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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방가르드의 역사
2. 뒤샹과 아방가르드 -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 3. 네오다다이즘은 아방가르드인가? - 존스와 라우셴버그의 해체적 시각 4. 미술과 일상성의 전치와 병합 - 팝 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 5. 미니멀리즘과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비판 - 구체적 사물과 구조주의 예술의 전망 6. 개념 미술과 비미술의 제도화 7. 남은 문제와 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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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준 timidbear@yes24.com
사건
1917년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화랑에서 열리는 미국독립미술가협회의 정기 전시회 <앙데팡뎅Independent>에 <머트>라는 회사에서 배달한 남자용 소변기가 도착했다. 화랑은 남자용 소변기를 교체할 계획이 없었다. 소변기는 전시장 안으로 옮겨졌고, 심사위원 마르셀 뒤샹의 전시 코너에 거꾸로 세워져 전시되었다. 뒤샹이 자신의 작품을 위해 배달시킨 소변기였다. 심사위원들은 곧 격론에 들어갔다. 주제는 그것이 작품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소변기는 전시장의 보이지 않은 곳에 처박히고, 뒤샹은 다음해 심사위원직을 사임하였다. 발언 “최근의 모든 예술적 실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조상이 바로 뒤샹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계보는 거기서 시작된다” - 존 캐나데이 상식 전시장 벽에 남자 소변기가 거꾸로 붙어 있다. '이게 뭐야?' '하여간 작가들이 하는 짓이란…' '작품이라고 하면 다 작품인가?' 그러니까 2002년에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억지' 같은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구상이든 추상이든 간에 미술 작품은 현실이나 현상을 작가의 창작과 노동을 통해 재현해내는 과정이다. 현상의 물체를 그대로 옮겨놓는 것으로 미술의 범주를 구성한다면 온 세상은 미술의 세계이다. 전시장은 따로 없다. 예술과 미술의 존재 이유는 없어지게 된다. 이 즈음 해서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무트(뒤샹의 가명) 씨가 자신의 손으로 <샘>을 만들었는가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와서 새로운 제목과 관점 아래에 둠으로써 그것의 유용성은 사라져버리고 그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이념이 창조되었다.” 작가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명명하고 선택하는 주체이다. 작가는 작품의 창작자로서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마치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만남처럼 명명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창작을 중심으로 하며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울렀던 `작가'라는 개념은 권위의 상징일 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긴 사설도 아니고 비평도 아니다. 단지 남자용 소변기를 뒤집어서 마르셀 뒤샹은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다. 뒤샹의 작품으로부터 아방가르드를 설명한 이 책은 아방가르드를 결국 정의하고 있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방가르드는 절대적인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는 미술사 혹은 시대상에 반추하여 상대적으로 정의될 뿐이다. 유파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상태인 것이다. 20세기 들어 아방가르드를 구성했던 유파들은 네오다다이즘, 일상성, 미니멀리즘, 팝 아트 등의 도전정신과 저항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마치 미술 논문처럼 보이지만 그림과 글을 왔다 갔다 하며 한참 수고를 들이고 있자면 혜안이 열리는 책이다. 미술관에서 이해하지 못하던 수많은 작품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함이 사라지기도 한다. 잭슨 폴락이나 앤디 워홀같이 많이 들어본 사람의 작품을 20세기 도전적 미술사의 계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소득이다. `레디메이드(ready made)'나 `네오 다다이즘(neo-dadaism)'이라는 용어에 겁먹지 말자. 그림을 보고 설명을 읽으면 된다. 방 한구석에 콜라병을 뒤집어 세워놓고 콜라병 위에 자신의 이름을 써보자! 우리도 작가일 수 있을까? 이 의문을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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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쇠라Georges P. Seurat와 함께 점묘법을 완성했던 시냐크Paul Signac는 마티스Henri Matisse와 같은 젊은 화가들에게 신인상파를 전파하던 20세기 초반의 대표적인 진보 작가였다. 그러나 마티스가 「호사, 정적, 그리고 관능」(1904), 「생의 기쁨」 (1906) 등의 작품을 발표하자 시냐크는 마티스와 결별한다. 그는 마티스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당시 기준을 상당히 벗어난 규모와 기법을 보이고, 그 내용조차 파악하기 힘들다는 악평을 퍼부었다. 그런 시냐크의 악평에 반해, 피카소Pablo R. Picasso는 마티스의 파격적인 그림들을 통해 오히려 창작에 대한 열정을 느끼면서 그보다 훨씬 더 파격적이고 대담한 작품인 「아비뇽의 여인들」(1907)을 발표한다. 이번에는 마티스가 피카소의 기괴하고 생경한 표현 기법을 비판한다. 그리고 마티스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창시했던 브라크Georges Braques의 입방체로 가득한 풍경화를 프랑스의 진보적 미술전의 대명사였던 가을전에 전시하기를 거부했다. 시간이 흐르고 입체파들이 사회적인 지지를 획득하고 가을전의 심사 위원이 되었을 때, 이번에는 그들이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1912)의 전시를 거부한다.
--- 아방가르드의 역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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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미술 운동 전반을 아방가르드의 맥락에서 해석한 본격적인 현대 미술 비평서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현대 미술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아방가르드>라는 일관된 시각으로 해석한 이 책은 20세기 미술사를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미술사를 예측하고 전망해 본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또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없는 현대 미술 작품 80여 점이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일었다. 모든 문화 전반에 걸쳐 갑자기 포스트모더니즘이 미래의 완벽한 해답처럼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모더니즘도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고 이후 모든 개념들이 혼재하면서 좀처럼 구분되지 못하고 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뿐만 아니라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여러 개념의 정립은 오늘날의 미술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이런 문제에 주목하면서, 혼동된 개념들만큼 복잡한 현대 미술을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흐름을 꿰뚫고자 한다. 전통적 가치에 대한 도전과 새로움으로 지향했던 모더니즘은 형식적 해답을 넘어 매체, 주제, 제도, 작가, 관객, 인식, 수용, 전시, 차원을 차례로 전환시키면서 미술 자체의 본질이라고 생각되던 부분을 와해시키고 전복시킨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다시금 문제시되는 내용이었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에서는 그 모든 궤적이 아방가르드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지금도 진행 중인 현대 미술의 여러 경향들을 관통하는 <아방가르드>라는 맥락을 통해 그 계보와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일별하고 있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현대 미술에서 <아방가르드>의 성격을 실제 작품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개념에 깊이 천착하는 저자는 관념적으로만 다가오는 현대 미술의 맥락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