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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과 자연을 배운 콩코드에서의 어린 시절
2.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 3. 나를 사랑한 에머슨 4. 월든으로 돌아가다 5. 꽃을 따듯 부드럽게 살고싶다 6. 생명 가진 것은 모두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7. 인디언보다 더 인디언 같았던 자연주의자 8. 흙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다 9.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10. 자연의 서기가 되어 글을 쓰다 11. 다시 소로우를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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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가 월든에서 보낸 첫해 가을에 일어났던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는 그의 열성적인 노예 해방론과 관련이 있다. 소로우는 개인주의적인 인생관으로 인해, 올코트와 다른 초절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연스럽게 무정부주의 원칙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신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그의 깊은 불신과 대내적으로 흑인노예제를 두둔하는 정부에 대한 그의 깊은 혐오감은 잠자고 있던 불만을 자극하여 미국정부와 그 대표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반항심을 적극적으로 분출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는 세금의 형태로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말을 통한 저항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p.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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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판사의 머리 위에서 번뜩이고 겁난 성직자들이 두려움에 침묵할 때 그때가 시인의 때이다. 지금이 그가 버림받은 미덕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할 때이다.'
'한가하게 공부만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워라. 학자도 땀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다양한 사물들과 접할 필요가 있다. 노동은 공부 못지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수다와 감상을 제거하는 가장 분명하고 좋은 방법은 노동을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을 한 당신은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흐름을 놓쳐버렸다고 슬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그 날의 경험을 단 몇 줄로라도 적어놓아보라. 상상력은 뛰어나나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더 음악적이고 진실한 글이 될 것이다. 작가란 모름지기 노동자들의 세계를 다루어야 하며, 따라서 그 자신의 삶의 원칙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짧은 겨울 해가 지고 밤이 오기 전에 자르고 묶어야 할 장작이 있는 작가를 상상해보자. 굳은살이 박힌 투박한 손으로 장작을 내려찍는 도끼소리가 쩡쩡 숲을 울릴 것이다. 그리고 노동을 아는 그 투박한 손에서 나온 그의 글들은 도끼소리가 잦아들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독자의 귀를 쩡쩡 울리게 될 것이다.' --- p.179, 214-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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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소로우, 헨리 솔트
헨리 솔트가 소로우를 연구하고 그의 사상적 영향을 몸소 실천하면서 마침내 그 결실로 전기를 집필하기 전까지 소로우는 몇몇 추종자들을 거느린 '실패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인간과 동물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야만적인 행태를 변모시킬 진정한 형제애가 태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전쟁,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의 약탈, 동물 학대 같은 야만 행위들이 사라질 것이다."
솔트의 생각은 소로우만큼이나 굳건하고 헌신적이었다. 사실 솔트는 명문 이튼과 케임브리지를 거쳐 다시 이튼의 교사직에 초빙되었을 만큼 명예롭고 안정된 삶을 이어가던 명문 귀족이었다. 하지만 과감히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사회주의와 채식주의를 표방했다. 조지 헨드릭이 편집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솔트는 소로우의 사상을 위한 각별히 기름진 땅을 제공했다. 그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소로우 사상의 입지를 강화했으며, 스스로가 소로우의 삶을 표방함으로써 고립되고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던 그를 세상에 끌고 나왔던 것이다. 솔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삶 속에 동화되고 시간 속에 변모되어 가는 소로우의 사상을 읽는 것이다. 솔트는 소로우가 설파한 삶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 속에 놓인 자신의 삶을 '야만인들 속에서의 70년'이라고 분명하고 강경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다. 솔트에 따르면 그들은 육식을 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식인종'이고, 노동자 계급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2차적으로도 식인종이다. 그러니 야만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솔트는 1939년에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조사를 미리 준비해두었다. "나는 합리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죽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지금 많은 사람들은 식생활 개혁, 동물에 대한 인도적 대우, 좀더 올바른 경제 제도, 자연 자원의 보존에 대한 솔트의 관심이 단순히 호기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 그러한 사상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현실 참여 활동이 소로우에게서 비롯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공동체 운동보다는 개인의 혁신을 주창하다. 소로우는 공동체적 움직임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형태로 삶의 혁신을 역설했다. 그가 월든에 홀로 들어가 초절주의적 삶을 실천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솔트가 주목한 점은 바로 그것이다. 소로우 저술의 중심 교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다. 조직화된 종교, 정부, 사업, 사회 제도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결정한 것이 대체적으로 보아 그 믿음이었다. 소로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각 개인의 정신이 생존 경쟁으로 억제되거나 왜곡되지 않아야 하며, 개개인이 지닌 독특하고 자유로운 기질적 성향을 아무런 제약 없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기존의 모든 가치와 제도와 질서는 실험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불필요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제약할 때에는 가차없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솔트는 사회가 개인의 노력에 의해 개혁되어야 한다는 급진적 개인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소로우의 에세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로우가 생활을 단순화할 것을 제안한 것은 그것이 개인의 인격뿐 아니라 그 실천 정도에 따라서는 국가에도 힘, 용기, 자립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로우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 오직 인간 개개인의 능력에 호소했다. 하지만 모든 사회 개혁가들이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 솔트는 단순한 생활, 사치품 쓰지 않기, 천박한 대학 교육이 아닌 육체 노동을 통한 교육의 권고 등 소로우 사상의 많은 부분들이 개혁가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소로우의 개인주의적 노선은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인의 혁신'에 주목한 솔트의 견해는 시대를 넘어선 매우 뛰어난 통찰력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디의 사상적 스승이 되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에서 비폭력 저항을 계속하던 당시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을 읽고 깊은 인상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솔트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변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사실이다. 솔트는 직접 간디를 만나기까지 했으며, 몇 번에 걸쳐 사상적 공감을 표하는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당신의 편지를 받아서 놀랍고 반가웠다. 사실 내가 채식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에서 처음 접한 당신의 채식주의와 관련한 책들 덕분이었다. 내가 소로우의 저서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가장 치열하게 비폭력 저항 투쟁을 하고 있었던 1907년 이후의 일이다. 그 당시 한 친구가 나에게 소로우의 에세이 <시민 불복종>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의 글이 대단히 설득력 있고, 진실한 것 같아 소로우에 대해 좀더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당신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그의 『월든』, 그리고 다른 에세이들을 구해 읽었다. 소로우의 글은 나에게 아주 기쁘고 유익한 것들이었다." 소로우와 간디 사이에서 일종의 사상적 다리가 된 솔트의 역할은 그가 소로우의 사상을 세상에 전파하는 데 얼마나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