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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인생아
강영권
비전코리아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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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省察성찰_ 묻나니, 그대 평생 업적이 무엇이뇨?
1) 해발고도 0미터로 내려와
2) 두부장수 딸 이야기
3) 19년 전 오늘
4)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5) 떡을 친다는 뜻은?

2. 雜談잡담_ 눈이여, 좋구나, 한 송이 한 송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 없도다.
1) 신촌 블루스
2) 부드러움의 힘
3) 그럼, 너는 주인답냐?
4) 달빛 완상
5) 호수 같은 그리움으로
6) 밍타고 복타시요 잉

3. 緣연_ 세월은 가네, 붉은 증기선의 뱃전이 지나가듯.
1) 인연
2) 한 해가 저무는 대학 교정에서
3) 라꾸라꾸 시스터즈 앤드 브라더즈
4) 이별주를 권하며
5) 일기일회의 정신
6) 소동파의 <강성자>에 부쳐

4. 遊유_ 내 앞에 길은 없다, 내 뒤에 길은 생긴다.
1)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첫 번째 이야기
2)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두 번째 이야기
3) 인물 자랑 말라는 강릉에서
4) 일본 여행기, 첫 번째
5) 일본 여행기, 두 번째

5. 感動감동_ 자니타와 찬찬이 해변을 거닐 때 두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렸죠.
1) 로열팝스콘서트 단상
2) 왕의 남자
3) 오마라 포르투운도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저자 소개 1

시와 막걸리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던 고 강영권 검사는 1958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의 정의롭고 따뜻한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성장했으며 여수중학교, 순천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지검 검사로 임명됐다. 이후 전주지검 군산지청, 의정부지검, 전주지검, 광주지검, 서울북부지검에서 평검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부산고검, 광주지검 순천지청의 부장검사로, 광주지검 특수부장, 인천지검 조사부장과 공안부장, 광주지검 형사1부장,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서울 고검, 광주고검, 서울서
시와 막걸리 그리고 여행을 좋아했던 고 강영권 검사는 1958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의 정의롭고 따뜻한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성장했으며 여수중학교, 순천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지검 검사로 임명됐다.
이후 전주지검 군산지청, 의정부지검, 전주지검, 광주지검, 서울북부지검에서 평검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부산고검, 광주지검 순천지청의 부장검사로, 광주지검 특수부장, 인천지검 조사부장과 공안부장, 광주지검 형사1부장,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서울 고검, 광주고검, 서울서부지검, 대구지검에 부장검사로 재직했다. 2009년 1월 30일, 의정부지검으로 전입하여 근무를 하던 그는 간경화로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고, 안타깝게도 입원한 그 다음 날 세상을 달리하였다. 가슴에 품었던 꿈대로 정의를 지키면서 겸손과 정직함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면서 '글 좀 쓰는 검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그가 검찰내부통신망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웃어라 인생아'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글에 기대어 울고 웃다', '그의 길에 기대어 울고 웃다' 역시 그가 오랫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은 것으로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이 그의 혼을 간직하기 위해 출간한 유고집이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미처 다하지 못한 인생과 그가 사랑했던 세상을 오랫동안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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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7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27쪽 | 380g | 148*210*20mm
ISBN13
9788987224787

책 속으로

“근데 말입니다, 부장님! 형사사건 중 어려운 사건을 고생하면서 수사했다는 표현을 왜 하필이면 떡을 쳤다고 할까요?”
나는 생뚱맞기까지 한 그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도구통에 흰떡이나 인절미를 만들기 위해 고슬고슬하게 찹쌀밥을 해서 넣고, 그걸 떡메로 쳐본 적이 있는가?”
우리 고향에서는 절구통을 도구통이라고 하고, 절굿대를 도굿대라고 부른다고 부연설명을 하면서 내가 되물었다.
“아이구, 저 같은 도회지 출신이 언제 그런 일을 해봤겠습니까?”
“아, 그렇지……. 떡을 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힘이 들어. 떡메 자체가 크고 무거울 뿐 아니라, 그것을 들어서 제대로 친다는 것도 어려워. 그리고 점점 찰 지게 되어가는 떡에 떡메가 철썩 달라붙는데, 철썩 들어붙은 떡메를 다시 들어올린다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네.”

--- 본문 '떡을 친다는 뜻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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