 이름난 차들을 시승하다/인상 깊은 차들과 자동차 행사/자동차 평론가의 특권 시승/김일성의 승용차 4. 나의 저술 활동 맺는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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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진실 - ‘별이 되다’
1929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여덟. 중장년층에게는 ‘아폴로 박사’로 익숙하고, 청년층에게는 ‘몰래카메라 ET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박사가 여든을 앞둔 나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쉬이 믿기지 않을지 모른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생방송을 맡아 하면서 달 착륙 순간 흥분한 나머지 뒤로 넘어지고, 외계인의 존재를 확신하여 몰래카메라에 속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고, 끊임없이 책을 내어 놓는 등 무한 발산되는 그의 에너지는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그의 순수와 열정은 그의 나이를 무색케 해 왔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의 의심을 사는 부분은 과학자로서의 진정성, 적나라하게 말해 ‘조경철은 탤런트 교수’라는 식의 언설이다. TV 출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이런저런 오락 프로에도 얼굴을 비추었던 사람이니만큼 그 위상이 의심되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나, 기실 과학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1959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이 미국천문학회지에 실려 그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고, 주된 연구 분야인 식변광성의 광전측광에 관해서는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미항공우주국(NASA) 재직 시에는 무인 우주선?로켓에 장치할 광전측광장치의 설계와 우주 비행 시의 천체 관측을 위한 선체 고정 장치 개발에 공헌했다. 또 해군천문대와 NASA 등 우주과학의 현장 최전선에서 유인우주선의 랑데부 장면, 화성에 간 우주선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사진 등 역사적 장면들을 마주할 때면, 천문학자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런 그의 열정과 학문적 성과는 비단 국내에만 알려진 것이 아닌지라, 일본의 와타나베는 1991년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 4976번을 조경철의 영문 이름인 Choukyongchol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렇게 그는 별이 되었다. 역경과 우연 - ‘별을 쏘다’ 김일성대학에 다니다가 월남한 이후 벌이가 없을 때에는 친구와 함께 다방을 다니며 노래를 불렀고,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을 때에는 여비가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구호물자를 수송하고 돌아가는 빈 배를 얻어 타고 미국에 갔고, 유학 시절에는 버스 보이(식당 웨이터의 조수)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안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식당에 취직해서 손님들의 식사 뒤치다꺼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낙천적 기질은 그런 힘든 와중에도 한 차에 열댓 명씩 매달려 들어가 보던 자동차 극장의 추억과, 초상화가로 활약한 어느 여름방학을 한 가닥 즐거움으로 기억하게 해 준다. 사실 조경철이 과학자가 된 것은 우연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 가던 당시 그의 전공은 한국의 정치를 바로세우겠다는 의지로 선택한 정치학. 하지만 학부 생활 2년에 대학원 입학까지 한 상황에서 날아든 편지 한 통은 정치가를 꿈꾸던 청년을 단숨에 천문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학부 시절 그의 가능성을 보았던 이원철 박사가 조경철이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별을 공부하라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몇 번 보지도 않은 제자이거늘 잊지 않고 8년 만에 찾은 그 마음이 고마운 청년은 스승의 언지를 따른다. 겨우 천문학의 기초나 뗀 상태에서 대학원 공부를 따라잡는 것이 고행 그 자체였지만, 그렇게 그는 천문학자가 되었다. 단장(斷腸)의 이별과 통탄 - 비운의 한국사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분단, 독재 등이 줄을 이은 20세기 한국을 살아 낸 사람들은 누구나 그 질곡의 세월을 몸으로 겪어야 했다. 1929년 평안북도 선천 출생인 조경철 또한 다르지 않아, 그의 가족사에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방 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경철은 인민을 착취하려고만 드는 김일성의 압제에 맞서 그자를 암살하려는 거사를 모의했다가, 이 계획이 발각되어 감방 생활을 한 후 식구들보다 먼저 남쪽으로 가 있게 된다. 그 후 한국전쟁 당시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생각에 연락장교로 참전도 하였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게 떠나온 것이 60년 동안 통탄하게 되는 어머니,동생과의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1999년, 52년 만에 동생과 상봉한 경험은 절절한 이산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한편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종종 등장하는 그의 삶은 한편의 역사 드라마와도 같다. 1945년 중학교 졸업반 시절에 본 30대 후반의 김일성은 그때만 해도 대중들 앞에서 더듬거리며 연설을 하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또 연희대학 시절 친구인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사관학교 교수 시절 가르쳤던 제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리더십이 특출 난 학생이었으며, 당시 함께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과묵한 학생이었다. 육사 교수 시절 하숙집 옆방에 살던 구자학 LG 그룹 회장은 돈독한 친분을 쌓은 동료였다.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함께 하다가 월북한 오익제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주친다. 역사 속 인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들이다. 열정 - 풍운아, 조경철 조경철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열정’이다. 과학의 대중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경철은 지금도 저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데, 생전에 200권 출간을 목표로 하여 현재 170여 권에 달하는 저ㆍ역서를 남기고 있다. 1960년대 말 한국에서 과학 입국을 위해 해외에 있는 과학자들을 유치했을 때에는, 안정된 미국 생활을 뒤로 한 채 고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당시 함께 입국한 다른 열 명의 과학자가 한국에서의 곤궁한 대접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간 것을 볼 때 끝까지 남은 조경철의 처신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귀국 후에도 교수 활동을 비롯하여 국립천문대 건립,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 사무총장 재직 등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해 왔다. 그는 과학과 무관해 보이는 일들에도 열정을 기울이면서, 풍운아 기질을 드러낸다. 박정희 정권이 종신 집권의 야욕을 보일 때 조경철은 그 유신헌법을 저지하고자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고, 후에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를 시도한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적이 문제가 되어 출마할 수 없었다.) 또 그림, 붓글씨 등에도 재능을 보여 자서전의 삽화도 본인이 직접 그렸는데, 그보다 더욱 조예가 깊은 것은 바로 자동차다. <자동차생활>이라는 잡지에 자동차 시승기를 200회에 걸쳐 싣고, 한국모터스포츠연맹 회장을 맡아 자동차 경주 대회까지 주최할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다르다. 그래서 처음 산 차인 중고 ‘뷰익 로드마스터’에는 첫 차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고, 페라리ㆍ벤츠ㆍ롤스로이스ㆍ람보르기니ㆍ사브ㆍ포르쉐ㆍBMWㆍ맥라렌 등 유명 차부터 옛 소련의 차이카ㆍ보르가ㆍ라다,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이 타던 차, 1987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현역으로 뛰는 가장 오래된 차 1933년형 포드까지, 각종 차들을 시승한 이력은 국내에서 비견할 사람이 없을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